▲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내년 최저임금이 결정된 지 보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까지도 안타까움이 가시질 않는다. 불평등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박함이 20대 국회를 여소야대로 편성했고, 주요 정당들은 최저임금 1만원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높은 기대는, 그만큼의 실망감으로 되돌아왔다. 지난 시간 동안 최저임금 운동을 일구기 위해 전국의 노동현장을 누빈 동료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한다.

열다섯 번에 걸쳐 세종시에 내려가는 길은 매 순간 고통스러웠다. 최저임금은 용돈벌이 삼아 취미로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이라고 주장하는, 현재 최저임금이 너무 과도한 수준이라고 주장하는, 영세 자영업자와 구조조정을 앞세워 경제위기를 논하는 대기업·경영계의 뻔뻔함에 놀라움을 느꼈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민주적이고 책임 있는 토론의 장이 아니라 형식적인 중립을 표방하는, 때로는 요식행위로 취급하는 정부측 위원들의 모습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최저임금 운동 과정에서 만난 노동의 절박함과 회의장의 삭막함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최저임금 제도가 운영된 지 28년이 흘렀고, 이 기간 동안 최저임금을 통해 삶의 조건이 결정되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졌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구조는 28년의 관성을 이겨 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이 보다 책임 있고 투명하게 거듭나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당사자를 대상화하는 형식적이고 권위적인 의견수렴을 넘어,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중심에 서고 약자들의 상생이 실현되는 민주주의 장으로 재구성돼야 한다.

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과 동시에 추진돼야 하는 것은 주체의 쇄신이다. 내년 최저임금이 결정되던 지난 16일 새벽 3시40분께 2명의 사용자위원이 퇴장했다. 그들은 모두 소상공인연합회 소속이었다. 남 일 같지 않았다. 나의 부모님은 둘 다 자영업자다. 아버지는 버티다 못해 몇 해 전에 가게를 접었고, 어머니는 간신히 버텨 가고 있다. 6천470원이라는 똑같은 숫자를 두고 동시에 비명을 지르는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의 현실은 동족상잔(同族相殘)을 연상시킨다.

대다수 소상공인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두고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나 과도한 임대료, 출혈경쟁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일은 간편하지만, 충분치는 않다. 지금과 같은 양상으로 약자들의 갈등이 심화되면 어느 순간 우리는 최저임금이라는 소중한 제도의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약자들 간의 갈등을 줄이기 위한 정치의 역할이 조정이라면, 운동의 역할은 연대다. 연대는 차이를 좁히고, 공감을 키우며, 조금씩 신뢰를 쌓아 가는 과정이다.

최저임금 1만원으로 나아가는 단계별 이행전략이 필요하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영세 자영업자와의 상생을 합의하는 구체적인 대안과 실천이 조직돼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이해당사자가 주고받는 모멸감은 노사의 조율만으로는 중단되기 어렵다. 시장임금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복지정책 확대와 경제구조 개혁에 대한 정부의 책임성을 호명해야 한다. 체계적이고 짜임새 있는 로드맵이 사회적 설득력과 지지를 획득해 나가야 최저임금위의 혁신이 힘 있게 진행될 것이며, 최저임금 1만원이 선언이 아닌 현실로 우리 삶에 뿌리내릴 것이다. 선명함과 섬세함이 동시에 필요한 세상이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cartney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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