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연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상판결 : 서울고등법원 2016.7.13 선고 2015나2046698 판결

1. 사건의 경위


원고들은 투자금융회사에 입사해 20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들로서, 피고 회사의 지점장급 보직을 수행하다가 피고 회사의 희망퇴직 권유를 수차례 거부했다. 피고 회사는 이들이 기존에 근무하던 지점에서 연고가 없는 지점으로 발령 냄으로써 기존에 관리하던 자산 및 고객들로부터 유리시켰다가, 2010년에는 소위 ‘랩(Wrap) 상품’ 영업 활성화를 이유로 본사에 랩 영업부를 신설해 원고들을 포함한 장기근속자들을 순차적으로 전보시킴과 동시에 직군을 전환시켰고, 랩 영업부에서의 2년 연속 저성과를 이유로 원고들을 인사관리직원으로 선정했다. 그 후 기본급과 후생비의 합계액을 기준으로 한 1년간의 누적목표수익 달성률이 60% 이하라는 이유로 대기발령을 명했다. 원고들은 인사관리직원으로 선정됨에 따라 기본급을 50% 삭감당했으며, 누적 목표수익이 6개월 또는 1년 누적으로 150% 미만일 경우 징계해직 심의에 회부될 위험에 처했다.

2. 법원 판결의 요지

가. 1심 판결의 요지

1심 판결(서울남부지법 2015.8.18 선고 2014가합107148 판결)은 △전직의 적법 여부 △인사관리직원 및 대기발령의 적법 여부 △삭감된 임금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로 쟁점을 세분해 판단했다.

우선 전직의 적법 여부. 피고 회사에는 랩 상품 영업을 담당하는 다른 부서가 이미 운용 중에 있었다. 원고들이 전보된 랩 영업부는 대체로 영업실적이 저조하고 장기근속자인 부장·부부장·차장 등의 근로자들을 위주로 선발됐다. 랩 영업부 팀장은 2012년에 작성한 업무보고에서 “랩 영업부 구성은 명예퇴직·직군전환 거부자들을 정상적인 업무환경이 아닌 곳에 배치해서 퇴직을 유도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업무보고서를 작성했고, 실제 랩 영업부로 전보된 근로자들 상당수는 명예퇴직했는데, 1심 법원은 이 사실에 주목했다.

또한 정상적인 영업부서와는 다르게 피고 회사는 랩 영업부에 고객상담실이나 영업에 필요한 사무집기 또는 보조인력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고, 랩 상품 영업을 위한 교육과정 중 상당 부분이 인문학·어학과 건강 관련 교육이었다. 1심 법원은 피고 회사가 원고들에게 랩 상품만 판매하도록 한 것이 아니고 모든 금융상품을 판매해 실적을 올리도록 한 사실을 확인한 후, 위와 같은 사실들에 근거해 피고 회사가 원고들을 랩 영업부로 전보할 업무상 필요성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반면 원고들에 대해서는 랩 영업부 전직으로 인해 수시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했고 영업실적에 따른 성과급 변동이 심한 사정 등으로 적지 않은 불이익을 입었으므로, 전직의 업무상 필요성과 원고들의 생활상 불이익을 비교·형량하면 원고들의 전직은 피고 회사의 인사재량권 남용에 해당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1심 법원은 위와 같이 원고들의 전직을 무효로 판단한 뒤, 이에 근거해 원고들에게 랩 영업부 소속 당시 영업실적과 그에 근거한 인사평정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평가라고 보기 어렵고, 그러므로 이에 근거해 이뤄진 인사관리직원 선정 및 후속 대기발령 역시 무효라고 판단했다.

나. 2심판결의 요지

1심판결에 대한 피고 회사의 반격은 치열하게 이뤄졌다. 우선 피고 회사는 삭감된 기본급 및 성과급 액수를 공격하는 한편, 랩 영업부에서도 업무실적을 올려 일반 영업점으로 복귀한 사례가 있고 랩 영업부가 저성과자 퇴출용 조직이 아님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원고들은 일반 영업점으로 복귀한 사례는 결국 희망퇴직을 전제로 한 것임을 재반박하면서 일부 사례로 랩 영업부 성격이 달라지지 않음을 확인했다. 이에 관해 2심판결은 1심판결에서 판단 근거로 삼았던 사정들을 거의 그대로 인정하면서, 이 사건 전직 및 그에 기반한 인사관리직원 선정 및 후속 대기발령 역시 무효라고 판단했다.

3. 인위적인 저성과자 창출에 기반한 저성과자 판단의 부당성

원고들은 금융상품 영업을 주 업무로 하는 근로자들로서, 개인적으로 해당 지역에서 확보해 관리하는 고객 및 자산은 물론이고 소속된 영업점 차원에서 관리하는 자산을 배분받아야만 영업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피고 회사는 이 사건에서 다투어진 랩 영업부 전직 이전에도 원고들을 수차례 연고가 전혀 없거나 배분해 줄 자산이 없는 명목상의 영업부서로 전보시킨 뒤, 원고들이 영업실적을 올리지 못하자 저성과자라는 명목으로 랩 영업부에 전보시켰다. 피고 회사는 해당 프로그램이 문제가 되자 랩 영업부를 폐지했으나, 뒤이어 다른 ‘○○금융센터’라는 조직을 만들어 전국의 저성과자들을 다시 서울 특정 조직에 전보시켜 운용하는 인사조치를 취했다.

이번 판결은 위와 같이 피고 회사가 인사권을 행사해 근로자들이 저성과자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위치하게 한 후 실제 저성과를 축적하면 이를 개인 책임으로 귀속시켜 인사관리직원 및 대기발령·징계해직 절차를 밟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는 의의가 있다. 피고 회사는 랩 영업부에서 영업실적을 올려 부서를 벗어난 사례, 인사관리직원 신분에서 영업실적을 올려 인사관리직원 선정이 해제된 사례를 변론 과정 내내 제시했으나, 법원은 랩 영업부가 본질적으로 영업을 위한 통상적인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아니한 점을 차례대로 확인했다. 여기에는 피고 회사의 랩 영업부 창설의 목적성이 드러나는 업무보고 같은 자료는 물론, 랩 영업부에서 이뤄진 교육 및 영업대상 등 실제 운용된 형태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4. ‘저성과자 쉬운 해고 지침’의 제동

여러 금융회사에서 소위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고, 2015년 기준 은행업종에서 희망퇴직·명예퇴직으로 구조조정된 직원수는 4천200명에 달한다(한겨레 7월14일).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고용 비용이 높은 장기근속자를 시간을 들여 저성과자로 만든 뒤, 급여를 삭감해 가며 스스로 퇴직을 유도하거나 버티는 사람은 저성과자라는 명목으로 징계해고하는 전략을 사용해 왔는데, 고용노동부의 소위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은 재교육 프로그램 운용에도 저성과가 지속되면 해고가 정당하다고 명시하면서 이러한 전략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판결은 희망과 동시에 부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판결에서는 피고 회사의 퇴출 목적을 인정하는 증거가 엄존했음은 물론 열악한 영업환경과 일률적인 인원 구성, 중복된 부서의 존재, 실제 다수가 명예퇴직한 사례를 토대로 원고들이 전보된 부서가 저성과자 퇴출용 프로그램으로서 전직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금융회사의 유사한 프로그램에 대해서 동일한 법원에서 내린 판결을 보면 등산을 시키는 등 황당한 교육내용과 퇴출목적 인사제도 용역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퇴직자가 일부에 지나지 아니하다는 점 등을 들어 ‘사실상의 퇴출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인정받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 이 사건 원고들도 ‘랩 영업부’ 전직은 다툴 수 있었지만, 그 이전의 무원칙하고 변칙적인 인사발령에 관해서는 우선 다툼의 대상에서 배제했다.

결국 이번 판결은 ‘저성과자 쉬운 해고’를 목표로 하는 노동부 인사지침에 일정 부분 제동을 걸었다는 의의가 있지만, 사측이 저성과자 퇴출용 프로그램의 목적이 드러나지 않도록 정교하게 구성하고 그에 대한 입증부담이 근로자들에게 지워질 때는 불법성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는 과제도 드러냈다. 어느 정도로 입증이 구비돼야 하는지에 대한 ‘방지턱’으로 이번 판결이 오용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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