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모처럼 두 노조가 동시파업을 했다. 귀족노조의 배부른 파업이란 공격이 따랐다. 반복되던 상황이라 덤덤했는데, 한기황 금속노조 대협국장에게서 요청이 왔다. 단체들 지지성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방어 차원이었다. 10년 전쯤에도 같은 과정이 있었다. 많은 지지성명이 있었다. 급하게 여기저기 요청했다. 이번엔 아니었다. 전국유통상인연합 등 일부만 호응했다. 바깥의 손가락질만 문제가 아니었다. 시민사회 마음도 닫혀 있었다. 한숨이 터졌다.

‘노동 분단과 알파고 시대, 민주노조운동 지금 같은 방식으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신문사 논설위원도 참석했다. 늘 노동을 지지하고 성원하는 고마운 이였다. 그가 말했다.

“내가 몸담은 신문사의 다른 논설위원들은 노동운동 후지다고 한다.” 노동운동에 애정을 쏟던 신문사였다. 노동운동 후지다, 차마 민주노총이라 표현하지 않은 머뭇거림이 고마웠다.

운동 흥망에 명운이 걸린 몇몇 진보언론 기자들과 술을 나눈 적이 있었다.

“쓰고 싶어도 민주노총 기삿거리가 없다. 총파업도 기사 안 된다. 진정성이 없다.” 이구동성 지적에 무안한 술잔만 비웠다.

열거한 모두 우리 우군이다. 그들의 닫힌 마음을 여는 숙제는 순전히 우리 몫이다. 도대체 어떻게? 정책대안이 없어서 이 꼴이 아니다. 나처럼 무식한 이론깡통도 운동의 전략전술과 정책대안을 100개 넘게 꿰고 있다. 몰라서 말하지 않는 게 아니다. 민주노총 20년, 아니 87년부터 30년간 내놓을 건 다 내놨다. 해 볼 것도 다 해 봤다. 그러는 사이 운동의 바깥세상은 지옥이 됐다. 극단의 노동 분단은 운동의 출발이자 궁극인 계급 자체를 갈기갈기 해체하고 있다.

실현할 조직력과 투쟁력도, 사회적 영향력과 신뢰도도, 죄다 엉망이다. 우리 실력에 투쟁만으로 재벌 곳간을 연다고? 투쟁만으로 최저임금 1만원을 쟁취한다고? 투쟁만으로 각종 정책대안을 관철한다고? 허허허. 나 원 참.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8월22~23일 민주노총은 정책대의원대회를 연다. 노조의 상태, 바깥의 상태, 전략·전술 등을 모두 풀어 놓고 사회 재편방안과 노조 생존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사업장 일들 잠시 미루고 빠짐없이 참여해 야단법석 토론장을 열어야 한다.

나는 간절히 꿈꾼다. 민주노총 70만 조합원 너나없이 최저임금 1만원을 걸고 행동하는 것을 말이다. 자기 사안에도 총파업에 나서지 않는 현실이라 쉽지 않을 거다. 나는 어차피 못할 테니까 결의라도 참여하자는 알리바이 심리가 작동하면, 결의는 쉬울 수 있다. 안 된다. 국민과 우군은커녕 우리 스스로에게도 감동이 없질 않은가. 민주노총 갉아먹는 결의다.

치열한 고민을 거쳐 1일 파업, 어려우면 4시간, 그마저 힘들면 2시간도 좋다. 총회나 교육시간을 할애해도 된다. 총파업 표현이 무거우면 ‘민주노총의 희망 한 걸음’이라 표현해도 좋지 않을까. 총파업 혹은 총궐기, 격한 표현 쓴다고 투쟁이 잘되는 게 아니다.

고민이 더 깊어지면 어떨까 싶다. 최저임금 1만원에 따르는 영세기업과 상인의 실제적 어려움을 풀기 위해 민주노총이 5천억원을 사회기금으로 내놓는 방안이다. 50만명 곱하기 20만원 곱하기 5년이다. 1만원 결의도 채우지 못한 꼴에 언감생심이다. 민주노총 자체 노력만으론 불가능하다. 사회의 호응과 국민의 박수가 꼭 필요하다. 활동가와 조합원이 민주노총 바깥의 절박한 상황을 보게끔 해야 한다.

기금은 목표가 아닌 방편이다. 사회에 울림을 줘서 판을 뒤흔드는 방편이다. 국민을 깨우고 조합원의 측은지심을 되살리는 방편이다. 민주노총이 500만명 최저임금 하층을 위해 5천억원을 내놓는다고? 이걸 계기로 청년일자리 문제도 풀자 한다고? 극단의 양극화 문제도 풀자 한다고? 무슨 얘기지?

국민이 박수하고 손잡으면 조합원들은 더 많은 액수도 낼 수 있다. 민주노총이 5천억원을 내는데, 재벌이 곳간을 안 열곤 못 배길 것이다. 정부도 세금을 투입하지 않곤 못 배길 것이다. 우리 노동운동이 그것을 움켜쥐고 국민과 민중과 우군과 조합원과 함께 한판 투쟁을 전개하자는 것이다.

이런 구상이 아니라도 좋다. 정책대대에서 치열하게 논의하자. 특히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가 주축이 돼 논의를 주도하자. 자본 공세와 국민 질시가 집중되는 단위 아니던가. 그것이 바로 민주노조운동의 상징 현대중공업노조, 민주노총의 핵심 현대자동차지부, 두 조직을 온전히 지키는 출발 아니겠는가. 그래야 나머지 노조들도 지킬 수 있는 것 아닌가.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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