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8.10.18 목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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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 후폭풍] "지금도 전쟁터인데 … 개인 성과평가 늘린다고요?"시중은행으로 확산되는 성과연봉제에 '곡소리' 높아지는 은행원들

"캠페인·프로모션 나올 때마다 지인들한테 구걸하는 것도 한두 번이죠. 매일매일이 스트레스인데, 개인 성과평가를 또 얼마나 어떻게 하겠다는 거죠? 우리보고 죽으라는 소리예요."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서 일하는 A씨는 은행연합회가 '민간은행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는 소식에 분통을 터트렸다. 성과에 따라 같은 직급이라도 연봉 차등 폭이 40%까지 벌어지도록 임금체계를 개편한다는 내용에 "설마설마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요즘 A씨를 괴롭히는 업무는 통합멤버십 포인트 회원모집이다. 가족과 친·인척, 친구들에게 스마트폰에 해당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추천인란에 행번을 입력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앱을 얼마나 많이 내려받게 했는지가 지점별 핵심성과지표(KPI)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실적을 내려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들이댈 수밖에 없다. 은행원들이 모여 있는 비공개 커뮤니티나 단체채팅방에는 "두 돌 된 아이 엄마입니다. 앱 할당 3개를 못 채워서 퇴근을 못하고 있어요. 도와주세요"라거나 "은행 다니는 이모가 할당량 300개 중 50개를 저한테 주셨어요. 하나만 깔아 주세요"라는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A씨는 "지금도 전쟁터인데, 성과연봉제가 확대되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도 싫다"고 토로했다.

"성과연봉제 확대, 결국 조직에 손해"

2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정부발 성과연봉제가 민간 시중은행으로 확산되면서 은행원들의 '곡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 압박에 마지못해 가이드라인 만들기에 동참했지만 정작 은행들도 전체 직원들에게 개인성과평가를 확대하는 게 조직에 이익이 될지 해가 될지 의구심을 갖는 분위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후배들에게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 조직에서 인정받는다'고 얘기해 줬는데, 이제 누가 그런 얘기를 할 수 있겠냐"며 "앞으로 누구든 손해 보는 업무는 맡지 않으려고 할 텐데, 조직이 제대로 굴러갈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실적압박에 따른 불완전판매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설거지를 많이 하는 사람이 접시를 깰 확률이 많듯이 실적압박을 받다 보면 불완전판매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며 "당장 드러나지 않는 불완전판매 걱정을 모르는 체하고 '일단 실적부터 쌓자'는 분위기가 팽배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은행연합회는 이와 관련해 "불완전판매가 발생하면 감점이 되도록 개인 평가지표를 설정하면 되고, 현실적인 목표를 개인 성과평가 목표로 부여하면 과당경쟁을 막을 수 있다"는 시쳇말로 '속 편한' 대책을 내놓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일찍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던 마이크로소프트와 휴렛팩커드·제너럴일렉트릭 같은 외국기업들이 협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성과연봉제를 포기한 전례가 있다"며 "성과연봉제를 확대한다고 해도 머지않아 다시 원래 제도로 돌아올 게 뻔한데 그에 따른 시간과 비용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냐"고 반문했다.

"이미 사오정·오륙도 신세 … 가이드라인 폐기해야"

성과연봉제 확대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자 시중은행·지방은행 노조들은 가이드라인 폐기투쟁을 선언했다. 이들은 지난 22일 공동성명을 내고 "은행원들은 은행 간 과당경쟁과 기술금융,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계좌이동제, 대포통장, 법인고객확인의무(CDD), 미스터리쇼핑 등으로 세계 최악의 노동강도와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며 "미국·유럽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실패를 인정한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에 열을 올리는 작태를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금융노조 산하 신한·우리·SC제일·하나·외환·KB국민·한국씨티·NH농협·수협중앙회·대구·부산·경남·광주·전북·제주은행지부 등 15곳이 공동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민간은행 직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 중인 성과연봉제로 실적압박과 과당경쟁에 시달리다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 다니면 도둑이나 마찬가지)라는 현실에서 은행을 떠나고 있다"며 "여기에 성과연봉제를 확대 도입하면 금융공공성이 훼손돼 은행들이 이윤추구만 일삼게 되고 그 피해는 금융소비자인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특히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노사합의 없이 성과연봉제 강제도입을 시도하는 은행이 있다면 강력한 응징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배혜정  bhj@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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