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가운데 서울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하는 석우는 어린 딸을 부산에 있는 엄마에게 데려다주기 위해 KTX 열차에 오른다.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올라타면서 기차 안은 삽시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한다. 열차에 몸을 실은 사람들은 부산까지 가는 동안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개봉 첫날 한국영화 사상 최대 관객을 동원했다는 <부산행>을 봤다.

전작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에서는 교실 안 계급관계를, <사이비>에서는 종교 문제를 다루는 등 사회성 있는 작품을 만들어 온 연상호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에두르지 않고 우리의 현실을 직설적으로 표현해 낸다.

"괴담이나 악성 유언비어에 동요하지 마라" "지금은 정부를 믿어야 할 때" "과격 시위대" 등 영화 속 정부 관계자가 쏟아 내는 말들은 스크린 밖에서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 온 그것이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다 구할 수도 있었잖아"라며 분노하는 주인공의 외침과 "나만 살아서 미안해"라는 고등학생의 울먹임에 우리는 2년 전 세월호를 떠올리면서 영화 속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한다. 현실은 영화를 해석하고 있다.

 

무엇보다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기차라는 공간은 지금의 사회를 상징하기에 매우 적당하다. 신자유주의는 그동안 폭주하는 기차로 많이 묘사돼 왔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대응해 만들어졌던 세계사회포럼(WSF)에서도 "멈추지 않고 폭주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기차를 멈춰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 왔다. 많은 학자들도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 기차를 멈출 것인지, 뛰어내릴 것인지, 방향선회를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는 300킬로미터로 달리는 KTX보다 더 빠르게 파국을 향해 질주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악의 임금 불평등을 기록하고(한국노동사회연구소) 있는 한국은 내년 최저임금을 440원(시급 6천470원) 올리기로 결정했다. 세계적인 경제침체 속에서 미국·영국·독일·일본·러시아 등이 적극적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제위기를 벗어나려 하는 정책을 편 것과는 정반대로 향하고 있다. 최소한의 소득이 보장돼야 구매력이 생기고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는 논리는 사용자들의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실업대란 주장에 밀려 버렸다.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의 핵심인 성과주의도 광기를 더하고 있다. 기필코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밀어붙이기는 헌법과 근로기준법 위에 군림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조의 선택이 총파업밖에 없음은 어찌 보면 자명한 일이다.

노조파괴 행위는 어떠한가. 유성기업 노동자는 100일이 훌쩍 넘은 지금도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냉동고에 누워 있다.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유성기업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개입해 왔다는 증거가 있지만 책임자는 처벌받지 않았고, 오히려 지난 5년간 노조를 민·형사상 고발로 탄압해 왔다. 그런 면에서 유성기업이 2013년 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 내린 해고조치가 무효라는 21일 법원 판결은 지극히 마땅하고 당연한 일이다.

영화 <부산행>에서 부산은 기차가 목적지로 삼고 있는 안전지대다. 그러나 현실의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안전한 목적지는 어느 곳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현실은 영화보다 잔혹하다.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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