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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머리엔 빨간색 띠를, 왼쪽 팔엔 붕대를 두른 이재헌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장이 서울 용산구 갑을빌딩 앞에서 기자를 기다렸다. 앞자리가 한산했다. 건물 안 경비노동자가 폐문 알림장을 유리문에 붙였다. 양복 차림 사람들이 종종 폐문을 드나들었다. 약속한 시각, 마이크 잡아 말을 풀었는데 말 못할 사연이 많아 말이 길었다. 노조파괴를 규탄하고 교섭을 촉구했다. 주먹 종종 쳐들어 기세 높였으나 구호는 건너편 버스정류장을 향했다. 무전기 든 경찰이, 수첩 든 회사 직원이 멀찍이서 바빴다. 그 앞 비좁은 인도를 지나던 사람들이 잠시 멈칫거리다 고개 숙여 휙 지났다. 찌푸린 표정이었다. 푹푹 찌는 날이었다. 홍보팀 직원이 한참을 달려와 다른 기자가 왔는지를 물었다. 다른 기자가 없었으니 대화가 짧았다. “아무래도 사안이 그렇긴 하죠. 노동뉴스니까 오셔야 했을 테고”라고 직원은 덧붙였다.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기자회견 다음날 포털사이트 뉴스 면에 갑을오토텍 인도법인이 인도 서부지역에서 남부 항만도시로 이사했다는 뉴스가 깔렸다. 사진도 내용도 한 모양새였다. 홍보팀 직원이 진땀을 뺀 모양. 불편한 기사는 구석에 파묻혔다. 물량 공세는 성공했다. 직장폐쇄와 용역 투입, 복수노조 설립으로 이어지는 노조 탄압도 오랫동안 성공적이었다. 부당노동행위로 회사 대표가 실형을 받은 일은 이례적이었다. 중요한 뉴스가 되는 일은 더욱 드물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동료의 영정을 들고 여전히 길에 섰다. 노조파괴 전문으로 통하는 어느 노무사는 징계 기간이 끝나자 새 사무실 문을 열어 복귀를 선언했다. 복수노조 시행 5년, 곳곳이 폐허다.

정기훈  photo@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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