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직급이라도 성과에 따라 연봉 차등 폭이 최대 40%까지 벌어지는 내용의 '민간은행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이 공개됐다. 같은 직급끼리 연봉차이를 30%로 정했던 금융공기업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보다도 한발 더 나아갔다. 금융노조(위원장 김문호)의 총파업 예고에도 민간은행으로까지 성과주의 일방통행이 확산되고 있다. 노동계 반발이 격화하는 모양새다.

◇호봉제 폐지·연봉 차등 폭 40%=은행연합회는 21일 "비효율 및 무임승차 문제 해결, 생산성 및 효율성 강화를 위해 성과연봉제 도입이 절실하다"며 외부전문기관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만든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호봉제는 폐지되고, 직급별 기본급 상한제(페이밴드)가 도입된다. 은행원 연봉 차등 폭을 평균 20~30%로 운영하고, 향후 40%까지 차등 폭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도록 했다. 관리자(부부점장 이상)는 30% 이상, 일반 직원(책임자급 이하)은 단계적으로 20% 이상 확대한다. 직무 특성을 고려해 연봉 차등 폭을 최대 50%까지 적용한다. 전체 연봉에서 성과급 비중은 관리자급 30% 이상, 책임자급 20% 수준으로 확대한다. 평가에 따라 최고-최저 평가 등급자 간 성과급 차등 폭은 최소 두 배 이상으로 설정했다.

지금까지 부·팀·지점 단위로 평가되던 성과평가는 개인평가로 확대한다. 개인평가가 직원 평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20% 이상 설정하도록 했다. 개인 역량평가는 5단계(S~D등급)로 산출하고, 각 등급별 인원이 최소 5% 이상 되도록 한다. 평가에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개인평가 결과는 피평가자에게 반드시 공개하고, 피드백 면담을 의무화한다.

은행연합회는 "성과연봉제 도입으로 불완전판매나 과당경쟁, 협업 저해 등 부작용 우려가 있지만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면 충분히 해소할 수 있을 것"며 "불완전판매가 발생하면 감점이 되도록 개인 평가지표를 설정하면 되고, 현실적인 목표를 개인 성과평가 목표로 부여하면 과당경쟁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민간은행은 이번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각 은행의 현황, 노조·직원들과 협의 등을 고려한 구체적인 적용방안을 마련해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아라?=이 같은 가이드라인이 발표되자 은행 종사자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한 시중은행 직원은 "은행 현장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 같다"고 꼬집었다. 실제 "불완전판매가 발생하면 감점을 주면 된다"는 사후약방문식 페널티 적용이 실적압박에 따른 불완전판매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방안이냐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실적압박 때문에 미칠 것 같은데, 성과에 따라 연봉 차등 폭이 40%씩 나게 한다는 건 경쟁하다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도록 평가를 공개하고 피드백 면담을 의무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상적인 권고일 뿐"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금융노조는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은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으라'는 것으로, 10만 금융노동자 전체를 노예로 만들겠다는 모욕적인 선언"이라고 반발했다.

노조는 이날 성명을 통해 "성과연봉제는 단순히 임금체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저성과자 해고를 합법화하려는 노동개악의 일환"이라며 "저성과자 해고를 위해 금융산업을 아수라장으로 몰아넣은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사측에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노조는 95.7%의 찬성률로 쟁의행위를 가결한 상태다.

한편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이날 가이드라인 발표 직후 노조를 찾아와 대대표교섭을 제안했다.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교섭을 진행하자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사용자측이 26일 오후 대대표교섭을 열자고 요구했다"며 "22일 노조측 교섭위원들과 논의해 가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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