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두섭 변호사(법무법인 여는)

대상판결 : 대법원 2016.6.23 선고 2016다13741 판결

1. 사건의 경과


원고들은 한전KPS의 각 출장소에서 발전소와 변전소, 변전소와 변전소 사이의 송변전 설비를 유지·관리·보수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이다. 즉 선로순시·초기점검·기별점검·정밀점검·특별점검, 항공장애 등 점검 및 소모품 교체, 전선접속개소 점검, 스페이서 점검, 일상정비, 긴급복구 조치 등 각종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전KPS는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송변전 선로 유지보수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한전KPS의 각 출장소에는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정규직도 있고 원고들과 같은 하청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들도 있다. 하청업체에 속한 원고들은 한전KPS를 피고로 불법파견관계임을 주장하면서 근로자지위확인 등의 소를 제기했고 법원은 1·2심 모두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피고 회사측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이를 확정했다.

2. 판결의 요지와 검토

우선 파견근로관계 여부를 다투는 사건에서는 이례적으로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으로 기각 확정됐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 자체가 파견근로관계임이 명확한 것도 있고 불법파견 관련 사건의 법리적 쟁점들이 그동안 어느 정도 대법원 판결을 통해 정리된 것도 그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서울고등법원 판시 내용을 보면 파견근로관계 여부를 판단하는 일반적인 법리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건 등에서 제시한 판단기준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즉 ‘원고용주가 어느 근로자로 하여금 제3자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경우 그 법률관계가 위와 같이 파견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는 당사자가 붙이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제3자가 당해 근로자에 대하여 직·간접적으로 그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당해 근로자가 제3자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돼 직접 공동작업을 하는 등 제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는지, 원고용주가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 교육 및 훈련, 작업·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고 당해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제3자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원고용주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그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15.2.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등 참조)’고 설시하고 있다.

이 사건과 해당 판결은 새로운 법리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름 특징을 찾아보자면 다음과 같을 것을 들 수 있다.

우선 서울고등법원 판시 내용을 보면 파견근로관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전제로서 근로관계의 실질에 관한 사실관계를 살펴보고 있는데, 여전히 ‘① 계약의 목적 또는 대상의 특정성·전문성·기술성 ② 기업 실체의 존부와 사업경영의 독립성 ③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권 행사(업무수행의 과정)’라는 항목을 기준으로 사실관계를 살펴보고 있다. 이는 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건 등에서 대법원이 일반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기 이전에도 서울고등법원 등 하급심 판결에서 차용해 오던 판단 방식이었다. 대법원에서 일반적인 판단 기준이 제시된 이후 법원의 파견과 도급 구분기준이 달라진 것처럼 일부 회사들이 아전인수식 주장을 펴 왔으나, 이번 판결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계약의 목적이 파견계약의 성격에 가까운지, 도급계약의 특성을 띠는지, 대금지급은 파견대가의 성격을 갖는지, 하청업체 사업경영의 독립성 여부는 여전히 중요한 판단 요소이며, 이러한 요소들은 업무수행과정에서 지휘감독의 실질적 주체를 판단하는 데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다음으로 원고들은 송변전 선로 유지·보수를 위해 관련 기술자격증을 보유하고, 상당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청업체는 한전KPS와 오랫동안 관계를 맺고 있었다. 피고측은 이를 이유로 단순 반복적인 노무제공이 아니어서 도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소외 회사가 원고들을 피고의 출장소에서 근무하게 한 이외에 고유의 기술이나 지식 등 다른 것을 제공한 바는 없다’고 해서 그러한 기술과 자격증은 원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 소외 하청업체가 보유한 것이 아니라고 봤다. 전문적인 기술의 투여를 요하는 업무라도 단지 노동자에게 그러한 전문적 기술이 있을 뿐이고 하청업체는 여전히 인력을 투입하는 역할에 불과하다면 업무의 성격이 전문적 기술을 투여하는 업무라고 하더라도 달라질 것이 없다.

오히려 법원은 “원고들의 수행한 송변전 시설 점검, 정비업무 중 상당수는 위험성이 높고 일정한 수준의 기술과 그 숙달을 요하는 것으로서 피고는 원고들을 직접 지휘·감독할 필요가 있었고 상세한 정비절차서를 마련하고 교육을 실시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세 번째로 피고측은 하청업체가 취업규칙을 가지고, 인사관리를 하며 한전KPS외에 다른 업체들과 여러 사업들을 수행하고 있으며, 독자적인 기업체계를 갖추고 있는 등의 사실을 들면서 파견이 아니고 도급관계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비록 소외 회사가 원고들과의 고용계약에 따른 각종 인사처리를 행하고 독자적인 조직체계를 가지는 등 회사의 실체 내지 사업경영상 독립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피고와 원고들 사이에 직접고용관계를 인정할 수 없는 근거가 될 뿐, 근로자 파견인지 도급인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즉 채용·징계 등에 관한 기본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취업규칙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10인 이상이면 파견업체도 취업규칙 작성의무가 있음), 파견업체 나름의 조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임금지급(임금은 파견사업주 명의로 지급되는 것은 당연), 4대 사회보험료를 파견사업주 명의로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는 묵시적 근로관계에서도 하청업체 명의로 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 등은 파견근로관계를 부정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파견근로관계에서도 파견사업주가 행하는 사항에 대해 사용사업주가 관여하고 있다면 이는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데 유리한 징표가 될 수 있다(편면적 징표).

이 사건은 한국전력의 자회사이자 공공기관인 한전KPS에서 발생한 불법파견 사건이다. 공공기관 평가에 반영되는 정규직 숫자 줄이기로 인해 한전KPS는 송변전 유지·보수·점검업무라는 고유업무 일부를 하청업체 인원을 통해 불법파견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원고들이 맡고 있는 송변전 시설 유지·보수·점검업무는 위험성이 높고 이러한 업무가 잘못 수행될 경우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도 크다. 일부지역 단전을 상상해 보라. 철저히 관리하고 지휘감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이를 도급형태로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이제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임이 확인됐고 원고들의 사용자도 하청업체가 아니라, 피고 회사 한전KPS라는 점이 확인됐다. 그리고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도 존재한다. 송변전 유지·보수·점검업무를 수행하는 한전KPS 송변전 파트 조직체계가 존재하므로 이제 원고들을 근무기간에 맞춰 정규직 노동자로 처우해 주면 이 사건 자체는 일단락될 것이다. 그러나 모범사용자이길 기대했던 한전KPS는 판결 내용 자체를 왜곡하면서 계약직으로 입사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2년 근무 후 판단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을 받은 원고들로서는 황당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의 현재 진행상황은 불법파견 문제를 개별적인 소송을 통한 구제절차만으로 해결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 준다. 소관 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직무유기, 사법기관의 불법파견에 대한 솜방방이 처벌, 대법원 판결로 불법파견이 확인됐고 공공기관임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한전KPS의 태도 속에 원고들은 오늘도 불안한 마음을 안고 송전탑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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