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준상 전 KBS 이사

최저임금 인상폭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되레 일자리 상실로 나타났다는 언론보도를 심심찮게 접한다. ‘선한 의도가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경고음으로 풀이하면, 인상폭이 될수록 낮은 게 좋다는 얘기를 하는 것처럼 비친다. 물론, 보도 의도야 안타까운 상황을 알리려는 선한 것이었지만, 이렇게 비치는 나쁜 결과를 낳았을 수도 있다.

이런 틀에서 언론보도를 접하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비해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 26명을 올해 10월까지 해고하고 12명을 다시 채용하기로 최근 결정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미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했으니 올해 최저임금 인상폭에 관계없이 이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주민투표를 다시 해서 결정을 물릴 수도 있는 일이다. 두 가지 차원에서 그런 가능성을 찾아보자. 첫째, 아파트 경비업무의 범위는 도대체 어디까지이며 부가서비스 노동은 없는가 하는 측면이다. 둘째, 굳이 안 해도 되는 업무를 부가 서비스 차원에서 하고 있다면 그 업무의 기회비용은 얼마나 되는가 하는 점이다.

아파트 경비업무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지만, 분명한 건 아파트 경비업무도 경비업법 제2조에서 규정하는 ‘시설경비업무’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경비대상시설에서의 도난·화재 그 밖의 혼잡 등으로 인한 위험발생을 방지하는 업무”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아파트를 출입하는 사람과 차량의 안내와 통제, 아파트 안 주차장 정리, 방범상 취약지점의 순회와 점검, 범죄에 대한 대처, 화재예방 조처, 경찰과 소방관서에 대한 정보전달 등이 속한다고 보는 게 보통이다.

경비원들이 흔히 하는 아파트 주변 청소 행위는 경비업무가 아니다. 노동위원회 판정에서도 본연의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그 정당성을 인정해 주고 있을 뿐이다. 택배물품 보관과 전달 역시 경비업무와는 관련이 없다. 이 업무를 시키려면 따로 보상이 있어야 하지만 암묵적으로 해 주고 있을 뿐이다.

문제를 단순화시켜 택배물품 보관과 전달이 낳는 기회비용 문제를 대전 서구의 아파트에 적용해 보자. 지난해 국내 택배물량은 모두 18억1천600만개였다. 2014년 대전시 주택과 아파트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16%, 3.7%였다. 대전의 택배물량은 5천739만개, 이 중 대전 아파트의 물량은 3천300만개였다. 대전의 아파트가 327만채이니 한 아파트당 연간 101개, 월 8개가 넘는 택배가 전달된 꼴이다. 무인택배보관함이 있는 아파트가 있기는 하지만 극히 예외적이고 대부분 경비원들이 도맡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늘어난 이 아파트 경비원 인건비는 1인당 월 17만원씩 월 442만원 정도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오르지 않았다고 해도 이 비용은 아파트 주민들이 부담해야 할 성질의 것이었다. 대충 따져 보자. 10가구 정도가 이용할 수 있는 무인택배보관함은 설치에 1대당 130만원 정도가 든다. 해당 아파트는 788가구였으니 79대를 설치하려면 최저임금 인상분 23개월치에 해당하는 1억270만원의 목돈이 든다. 유지관리를 위해 일정한 장기수선충당금이나 수선유지비를 달마다 걷어야 한다. 무인택배보관함을 설치하지 않는다면, 경비원에게 택배물품 보관비용을 따로 지급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택배물품을 보관할 수 있는 별도 공간을 확보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 지하철 보관함의 경우 4시간 기준으로 물품 크기에 따라 2천~4천원의 보관비를 내야 한다. 지자체 등에서 운영하는 무인 안심택배보관함도 이틀이 지나면 하루 2천원씩 비용이 든다. 한 달에 배달되는 8개 택배 중 5개에 대해 상업용 무인택배보관함을 이용한다면 최소로 잡아도 5천~6천원이 넘는다. 788기구로 환산하면 월 394만~473만원 꼴이다. 해당 아파트가 부담했던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분과 거의 비슷한 규모다.

아파트 주민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경비원들의 인건비를 추가로 부담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택배물품 보관과 전달이라는 서비스만 떼어 기회비용을 따져 보면, 결코 새롭게 추가로 부담하는 비용이 아니게 된다. 지금까지 경비원들의 무상 부가서비스로 인해 주민들이 부담하지 않아 온 비용의 규모, 그래서 지금부터 당연히 짊어져야 할 비용인 것이다.

관건은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지다. 여기서는 고양이는 주민들이고 방울은 보상이 따라야 할 경비업무를 말한다. 주민들의 인식이 개선된다면 가장 좋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언론은 이 부분에서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경비원들을 고용한 도급업체들에 문제제기의 기대를 걸기는 어렵다. 치열한 경쟁 때문이다. 게다가, 상당한 기간 동안 아파트 주민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비례하는 용역계약을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윤을 희생하면서 최저임금 인상분의 상당부분을 흡수하는 조직형태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악순환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노동조합이 주도하는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모델을 여기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싶다. 자신의 고용을 위해, 그리고 생활공동체의 전형을 창출하기 위한 이런 도전에는 다양한 사회적 지원을 주어 마땅할 것이다.

지난해 초부터 최저임금 적용을 받아 온 아파트 경비원의 월평균 임금은 149만원 정도다. 올해 최저임금이 얼마나 오를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새로운 추가비용이 아니라는 인식의 확산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절실하다. 무한정 이렇게 따질 수는 없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따지는 첫걸음을 떼어야 할 시기다.

전 KBS 이사 (cjsang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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