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정부가 내놓은 국가브랜드가 '창조'적인지, '표절'인지 여부는 차치하자. 논란의 여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결론이 너무 명확해서다. 누가 봐도 '크리에이티브 프랑스'와 '크리에이티브 코리아'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폰트(글자모양)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빈곤한 변명이 참으로 안쓰럽기만 하다.

그럼에도 정부가 발표한 국가브랜드, 창조적인 대한민국은 지금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적절한 표현인 듯 싶다.

얼마 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20년 민주노총 역사상 대표자가 받은 가장 높은 형량이다. 중형의 근거가 된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대회는 쉬운 해고와 평생 비정규직화 등 정부의 노동개악과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잘못된 정부 정책에 대한 노동자와 국민의 저항이었다.

헌법 교과서는 저항권을 "헌법의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자에 대해 기존의 헌법질서를 유지·회복하기 위한 다른 구제수단이 없는 경우 예외적이고, 최후의 수단으로서 저항할 수 있는 권리"로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헌법 조문을 무시한 정부의 노동정책과 헌법 전문에 명시된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내용을 왜곡하는 정부의 국정교과서 제작에 맞선 민중총궐기는 국민의 저항권 행사였다.

그럼에도 국가는 한 위원장에게 5년을 선고했다. 집회 시위와 관련해 이렇게 높은 형량을 준 사례를 찾을 수가 없다. 대통령의 아버지 시절 이후에는 말이다.

이러한 국가의 창조적인 행위는 사회 곳곳에 뿌려지고 있다.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기자들과 만나 “학생들은 빚이 있어야 파이팅을 한다”고 말했다. 무상지원 방식의 대학생 국가장학금 비중을 줄이고 무이자 대출을 늘리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한 발언이다. 대부업체 사장도 낯 뜨거워 차마 하지 못할 말을, 그것도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청년들이 끼니를 굶어 가며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하는 상황에서 용감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의 ‘창조적인 신념’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대한민국 장학재단 이사장이 이렇게 물꼬를 텄으니 하반기에는 TV 광고를 통해 "돈 빌려서 파이팅하세요"라는 카피가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

크리에이티브의 클라이맥스는 정부·여당이 찍는다. "하필이면 (대통령이) KBS를 오늘 봤네"라면서 기사를 빼고 논조를 바꿔 달라는 청와대 홍보수석의 지시(혹은 읍소 또는 압력) 이후 국영방송 뉴스가 달라진다.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세월호 참사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압력을 넣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홍보수석의 통상적인 업무라고 해명한다. 청와대의 통상업무가 국영방송 뉴스 통제인 것도 깜짝 놀랄 일이지만 그로 인해 뉴스가 바뀐 것은 실로 감탄스러운 일이며, 이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그 국영방송과 여당 대표에 출마하는 저 홍보수석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역시 ‘창조적’이다.

이러한 창조적인 사회에 적응하려면 우리도 창조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만약에 그분께서 ‘하필이면’ 무엇인가를 보실 일을 없게 만들고, 웬만하면 어디라도 다니시지 않게 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된다면 매년 하위권을 맴도는 대한민국의 언론자유 순위가 좀 높아지고, 서민들의 삶의 질도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라는 창조적인 생각 말이다.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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