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인의 근면성을 상징하는 것은 바로 장시간 근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연간 2천시간 이상 일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노동시간 길기로 1·2위를 다툰다. 단독주택들이 사라지고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가사노동 필요도 대폭 줄어든 만큼 대중들은 일터에서 생업에 더 시간을 쓴다.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업무의 연장에 있는 회식도 잦다. 오죽하면 대부분의 나라들이 상식으로 생각하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표어가 그토록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 수 있으랴.

장시간 근로는 우리가 경공업부터 중화학공업 그리고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 산업화와 산업의 고도화를 추구하면서 관행화됐다. 그 속에는 “남보다 더 일해야 따라잡을 수 있다”는 식의 소위 ‘캐치업 정신(catch-up spirit)’ 즉 따라잡기 정신이 배어 있다. 국가 주도로 만들어 낸 시장의 무자비한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인들은 모두 남보다 ‘더 일하기 경쟁’을 벌이면서 조직과 사회를 꾸렸고, 그 부산물로 가족을 부양했다.

그러나 장시간 근로는 분명 개인들에게 엄청난 대미지(damage)를 주며 희생을 요구한 것이었다. 관행화한 장시간 근로는 다른 말로 하면 일과 쉼이 균형을 이뤄야 하는 민주적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적 시민권(social citizenship)이 '더 일하기'를 정상처럼 보는 문화적 강제하에서 자발적 반 비자발적 반으로 반납 내지 박탈당한 상태에 다름 아니다. 이미 근 반세기 전에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치며 스스로를 불사른 전태일 열사의 몸짓은 잃어버린 시민권을 회복하려는 우리네 민초들의 절규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청년들이 자조적으로 내뱉는 이른바 ‘헬조선 담론’에서도 강요된 장시간 근로의 부당성에 대한 지적이 빠지지 않는다.

과거 한국이 최빈국 지위를 벗어나기 위해 상대적 저임금을 감내하고 압축적 고도성장을 도모할 때에는 그 유용성이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IT와 융·복합을 통해 부가가치가 만들어지는 하이테크 시대에 무언가를 들입다 붙잡고 자리 지키면서 단순 반복적인 일에 시간 주권까지 상실한 채 긴 시간을 들이는 관행이 과연 의도한 결과를 내올 수 있을까.

한편에서 누군가는 미래의 안정된 전망을 상실한 채 저임금과 무권리를 감내하며 이 일자리 저 일자리 부초처럼 떠다니도록 돼 있고 다른 한편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고용의 지속성이 보장된 죄로 이 업무 저 업무 다 감내하면서 죽도록 일하며 살아가도록 돼 있는 지금의 노동시장 질서는 모두 장시간 근로 체제를 매개로 한다. 이런 체제하에서 일하는 이들은 행복에서 멀어지고 생산성은 도무지 오르지 않으며 그러다 보니 새로운 일자리 창출 전망도 잘 나오지 않는다.

이제 근로시간단축을 향한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 그 틀을 전제로 일하는 방식을 새로 짜야 한다. 그러한 조건하에서 새로운 산업의 경쟁력이 필요로 하는 논리에 적응하며 미래를 주도해 나갈 인력을 양성시켜 가야 한다. 그러면서 안정적인 일자리 제공 기회의 확대를 함께 도모해야 한다.

바야흐로 장시간 근로가 아니라 근로시간단축을 통한 적정한 일자리의 제공을 이루는 것이 애국이요, 시대정신인 시대다. 특히 내년 대선이 제공할 노동의 미래와 관련한 정책 경연장에서는 이와 관련한 파격적인 논의들이 풍부하게 나오길 기대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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