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거짓말. 당신은 그 시간에 일을 하지 않았어.”

시작은 그랬다. 만약 그때 회사가 “미안하다”고, “당신이 힘들게 일한 것을 알고 있다”고 인정했더라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홀로 8년 싸움이었다. 이 인터뷰는 회사로부터 자신의 실체를 부정당한 직장인의 투쟁과 승리에 대한 짧은 기록이다.

장마전선 영향으로 전국에 장대비가 쏟아지던 지난 4일 저녁. 하늘색 체크무늬 셔츠에 감색 정장바지를 입은 ‘표준형 직장인’ 차림의 양도수(41·사진)씨가 서울 서교동 <매일노동뉴스> 사무실을 찾았다. 겉으로 봐서는 ‘별로 아파 보이지는 않는데…’라는 느낌을 주는, 그러나 오른쪽 허파의 절반을 잘라 내는 큰 수술을 받은 그는 산재노동자다.

최근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재판장 윤성원)는 잦은 야근으로 면역력이 저하돼 폐렴과 결핵에 걸려 폐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소프트웨어 개발 노동자에 대한 업무상질병을 인정했다.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해당 노동자의 산재요양 청구를 승인했다.<본지 7월4일자 2면 ‘과로로 결핵 걸린 소프트웨어 개발자, 산재소송 승소’ 기사 참조>

양씨는 해당 판결의 주인공이다.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신문에 저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해도 됩니다. 대신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회사의 이름을 함께 실어 주세요.”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난 뒤 무려 8년간 법정투쟁을 벌여 산재를 인정받은 그는 지금도 회사를 상대로 싸우는 중이다.

그때 회사가 "미안하다"고 했더라면…

직장생활의 시작은 누구나 비슷하다. 양씨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제대한 뒤 SI(시스템종합) 업계에 발을 디뎠다. 이 회사 저 회사 전전하며 인턴으로 업무를 익혔다. 사회 초년병 시절을 거쳐 처음 정규직으로 들어간 회사는 KB금융지주의 IT전문 계열사였다. 거기서 4년 정도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런 뒤 경력직으로 이직을 했다. 스펙을 쌓아 보다 나은 조건의 회사로 옮겨 가는 직장인들의 평범한 경로를 그 또한 거부하지 않았다.

2006년 7월 양씨는 농협중앙회가 전액 출자한 IT전문 계열사 ㈜농협정보시스템에 창사 원년멤버로 입사했다. 불과 2년 뒤 자신이 만신창이가 돼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새로운 마음으로 미래를 설계했다.

“선생님 혹시 암환자세요?”

2008년 9월의 어느 아침. 휴대전화 너머로 생뚱맞은 얘기가 들려왔다. 며칠 전 정기건강검진을 받은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혈액검사 수치가 좋지 않으니 빨리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 보라는 거였다. 사실 그즈음 양씨의 몸은 조금씩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잠을 자도 피로가 가시질 않고, 일에 집중하기 어려울 만큼 기침이 심했다.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다. 감기약을 먹으며 버티던 중 이런 전화를 받았다.

급히 대학병원을 찾았다. 종양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가 말기 암환자보다 높은 850을 가리켰다. 중증 폐렴이었다. 결핵성 폐농양 진단도 받았다. 곧바로 입원을 했다. 한 달 정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웬만한 항생제 주사는 다 맞았다. 하지만 차도가 없었다. 퇴원해 통원치료를 받으며 먹는 항생제를 투약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다시 입원을 했다. 더 강한 항생제 주사를 맞았는데도 효과가 없었다. 내과 치료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상태였다. 이대로 방치하면 염증이 다른 장기까지 번지고, 심하면 장기를 녹일 수 있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나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폐의 일부를 잘라 내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당일 병실에는 병원에서 쓰라고 내어 준 유언장이 놓여 있었다. 그만큼 위험한 수술이었다. 아내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 냈다.

유언장을 손에 들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 정기훈 기자

“수술을 앞두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해 봤어요. 태어나서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해 본 적이 없고, 예전에 잠깐 피웠던 담배도 진즉에 끊은 상태였는데. 폐를 잘라 내야 한다니….”

양씨는 농협정보시스템에 입사한 후 농협중앙회 NH쇼핑몰 개발 프로젝트와 농협목우촌 종합정보시스템 개발 프로젝트에 잇따라 투입됐다. 두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뒤에는 NH쇼핑몰 운영업무와 개발업무를 동시에 맡았다.

농협정보시스템에서 근무한 2년4개월 동안 그는 말 그대로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에 내몰렸다. 평일 대부분은 자정을 넘겨 퇴근하고, 토요일에도 저녁 6시나 밤 10시까지 일했다. 기한 내에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일요일에도 일했다. 한 달에 하루 또는 이틀밖에 쉬지 못했다.

상급자들은 밤늦은 시간에 양씨에게 업무를 추가로 부여하거나 “프로젝트 진척이 왜 이렇게 느리냐” 혹은 “전날 지시한 사항을 아직도 끝내지 못했느냐”며 그를 질책했다. 새벽까지 근무한 다음날에도 그는 오전 9시 정시출근을 해야 했다. 일주일이 ‘월화수목금금금’이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014년 소프트웨어 산업 종사자 87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9.9시간(9시간 54분), 연장노동은 2.7시간(2시간 42분)으로 집계됐다. 한 달에 1.8회 휴일근무를 하고, 2.1회 철야근무를 했다. 회사에 상주한 시간은 하루 평균 11시간42분이나 됐다.

소프트웨어산업 종사자들은 자신들의 이 같은 처지를 ‘SW=4D+3C+ABCD’라는 공식으로 설명하곤 한다. 어렵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하고(Dangerous), 희망마저 없는(Dreamless) 환경에서 담배(Cigarette)와 캔커피(Can coffee)·컵라면(Cup ramyon)으로 끼니를 때우다 아토피 피부염(Atopy)에 걸리고, 머리가 빠지고(Bald), 퉁퉁해지고(Chubby), 우울증에 시달리다(Depressed) 결국 업계를 영영 떠난다는 것이다.

연봉 깎고 해고하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양씨의 상황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폐 절제 수술을 받고 3주 뒤 복직했지만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를 때마다 숨이 차올랐다. 신경이 지나가는 부위를 수술한 터라 통증도 심했다. 결국 휴직을 신청했다. 6개월씩 두 번, 총 1년을 쉬었다.

“그때만 해도 산재라는 생각을 못했어요. 그저 내가 무리를 해서 그런가보다 했지. 집에서 쉬고 있는데 회사에서 전년도 근무평가가 반영된 연봉계약서를 우편으로 보내왔더라고요. 뜯어 보니 연봉이 깎인 거예요. 회사에서 계속 전화가 왔어요. 계약서에 빨리 서명하라고. 그때부터 화가 치밀더라고요. 일하다 병이 난 사람한테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죠.”

양씨가 연봉 삭감과 관련해 이의를 제기하자 회사는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라”는 식이었다. 이런 와중에 1년의 휴직기간이 만료됐다. 몸이 완전히 낫지 않은 양씨는 추가휴직을 신청했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사는 휴직은 최대 1년까지만 허용한다는 규정을 이유로 양씨의 요구를 거부했다.

“복직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어요. 회사 규정 지키려고 무리해서 출근했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회사에 전화를 했죠. 추가휴직을 위해 내가 준비할 서류를 알려 주면 보내겠다고, 필요한 절차가 있으면 따르겠다고. 그런데 답이 없었어요. 그렇게 2~3주 지났나….”

건강보험·고용보험 등 4대 보험 기관으로부터 양씨의 가입자 신분이 바뀌었다는 통보가 왔다. 회사가 한마디 언급도 없이 그를 해고한 것이다. 해고사유를 반드시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명시한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부당해고다. 양씨는 미처 낫지도 않은 몸으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회사측의 법 위반 사실이 명백한지라 부당해고 판정이 나왔다. 그런데 회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귀하에 대하여 기 행한 당연면직(해고) 처분을 취소하고, 다음과 같이 당연면직 처분을 행하며 그 일자 및 사유를 서면 통지합니다.”

두 번째 해고였다. 회사는 양씨가 중앙노동위원회에 이의신청을 제기할 수 없도록, 이의신청이 가능한 마지막날 특급우편으로 해고통지서를 보내왔다.
 

▲ 정기훈 기자


누구를 위한 노동부인가

산재소송은 해고를 계기로 시작됐다. 산재판정을 받으면 산재요양기간 동안 단행된 해고가 무효가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폐렴과 폐결핵 같은 감염성 질환이 산재로 인정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산재피해자 스스로 상병과 업무의 연관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양씨의 경우 잦은 야근에 의한 과로가 감염성 질환을 악화시켰다는 것을 증명해 내야 했다.

“회사에 찾아갔어요. 돈도 필요 없고 산재 인정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사실만 인정해 달라고 읍소했어요. 회사가 원한다면 보상금 일체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겠다는 말도 했어요.”

그때 회사는 이렇게 답했다.

“거짓말. 당신은 그 시간에 일을 하지 않았어.”

휴일까지 반납하며 밤낮없이 일했던 양씨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회사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그때까지 “소송 같은 거 하지 말라고, 해 봤자 이기지 못할 거라고” 말리던 아내도 이번엔 불같이 화를 냈다. 기업 인사파트에서 일해 온 양씨의 아내는 “보다보다 이런 회사는 처음 본다”며 양씨의 싸움을 응원하고 나섰다.

양씨가 장시간 노동을 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자료가 필요했다. 그는 관할 노동지청에 회사를 고소했다. 회사가 근기법을 위반하면서 직원들에게 과도한 연장근로를 시키고, 정작 연장근로수당은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그러자 회사는 ‘월간근무기록표’를 증거로 제출했다. 전체 직원의 초과근로시간과 해당 노동자의 확인 서명이 포함된 자료다. 회사가 내놓은 자료에는 팀장 이하 직원들이 매달 4~12시간 이내의 초과근로를 한 것으로 기재돼 있었다. 실제 노동시간과는 완전히 달랐는데도 관할 노동지청은 “직원들이 서명했고 이 자료가 허위인지 증명할 방법이 없다”며 더 이상 수사를 하지 않았다.

"나홀로 투쟁, 외롭지는 않았다"

양씨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노동지청 근로감독관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회사가 제출한 자료를 내놓으라고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스스로 ‘셀프 수사’에 돌입한 것이다. 자료를 직접 확인하니 기가 찼다. 자신의 월간근무기록표 서명란에 본인의 필체와 전혀 다른 7개의 글씨체로 서명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위조가 분명했다. 그는 회사를 사문서위조와 위조사문서행사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이 같은 우여곡절 끝에 양씨는 농협정보시스템에서 일한 2년4개월 동안 총 8천669시간의 초과근로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또 이를 토대로 산재 소송에서 이겼다. 산재소송 1·2심 재판부는 “원고(양씨)는 회사에서 일하는 2년4개월 동안 늦게까지 야근하는 일이 잦았고, 프로젝트 막바지 무렵에는 휴일에도 늦게까지 근무했으며, 극심한 과로와 상사의 질책 등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어 “원고가 업무로 인한 과로와 스트레스 등으로 면역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 결핵균이 활성화돼 상병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양씨의 손을 들어줬다.

여기까지 오는 데 무려 8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이들이 양씨의 나홀로 투쟁을 응원했다. 소송비용이 모자라 전세금까지 빼서 돈을 충당하고 있을 때 정보통신산업노조가 온라인 모금운동에 나섰는데, 전국의 IT업계 종사자들이 3만원 또는 5만원씩 보내왔다. 노조 조합원도 아닌 이들이 인터넷에 올라온 그의 사연을 보고 자발적으로 모금운동에 동참했다. 한 달 새 1천만원이 모였다.

“아마도 저를 통해 자신들의 울분을 표출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가 많고, 노조를 조직해도 파업에 나서기 어려운 통신업계 업무특성상 한데 모이기 어려운 사람들이잖아요. 저는 비록 8년이나 걸려 산재를 인정받았지만, 제 선례가 있으니 앞으로는 산재를 인정받기가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요. 제가 끝까지 소송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고요.”

양씨 사례는 평범한 직장인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 업무를 위해 쓰면서도 정작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대변한다. 회사는 과로로 병이 난 직원의 연봉을 깎고, 노동자가 휴직을 요구하자 해고로 답했다. 나날이 계속된 야근의 실체는 누가 서명했는지도 모를 월간근무기록표 앞에 너무나 쉽게 부정됐다.

"제 생각은 그래요. 요즘 정치권에서 자주 언급되는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이나 '칼퇴근법'이 장시간 노동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시킨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봐요. 하지만 그런 법안들은 직장 내에서 실효성을 갖기 어렵죠. 저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근기법에 하루 8시간 일한 노동자에 대해 '퇴근할 권리'를 보장하는 거예요. 이를 거부하는 사용자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요."

양씨는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규제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기업이 무서워하는 게 돈밖에 더 있나요? 돈으로 규제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현실이 씁쓸하지만, 해법은 그것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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