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을 변경해 기존 노동조건을 노동자에게 불이익하게 바꾸려면 노동자 집단의 집단의사결정 방법에 의한 동의(과반수 노조의 동의 또는 회의방식에 의한 과반수 노동자 동의)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반한 취업규칙 변경은 효력이 없다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면서 노동자집단의 동의를 받지 않는 경우에는 형사처벌 대상이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규정은 근기법이 사회적·경제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라는 점, 노동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의해 결정한 노동조건만이 적법·정당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것이다. 실제로 대법원은 위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근기법 제94조가 명문화되기 이전부터 “기존 근로조건의 내용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사실 위와 같은 법률 규정을 떠나서 생각해 보더라도, 계약관계의 한쪽 당사자에 불과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해 노동자들의 지위를 하향시킨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결론임에 틀림없다. 우리 법체계는 이런 상식에 기초해서 사용자의 자의적인 노동조건 불이익변경을 강행규정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최근 이 같은 법률과 상식에 반하는 주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일방적인 취업규칙 변경으로 노동조건을 저하시키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이미 임금피크제 도입 문제로 지난해 노사가 홍역을 치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성과연봉제 도입이 또다시 문제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획재정부가 올해 초 발표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에 따른 일방적인 임금구조개편이 강행되고 있다. 권고안은 ① 성과연봉제 적용대상을 기존 간부급(2급 이상) 직원에서 5급 이상 노동자로 확대하고 ② 고성과자와 저성과자의 기본연봉 인상률 차이를 3%로 확대하며 ③ 성과연봉 비중을 대폭 늘리고 최고와 최저 등급 간 성과연봉 지급률 차이를 두 배 이상으로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5월 ‘공공·금융부문 성과연봉제 관련 불법·인권유린 실태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진상조사단’이 실사한 내용을 보면 위와 같은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해 ① “성과연봉제에 대한 찬·반 여부를 인사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부당한 지시가 이뤄진 사례 ② 성과연봉제에 반대하는 직원에게는 상급자에 의한 면담이 강제되는 등 강압적으로 동의서를 징구한 사례 ③ 노사합의로 운영되던 산별교섭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사례 ④ 이사회에 왜곡된 법률자문 결과를 전달해 잘못된 정보에 기초한 의사결정을 유도한 사례 등이 발견됐으며 ⑤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사업장이 절대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성과연봉제가 전면적으로 확대·도입되면 기존에 고정적으로 지급받던 임금의 일부가 성과연봉으로 전환된다. 저성과자로 낙인찍힐 경우 심각한 수준의 임금 저하가 발생하고, 고정급여의 성과급화에 따라 통상임금이 하락하게 돼 법정수당도 줄어들게 되는 등 노동조건이 저하됨은 명백하다. 따라서 적법하게 성과연봉제를 확대·도입하기 위해서는 법률에 따라 과반수 노조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더구나 최근 성과연봉제가 일방적으로 도입된 대부분의 사업장은 단체협약에서 “임금체계 변경시에는 반드시 노조와 합의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다. 이러한 단체협약 규정에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것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으로 처벌이 예정돼 있는 범죄행위에 다름 아니다.

현재 민주노총은 20여개 공공기관을 상대로 성과연봉제 일방도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고발장을 접수한 상황이다. 필자도 고발장 작성에 동참했는데, 그 과정에서 현장 조합원들로부터 “사용자가 법률을 위반했으니 당연히 처벌되겠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도 일방적인 성과연봉제 도입이 강행규정 위반이라는 점에는 조금의 의문조차 없다. 그럼에도 사용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을지에 대해서 확신이 들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사법부에 꼭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이번에는 법대로 합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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