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브렉시트(Brexit),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주하기로 결정했다. 지난달 23일 국민투표에서 과반수 찬성이 나왔다. 브렉시트 반대운동을 하던 영국 노동당의 조 콕스 하원의원이 피살되고서 반대 지지율이 상승했다더니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고 결과는 말을 했다. 전 세계가 브렉시트에 즉각 반응했다. 순식간에 공포와 경계에 사로잡혔다. 세계 증시가 추락하고 환율이 요동쳤다. 실물시장에 앞서 반응하는 금융시장에서였지만 시장은 브렉시트를 반기지 않았다. 시장의 지배자 자본은 이렇게 반기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나는 문득 노동자가 궁금해졌다.

2. 브렉시트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정치인의 선동에 속아서 찬성투표를 했던 거라고 뒤늦은 후회를 하는 영국 국민이 많다는 뉴스를 들으며 나는 브렉시트 관련 뉴스를 찾아봤다. 영국 노동자들은 하나로 브렉시트 반대투쟁을 했던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 국제주의를 떠올린다면 반대해야 마땅했다고 보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노동당이 반대운동을 했다고 영국 노동자들이 그에 따라 반대투표를 한 것은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을 하지 않았다며 브렉시트 투표 직후에 당 의원들이 불신임을 결의해서 그의 사퇴를 종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조차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노동당 내 좌파 대부분은 브렉시트에 찬성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찬성투표를 했다. 노동조합도 마찬가지였다. 브렉시트를 앞두고서 철도·해운·교통노조(RMT), 철도기관사노조(ASLEF), 제과음식노조(BFAWU) 등은 브렉시트에 찬성 투표할 것을 호소하는 성명서까지 발표했다. 브렉시트면 영국 경제가 나빠지고 국제 위상이 추락하며 나라가 분열된다는데 어째서 찬성을 한다는 것인가. 경제 성장과 국가 발전을 생각하면서 국회의원·대통령 선출 투표를 해온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도대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영국 노동자의 투표였을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영국의 많은 노동자들이 영국이라는 나라의 경제가 어찌 되고 나라의 위상이 어떻게 될 거라는 것을 두고서 투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뭘까. 나라가 아니라면. 그들은 자신을 위해서 브렉시트에 투표를 했다는 것이다. 이건 브렉시트에 반대투표를 한 영국 노동자라도 반드시 그런 거를 두고서 투표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걸 말해 준다. 영국 노동자는 그저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서 브렉시트에 투표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 중 다수는 브렉시트에 찬성했다.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브렉시트 투표결과, 찬성이었다. 영국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익을 위해 이기적으로 브렉시트에 찬성했다고 나는 뉴스를 다시 읽었다.

3. 유럽연합은 국경을 초월한 하나의 유럽을 추구해 왔다. 상품·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는 하나의 유럽이었다. 시장의 자유, 자본 투자와 노동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며 또 하나의 국가 유럽을 추구해 왔다. 1993년 11월 발효된 마스트리흐트 조약은 시장통합에서 나아가 유럽중앙은행 창설과 단일통화 사용 등으로 정치 경제적 통합체로서 유럽연합을 출범시켰다.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 FTA 보다 더 국경을 허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이번 투표를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 의사를 표시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이렇게 분석한 뉴스기사를 읽었다. 그런데 그러면 브렉시트의 영국은 이제 FTA 등을 체결하지 않고 폐쇄적 시장체제로 전환한다는 것인가. 국민투표 후 뉴스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았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체결했던 협정을 대신할 협정을 다른 나라들과 체결하기 위해 영국은 바쁘게 생겼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유럽연합이 체결했던 것들을 영국의 이름으로 체결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렇게 보면 브렉시트가 곧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라고 읽기가 어렵다. FTA는 되고 유럽연합은 안 되는 무엇이 브렉시트를 선택하게 한 것인가. 관세 등 시장 장벽의 철폐와 투자의 자유 보장은 FTA의 일이라면, 유럽연합은 여기서 노동 이동의 자유까지 보장한다는 점이 다르다. 적어도 시장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그렇다. 이번 브렉시트 투표를 두고서 이민자문제가 주된 쟁점이 됐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영국은 유럽연합 가입으로 이민도 급증했다. 유엔 통계를 보면 지난해 영국 인구 6천471만명 중 이민자는 854만명(13.2%)에 달했다. 물론 유럽연합 회원국 국민의 이동 자유의 보장에 관해서다. 유럽연합 밖에서의 유입은 이와 다른 문제고 이는 최근 시리아 사태로 크게 대두된 것인데, 이 문제는 유럽연합과 직접 관련이 없다. 이 나라에서 소개되는 뉴스를 듣다 보면, 반이민자 선동으로 브렉시트 운동을 주도해 온 영국 독립당 같은 극우세력 선동이 찬성투표를 하게 한 것이라고 보인다. 이에 따르면 브렉시트는 암담하다. 이민자 봉쇄와 추방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에 합세한 영국 노동자들은 노동자연대를 포기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노동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는 유럽연합은 영국 노동자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상이었다고 투표로 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영국 노동당도 아닌 영국 독립당과 같은 극우세력의 선동에 넘어가 투표를 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민자들로 임금 등 노동자권리가 제대로 보장되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져 이제 영국 노동자들은 이민자의 일자리를 빼앗겠다고 투표했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랬다면 영국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 당원인 노동당도 이민자 문제로 대립해서 커다란 논쟁을 벌였어야 했고, 그 결과 노동조합과 노동당은 둘로 분열돼야 마땅했다. 그런데 그랬다는 뉴스를 나는 아직 듣지 못했다.

4.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위해서 유럽연합이 조직돼 운영돼 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럽연합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된 정책으로 추진해 왔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이 이번에 영국 노동자들을 브렉시트에 투표하도록 했다. 실제로 그동안 유럽연합이 추진해 온 정책은 ‘유럽연합은 자본의 집행위원회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상품·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는 하나의 유럽은 역설적이게도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을 효과적으로 집행하는 유럽연합의 기치였다. 그것은 영국 등 회원국들에서 복지를 약화시키는 긴축정책으로 나타났다. 상품과 자본 이동의 자유는 하나의 유렵 내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회원국 산업의 몰락을 가져왔다. 1980년대 영국에서 대처정권은 제조업을 포기하고 금융을 주된 산업으로 택하면서 제조업 몰락을 가져왔다. 금융의 런던은 성장하고, 제조업의 리버풀·맨체스터는 몰락했다. 이번 국민투표에서 북부 잉글랜드 구공업지대 노동자들은 대거 브렉시트에 투표했다. 유럽연합 이전 번영하는 시절에 대한 기억이 그들을 찬성투표하도록 했을 수 있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장되던 복지를 약화시키는 긴축정책에 반대해서 브렉시트에 투표를 했을 수도 있다. 브렉시트에 찬성했던 노동조합과 노동당 좌파, 그리고 기타 좌파세력은 유럽연합이 이미 개선할 여지가 없는 자본의 집행위원회라고, 영국 국가로서 가능했던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를 되찾겠다고, 회원국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정책을 마련해 집행할 수 있는 유럽연합의 의결 및 집행체계로는 노동자권리가 보장되는 노동자세상을 실현하기 어렵다며 브렉시트를 호소했을 수 있다. 이런 그들의 이유는 그들을 반이민 선동에 넘어가 브렉시트에 투표했다고 비난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브렉시트가 노동자권리에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은 유럽연합이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무역기구(WTO)처럼 신자유주의 정책을 집행하는 자본의 기구로 여기고 브렉시트에 투표한 것이니, 장차 탈주한 영국에서 그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느냐가 그들의 선택이 적절했는지를 평가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실천이 말해 줄 것이다. 결국 영국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꿈을 실현해 내겠다고 브렉시트를 선택한 것이다.

5. FTA,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을 해온 우리의 노동운동은 브렉시트를 지지해야 할까. 이미 영국 노동자들이 브렉시트를 택한 상태에서 바보 같은 질문이다. 그들이 노동자세상을 실현해 내기를 기원하면 될 일이다. 유럽의 국가 경계를 허물겠다는 유럽연합의 지향은 국경을 초월한 노동자연대를 가능하게 할 수도 있고, 국적을 이유로 한 차별을 불식시킬 수도 있으며, 자본에 의한 총체적인 노동 지배 도구로서 국가권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겠다고 천진난만한 꿈을 꾸게 했고, 그것이 브렉시트를 반대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니 영국 노동자들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게 했다. 이런 의문들 사이에서 유럽연합이 노동자권리에 어떤 것이고 노동자에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나는 브렉시트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마스트리흐트조약으로 출범한 유럽연합은 사회부문에서 노동조건의 통일을 추진해 왔다. 이를 위해 노동자권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왔다. 수많은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그런데 내가 들여다보았던 노동자권리에 관한 유럽연합의 가이드라인들은 독일·프랑스 등 노동자권리 보장에 앞선 나라의 것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의 것이었다. 가이드라인은 모든 회원국들에 대한 것으로 최저수준의 것인데 그것을 내세워 각 나라에서 보장해 온 기존의 노동자권리를 삭감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무엇인가. 자본의 무한 착취를 보장하기 위해서 노동자권리 삭감 정책을 추구하는 유럽연합은 신자유주의의 도구로 추락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영국 노동자의 브렉시트를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브렉시트를 두고서 런던과 리버풀·맨체스터 노동자는 갈라졌다. 더는 하나의 당, 하나의 노동조합으로 단결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분열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될 지경이다. 유럽연합이든 신자유주의 세계화이든 자본의 노동에 대한 착취의 강화로 노동자권리가 삭감되는 것이라면, 유럽연합의 영국이든 브렉시트의 영국이든 노동자의 단결로 자본에 맞서야 한다. 브렉시트를 두고서가 아니라 노동자권리를 두고서 자본과 경계 짓고 맞설 수 있을 때 이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자는 노동자세상을 꿈꿀 수 있다고 나는 브렉시트를 읽는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