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에서는 왜 안 나오나 했다. 김영삼 정부부터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까지, 정치 성향을 떠나 모든 정권은 공공기관 민영화 또는 구조개편을 추진했다. 경영혁신·구조개편·효율화 등 이름만 달리했을 뿐이다. 임기 2년도 채 남지 않은 박근혜 정부가 들고나온 것은 '기능조정'이다.

1997~98년 외환위기 이후 철도와 함께 공공기관 민영화의 찬바람을 가장 먼저 맞은 곳은 전력·가스 같은 에너지 분야다. 정부가 지난달 14일 발표한 에너지·환경·교육 분야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에서도 타깃은 에너지 분야였다.

전력 판매부문의 민간시장 개방, 가스 직수입 확대와 장기적인 도매부문 개방, 발전 5개사와 한국수력원자력 등 8개 기관의 주식 상장이 핵심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이 담당하는 발전용 댐 관리를 한국수자원공사에 위탁하기로 한 것도 뜨거운 감자다.

지난 1일 오후 에너지공기업 기능조정과 관련해 노조와 시민단체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서울 서교동 <매일노동뉴스> 회의실에 모여 '에너지공기업 기능조정, 민영화 정책인가 아닌가'를 주제로 긴급좌담회를 열었다. 이날 좌담회 사회는 이호동(51)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공동대표가 맡았다. 신동진(54) 전력노조 위원장· 김병기(53) 한국수력원자력노조 위원장·신현규(52) 발전노조 위원장(전력노조연대회의 의장)·이종훈(50) 전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장(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공동대표)·송주명(53)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한신대 교수)이 함께했다.

▲ 정기훈 기자

사회 :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공공부문 민영화를 들고나왔다. 그때마다 민영화를 추진하는 양상이 달라져 노조들이 대응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전력과 가스 등 에너지산업 관련 조직이나 단체 대표들이 전부 모여 이렇게 좌담회를 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어려운 시간 내 주셔서 고맙다.

민영화를 두고 민영화가 아니라고 우기는 우스운 국면이다. 어쩌면 (외환위기부터 시작된) 공공부문 구조개편 저지를 위한 2단계 투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자리가 될 것 같다. 먼저 지난달 14일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환경·교육 분야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간략하게 말씀해 달라.

송주명 상임의장 : 역대 정부와 비교해 보면 선뜻 이해가 안 되는 측면이 많다. 임기가 3년이 지나고 총선에서 졌는데도 노동·공공부문에서 벌이는 전쟁의 강도는 상당히 높다. 어떤 생각으로 이런 큰판의 전쟁을 벌이는지 모르겠다. 전체적인 그림이 무엇인지 따져 가면서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기능조정이라는 새로운 말을 쓰고 있는데, 2000년대 초반부터 정부 논조는 변하지 않았다. 틈바구니만 있으면 민영화 이슈로 되돌아가고 있다. 공공성을 지켜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노조 역할이 중요하고 시민사회와도 체계적으로 연계해야 한다. 공공성을 안정적으로 지켜 내는 시스템을 긴 호흡으로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신동진 위원장 :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공공성이 위협받고 있다. 공기업에서 임금피크제와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였다. 이제 와서 기능조정이라는 아주 모호한 단어로 민영화를 하겠다고 한다. 팔아먹겠다는 취지다.

대기업들은 항상 공공부문에서 먹거리를 찾기 위해 로비를 해 왔다. 정부가 공공성도 사수해야 하는데, 몇몇 사람이 밀어붙이면서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기들은 전문기관이나 국회 의견수렴을 거쳤다고 하는데, 그런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국민과 충분히 논의했다고 말하지만 그것도 거짓말이다. 국민 동의 없이 전력시장을 개방하는 게 쉽겠는가. 국민은 과거와 달리 정부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있다.

김병기 위원장 : 지금 정부가 국민을 위한 정부인지 의문이 든다. 공공부문은 국민생활과 직결되는데 (정부가 이를 민영화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본의 대변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 아닌가. 정부가 발표한 기능조정 방안은 민영화 수순을 밟겠다는 얘기로밖에 볼 수 없다. 과거 민영화를 추진했을 때도 옷만 갈아입히고 말만 바꿔 교묘하게 숨겼다. 우리는 예전부터 전력산업을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정부는 반대로 일본 모델을 따라가려 한다. 원칙도 없고 즉흥적이다. 국가 경제정책 실패를 민영화로 메우려 하고 있다. 답답하다. 반드시 막아 내야 한다.

이종훈 전 지부장 : 정부 기능조정 방안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은 아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추진한 공기업 경영혁신·구조개편 중 일부는 실행됐고 일부는 유실됐다. 2016년 보수정권이 위기에 빠지고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유실된 것을 다시 꺼내 들었다. 실행 여부는 다른 문제다. 중요한 것은 98년부터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미진했던 것을 다시 하려고 한다.

98년 이후 전력 민영화는 발전 분할만 성공했다. 그때 못한 발전·소매 민영화를 이제 다시 하려는 것이다. 가스는 분할에 실패하자 민간사업자에게 직수입을 허용했고, 이제는 도매부문에 사업자들을 들여보내 활동 근거를 마련해 주려 한다. 자본에 민영화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확인시켜 주고 있다. 앞으로 2025년까지 그 계획이 유효한 '대자본 확약서'로 해석해야 한다.

신현규 위원장 : 전력이나 가스 민영화는 오래된 주제다. 표면으로 나타난 게 2002년 발전·철도·가스 3사 파업이었다. 국민이 민영화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기폭제였다.

기능조정 방안은 한마디로 민영화다. 애초 전력산업은 도매(발전)와 소매를 민간에 개방하는 것이 민영화의 완성으로 간주됐다. 발전을 분할하면서 1단계를 완수했다. 지금은 다시 소매 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가스는 소매가 민영화됐고 아직은 공공 영역인 도매를 민영화하려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원칙이 없는 게 아니다. 원칙은 분명히 있다. 사유화하고 민영화한다는 원칙이다. 박근혜 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실행은 그 뒤에 하더라도 임기 동안 민영화 정책을 확인하겠다는 몸부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초기 대응이 발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

▲ 정기훈 기자

“국민도 다 아는 민영화, 정부만 기능조정”

사회 : 첫 번째 질문과 관련되지만 한 번 더 확인해야 할 것 같다. 정부는 굳이 민영화가 아니라고 강변했다. 이 부분에 대해 한번 짚어 줘야 한다.

신현규 : 기획재정부가 기능조정 방안과 관련해 기자들과 간담회를 할 때 ‘민영화냐 아니냐’는 질문이 많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는 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에는 방만한 공공기관을 민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영화를 하지 않으면 뭔가 큰일이 날 것처럼. 그런데 어느 순간 내용과 절차는 민영화가 분명한데 민영화가 아니라고 한다. 국민은 민영화 위험성을 알고 있다. 정부도 그 폭발력을 안다. 그래서 민영화라는 것을 극구 부인하며 용어를 가지고 국민을 호도하고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민영화가 아니라고 하면, 반대로 그것은 분명한 민영화다.

이종훈 : 전해 들은 얘기가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한 국회의원이 기재부 공무원을 불러서 물었다. "기능조정이 민영화냐"고 물으니 "절대 아니다"고 답했다고 한다. "98년 추진한 공공기관 경영혁신·구조개편 계획이 너무 좋아서 그걸 완성시키기 위해 만들었다"고 했단다. 그 다음에 그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을 불러 질문했더니 "민영화 사전단계"라고 답하기에 "왜 하냐"고 재차 물으니 "저희는 모른다. 기재부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더라. 기능조정이 전형적인 민영화라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다. 98년에는 정부가 대놓고 민영화라고 얘기했다. 기재부는 그때 완성하지 못한 것을 지금 추진하고 있다.

김병기 : 말장난이다. 민영화가 좋다면서 또 민영화는 아니라고 한다. 굳이 민영화가 아니라고 계속 강조하는 것도 이상하다. 민영화라는 게 뭔가. 공공성을 자본에 팔면 그게 민영화다. 국민은 민영화를 하면 요금이 올라가고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국민이 반대할까 봐 말만 바꿔서 기능조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신동진 : 민영화라는 게 다른 게 있나. 민간업체에 (사업을) 주면 민영화다. 정부는 한전 소매부문을 개방하는 것은 민영화가 아니라고 한다. 소매부문을 개방하면 민간업체는 돈 되는 것만 갖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은 한전이 떠안게 된다. 공기업은 부실해지고 재정위기가 온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민영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한편으로는 민간자본이 새로 들어오고, 한전 자체도 민영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송주명 : 민영화가 아니라는 말은 비겁하기도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싸운 성과도 반영돼 있다고 본다. 90년대에는 신자유주의와 민영화라는 말이 좋은 뜻으로 인식됐다. 결국 민영화는 나쁜 것이고 공공성과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점을 실천적으로 증명해 냈다. 국민에게도 각인시켰다. 여기 계신 분들이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정부는 민영화라는 말을 쓰기 싫은 것이다.

그럼에도 본질은 정부가 민영화를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이겼으면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였을 것이다. 노동개혁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총선에서 졌다. 그래서 나름대로 나타난 게 지금의 모습이다. 정부는 국회를 어떻게 우회할 것인지, 그 편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어떻게 하더라도 민영화다. 민영화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뭔가 다른 전략적인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다.

“공기업 쪼개 팔기, 우회적으로 바꿨을 뿐”

사회 : 지난 15년 동안 전면적인 민영화는 중단됐다. 하지만 단계적이고 우회적인 민영화는 여러 차례 시도됐다. 이전과 비교해 이번 민영화 양상은 어떤 차이점과 유사점이 있나. 각 조직의 현재 상황과 대응책을 말해 달라.

신동진 : 최근 산자부가 국회에서 업무보고를 했다. 그 자리에서 정부는 전력 판매부문을 개방하면 요금이 내려간다고 했다. 이런 주장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부가 요금제를 결정하는 키를 쥐고 있어서 민간에 개방해도 요금을 올릴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요금을 올리지 않으면 민간기업이 뭐 하러 들어오겠나.

미국·영국·호주 모두 전력판매를 개방한 뒤 처음에는 요금이 내리는 것 같아 보였지만, 결국 다 올랐다. 기능조정이라면 통합도 고려할 수 있는데 정부는 분리나 민영화만 생각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 79.1%가 한전의 공기업 유지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에 우리가 잘 연대해서 국민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 국회의원들도 대다수가 반대하고 있다. 물론 그들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

김병기 : 한국수력원자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장계획이 없었는데 느닷없이 기능조정안에 포함됐다. 특히 수력 전기를 만드는 댐 관리에 대한 조치는 이해할 수 없다. 기능조정을 하면서 물은 누가 관리하고 발전은 누가 관리하는지 명확히 하는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유독 발전용 댐만 한국수자원공사로 넘기려 한다. 어디서 관리해야 효율적인지 기준이 없는 것이다.

댐 관리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는 물을 민영화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관리하는 댐 용수를 사용하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물값을 받지 않지만 수자원공사는 다 받아 왔다. 수자원공사에 관리를 맡긴다는 것은 곧 물에 세금을 매겨 팔아먹겠다는 얘기다. 도대체 마시는 물을 민영화한다는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나.

이종훈 : 가스 도입과 도매에 대한 정부 목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같다. 가스공사를 SK·GS·포스코에 쪼개 나눠 주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는 가스공사 분할 매각을 추진하다가 노무현 정부에서 포기했다. 그래서 나온 게 가스공사는 그대로 두되, 고사시키면서 민간시장에 넘겨주는 방식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제출한 가스 도입·도매 경쟁 법안, 2013년 김한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그랬다. 둘 다 반대여론에 밀려 폐기됐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기능조정 방안도 내용이 같다. 직수입을 늘린 뒤 도매까지 민간에 넘겨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법안 개정에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국회로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조용히 시행령을 통해 처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 : 당초 전력산업 민영화 방식은 발전과 배전을 분할한 뒤 단계적으로 매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우회적·단계적 민영화인 기업공개(IPO) 방식이다. 신현규 위원장의 생각이 궁금하다.

신현규 : (분할매각 반대투쟁 때보다) 고민이 더 깊어졌다. IPO 방식은 시간이 걸릴 뿐 분명 민영화로 가는 길이다. 뻔히 끝이 보이는데도 대응이 쉽지 않다. 정부 계획에 "일부 상장하고 시장상황을 보면서 경영권까지 매각하겠다"는 표현이 있으면 현장은 긴장한다.

상장이라는 표현도 문제지만 ‘혼합소유제’도 고민이다. 명확한 상황은 있다. 전력의 생산·소매·정비 부문이 한 세트로 기능조정 방안에 포함됐다. 쉽게 말해 전력 판매부문이 기능조정되면 발전 영역도 무사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각개대응이 아닌 국민과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 정기훈 기자

“노조, 공공성 수호신 돼야 … 지지부진한 연대 반성”

사회 : 송주명 상임의장께 별도 질문을 드리고 싶다. 과거 경험을 토대로 어떤 대응이 가능한지, 연대 문제까지 포함해서 말씀 부탁드린다.

송주명 : 우리가 대표라고 뽑은 사람들, 우리의 행복을 위해 움직일 거라고 생각한 공무원들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부분을 분명히 봐야 한다. 기능조정이라고 불리는 현재의 민영화 논쟁은 크게 보면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는 것이냐와 관련된 큰 싸움이다. 독점자본의 사적이익으로 넘어가는 길이 있고, 국민 이익을 철저히 지키는 길이 있다. 얼마 전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관련 회의에 갔는데, 임금 문제 때문에 민영화 본질을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더라.

제대로 방향을 잡아서 민영화 문제를 시민사회에 부각시킬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정부에 청원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정부는 정권 말기임에도 밀어붙일 것이다. 총선 이후 새로운 국회 구조를 잘 활용해야 한다. 공공성 강화를 향해 나아가는 틀로 엮을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가능성을 시민사회에 제시해 줘야 한다. 노조가 노동자들의 생활안정을 위한 조직은 맞지만, 국민행복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노조가 공공성 수호의 화신으로 나서야 한다. 지금 타이밍을 놓쳐 정부가 일점돌파를 하면 회귀하기 힘들어진다. 절박하게 판단해야 한다. 연대와 공동전략을 통해 공공성 강화의 설계도면을 국민에게 보여 줘야 한다.

사회 : 긴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 어~" 하다가는 한순간에 당할 수 있다. 어떻게 연대해 나갈지 말해 달라.

신현규 : 국회나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조합원들과 소통하는 데 집중해야겠다. 그것만 하겠다는 게 아니라 내부 소통이 투쟁의 시발점과 진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력산업에서는 노조들이 15~16년간 활발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시절도 있었다. 정부가 활발하게 민영화를 추진하던 때였다. 반면 민영화 추진을 중단하면 무기력해졌다. 지금은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전력산업 노조 간 연대 틀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조가 공공성을 대표하는 화신이 돼야 한다"는 송주명 상임의장의 말씀은 여전한 과제다. 그 과제를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한다. 반성하면서 고민해야겠다.

이종훈 : 연대전략은 10년 넘게 고민해 온 숙제다. 노조 간 연대도 잘 안 됐고,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부문에서도 반성할 수밖에 없다. 2002년 파업을 포함해 수많은 연대가 있었다. 서로 처한 조건이 다르다 보니 수시로 깨지고 유야무야되는 일이 많았다.

노조끼리만 연대하다 보면 진전이 안 되고 지치게 된다. 그래서 큰 그림을 그려 보자고 시작한 것이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다. 1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노조들이 사안에 따라 결합하는 등 주체적으로 끌고 나가지 못했다. 가스공사지부도 네트워크 활동을 등한시하다가 일이 닥치면 찾아가 도와 달라고 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예전에는 민영화에 찬성하는 시민단체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접점이 만들어지고 있다. 네트워크가 아니더라도 외양을 넓혀 소비자단체와 연대하면 좋을 것이다. 반성은 나중에 하더라도 연대는 모색해야 한다.

김병기 : 전력노조가 2000년 발전소 분할 반대파업을 철회하면서 자회사 노조 사이에서 전력노조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그럼에도 결국 전력노조와 함께했고 전력노조연대회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단위사업장별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연대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기능조정 방안과 관련해 수자원공사노조와도 다툼이 있었다. 발전용 댐 관리를 누가 하느냐의 문제였다. 회사는 각각 공격하고, 우리끼리는 싸우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너무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면 연대는 깨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마음을 맞춰서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 국민행복을 위해 과감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눈에 보이는 것에만 매몰되면 연대는 힘들어진다. 서로를 포용하면서 접근해야 한다.

신동진 : 문제인식은 모두 함께하고 있다. 오늘을 계기로 에너지공기업 노조가 앞장서서 국민 전체 문제를 함께 풀어 나가야 한다. 우리만으로는 힘들고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전력노조는 이번만큼은 확실하게 제대로 된 연대를 할 것이다. 정부와 맞짱을 떠야 하지 않겠나. 전력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조건 적극적으로 하겠다.

“국민 여론, 분위기 좋다”

사회 : 마지막 질문이다. 연대도 중요하지만 국민적 수용성이 승패를 가른다. 정리발언까지 포함해 여론을 어떻게 모아 낼지 말씀해 달라.

신동진 : 공공성은 곧 국민의 행복추구권이다. ‘노조 저 친구들이 국민행복을 위해 역할을 하는구나’라는 여론을 조성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정부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 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전력 판매부문 개방으로 전기요금이 인상되는지, 안 되는지 팩트만 보여 주면 된다. 우리나라는 작지만 힘이 있다. 그나마 공공기관이 공공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성만큼은 절대로 민간업체에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김병기 : 정말 고민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원전 마피아'로 비판받으면서 고립되고 있다. 원전을 바로 폐기해도 전력사정에 문제가 없는 상황이 아닌 이상 현재로서는 가장 안정된 발전방식은 원전이다. 그런데도 원전을 민영화하려는 정부가 국민을 위한 정부라고 볼 수 있나.

자본이 서서히 공공부문을 잠식해 오고 있다. 빈부격차를 공공성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공공성으로 성장과 분배를 모두 잡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동운동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언론도 큰 역할을 해야 한다. 노조가 아무리 떠들어도 관심이 없다. 자본에 묶여서 그렇다.

이종훈 : 국민적 수용성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90년대에는 시민단체에 민영화 문제점을 말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나. 조합원조차 설득이 안 되는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어려운 얘기를 하지 않아도 국민이 알고 있다.

시민단체나 소비자단체들이 우리 싸움을 철밥통 지키기로 볼 수 있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논리적 정연성도 있어야 하지만 진정성이 중요하다. 일관된 흐름이 있어야 한다. 2013년 가스 직수입 활성화 논란이 일었을 때 국회가 노조에 어떤 제안을 했다. 노조는 "가스공사에는 도움이 되지만, 국민 전체적으로는 도움이 안 된다"며 거절했다. 협박을 받기도 했다. 그런 뒤 시민단체나 정치권이 우리를 믿어 주기 시작했다. 앞으로 산자부가 구체적인 기능조정 방안을 마련할 것이다. 산자부로부터 나쁘지 않은 제안을 받을 수도 있다. 우리가 끝까지 가야 한다. 그래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신현규 : 국민 수용성과 관련한 여건은 좋다고 생각한다. 십수 년에 걸쳐 국민 수용성을 높히기 위해 노조들이 피눈물 나는 희생을 했기 때문이다. 국민을 모두를 설득하진 못했지만 여론 주도층의 반응은 최근 좋아졌다. 기능조정 방안에 대한 각 단체의 성명도 그렇고, 최근 종편방송에서 전원책씨와 유시민씨가 얘기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력과 가스를 필수공공재라고 표현하고, 기능조정을 명확하게 민영화라고 얘기하더라. 다음 아고라에서는 기능조정이 민영화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청원서명이 진행 중이다. 여러 가지로 봤을 때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노조가 여기에 무엇을 더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민영화 반대투쟁이 밥그릇 지키기라는 것을 굳이 부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조그만 밥그릇이 깨지면 국민에게 미치는 해악이 크다는 점을 설득하면서 정면돌파를 하면 된다.

사회 : 20대 국회가 개원한 뒤 국회 앞에서 민영화 정책 철회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다. 거기에 2002년 민영화된 KT 동지들도 온다. 전력 민영화 정책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더라. 그들은 "우리처럼 당하지 말라"고 말한다. 절절하게 와 닿았다. (90년대 말부터 시작된) 1라운드 투쟁에서 이루지 못한 승리를 2라운드에서 꼭 이뤘으면 좋겠다. 오늘 좌담회가 소중한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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