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문제를 잘 아는 전문가가 처리방법을 알려 주고 정당한 비용을 받는 것은 자본주의 원칙상 당연하다. 법률 시장에서 사건을 위임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위임하지 않아도 되거나, 위임하는 게 손해인 사건을 위임한다면 어떨까. 산업재해 신청 사건이 그렇다. 위임할 필요가 없는 사건을 공인노무사에게 위임하고, 단순 대행업무를 하면서도 과잉 수수료를 받는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원인은 노동자들이 산재 문제를 모르기 때문인데, 이런 부적절한 위임 피해는 고스란히 재해 노동자와 가족에게 돌아가고 있다.

다음의 사례가 그렇다. 최근 추락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가족이 회사와 산업재해 위로금을 받기로 합의했다. 고용노동부가 안전조치 의무 위반 사망 사건으로 회사를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이었는데 노무사는 유가족을 대리해 위임장을 제출했다. 이 케이스는 이미 노동부에서 산재로 기소한 사건이어서 별도의 수임료를 지불하고 대리인을 선임할 필요가 없었다.

화학물질 급성중독으로 실명된 노동자 사건도 그렇다. 치료를 한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산재신청을 어떻게 하는지 잘 알지 못해 가족이 노무사에게 사건을 위임했는데, 사건을 수임한 노무사는 산재신청 대행 수수료를 넘어선 비용을 받았다. 이미 급성중독으로 노동부에서 결론을 낸 사건인데도 말이다. 재해 노동자와 노조가 사안을 잘 알고 있어서 노무사의 특별한 조력이 필요 없는 근골격계질환 사건에서 장해급여에 따른 성공보수금을 받는다거나 단순 동통장해(질병이 없는데도 통증이 나타나는 심리적 요인으로 인한 장해)와 기능장애처럼 노무사·변호사의 대리행위가 필요치 않은 사건에도 불필요한 위임이 이뤄진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41조는 요양급여를 받으려는 자는 서류를 첨부해서 공단에 신청을 하도록 돼 있다. 시행규칙 제20조2항에 의거해서 산재보험의료기관은 요양급여 신청을 대행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수급권이 있는 자와 변호사·공인노무사만이 요양급여 신청 대리인이다. 다만 요양업무처리 규정상 신청인의 배우자, 직계존속·비속 또는 형제자매도 대리인으로 선임될 수 있다.

현실에는 많은 노동조합이 재해를 당한 조합원을 실질적으로 대행한다. 재해조사·서류작성·확인서 작성·의사면담 같은 조력행위를 한다. 다만 대행권 또는 대리권이 없는 한계로 인해 근로복지공단과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단에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회사의 잦은 공상 처리로 인한 폐해를 알고 있는데도, 개별 조합원이 산재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 속수무책으로 방관할 수밖에 없다.

산재은폐 문제에 대해 사법적·행정적 개입은 명확히 한계가 있다. 이미 산업현장에서 만연한 산재은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첫 출발점은 노동조합에 산재신청 대리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즉 회사의 공상 처리를 방어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대리해서 산재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산재은폐 신고와 더불어 적극적으로 산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야 재해 노동자가 치료받고 복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산재신청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이는 과다한 비용문제를 해결하고 혼탁한 산재 시장을 정화한다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최근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고의적 산재은폐에 대해서는 형사처벌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행 과태료 처분도 집행되는 수준이 미약하다는 함정이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산재발생 신고제도를 축소하고, 사업주의 책임범위를 축소하고 있다.

노동행정의 초점은 산재율 축소에 맞춰져 있다. 이로 인해 현장에서 만연한 산재은폐에 노동부가 방조자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소한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노동조합이 자주적으로 산재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상 처리와 산재은폐를 줄이지 않고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의 산재사망률이라는 불명예를 벗을 수 없다. 문제를 정확히 드러내고 산재신청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 그것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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