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15개 산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추진하고 있는 노동이사제(근로자이사제)가 빠르면 10월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지난 16일 ‘서울특별시 근로자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예고한 서울시는 8월 말에 조례안을 서울시의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노동이사가 되는 노동자의 노조탈퇴를 의무화해서는 안 된다거나 노동이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반면에 정부와 재계는 노동이사제 시행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의지가 강해 어떤 형태로든 노동이사제 시행은 불가피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도입되는 노동이사제. 어떤 방향으로 시행돼야 할까.



껍데기 노동이사제는 수용 어려워
 

▲ 최병윤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

노동이사제는 노동자와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조가 경영의 주체로 참여해 회사 경영을 함께 책임지자는 의미를 가진다. 특히 공공부문의 경우 안전업무와 대국민 서비스를 직접 담당·생산하는 노동자들이 현장의 경험을 경영에 반영시킬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진다는 면도 있다. 노동자의 이해만 경영에 반영시킬 게 아니라 나아가 소비자도 경영에 참가할 수 있는 소비자이사 도입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가 말하는 근로자이사회로는 이 같은 취지를 살리기 힘들어 보인다.

명칭부터 왜 노동이사제가 아니라 근로자이사제라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사 1~2명을 말하는데 이 정도 이사로는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기 어렵다. 적어도 전체 이사 3분의 1가량을 차지해야 한다. 노조가 있는 곳에는 노조에 이사 추천권을 주는 방향으로 제도가 설계돼야 한다. 노조가 노동이사 추천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면 현장에 이중권력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노조가 무력화되거나 노동이사가 힘을 잃게 되는 경우가 우려된다는 의미다.

노동이사에 비상임이사 수준의 권한을 부여하려는 것도 재검토해야 한다. 이사회 회의에 한 번씩 참여하는 것으로는 노동이사에게 부여된 기대를 충족시키는 활동이 어렵다. 노동이사라는 껍데기만 남길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경영에 실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서울시가 지금과 같은 낮은 수준의 권한과 역할만을 가진 노동이사제를 계속 말한다면 노조로서는 이를 수용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각히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근로자이사의 실질적 경영참가 보장 필요
 

▲ 권오훈 5678서울도시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

근로자이사제 도입의 필요성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근로자이사제 도입은 노사관계 안정을 위해서도,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도 꼭 도입해야 하는 제도다. 최근 장하준 교수가 논쟁을 시작했듯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가하는 방식으로 경영이 이뤄져야 한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시작해 현재 꽤 성공적으로 정착됐다.

문제는 외국의 좋은 제도가 한국에 와서 엉뚱하게 시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근로자이사제가 잠시 시행되다 사라졌다. 미국의 근로자이사제는 형식적으로 이사회 회의만 참여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근로자의 상시적 경영 참가를 보장해야 한다.

서울시에서는 근로자가 경영에 직접 참가하는 유럽식 근로자이사제를 추진했는데 법적 한계 때문에 비상임 이사를 임명하는 방식의 운영 조례안이 입법예고됐다. 조례는 이렇게 통과된다 하더라도 당초 취지를 살려야 한다. 시행규칙과 정관 개정을 통해 근로자이사의 실질적 경영 참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보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최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포함해 국회의원들이 노동자의 경영참가를 가로막는 법안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법 개정을 통해 근로자이사제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노사관계 안정과 경제민주화를 위한 국회의 과제다.



일반 무보직 노동자가 근로자이사 맡아야
 

▲ 권미경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

근로자이사제는 노동자가 일반 노동자를 대표해서 들어간다는 의미다. 노조를 대표해서 가든, 일반 노동자를 추대해서 가든 그들이 이사가 됐다고 법적으로 사용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근로자이사가 됐다고 노조를 탈퇴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것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저촉이 된다면 법 개정까지 검토해야 한다. 근로자이사는 3년간 사용자가 됐다가 임기가 끝나면 노조로 돌아오는 신분이란 게 맞는 것인가. 서울시가 의지가 있다면 방법을 못 찾을 이유가 없다. 잘 정리됐으면 한다.

또한 근로자이사는 관리직이 아닌 일반 무보직자가 돼야 한다. 300인 이상의 사업장의 경우 근로자이사는 2명에 불과하다. 10명 이상의 이사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1~2명인 근로자이사마저 관리직에서 맡는다면 안 된다. 관리직은 사실상 사용자를 대변해서 일반적으로 활동하고 있지 않나. 순수한 일반 무보직 노동자가 들어가야 한다.

수도 서울에서 첫 시행하는 근로자이사제다. 전 국민이 알 수 있도록 홍보방안을 마련했으면 한다. 지금까지는 기업경영은 경영자 몫이며 노동자가 참여해서는 안된다는 논리에 익숙해 있다. 따라서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근로자이사제를 다른 사업장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적극 홍보해야 한다.



노사 상생과 협력의 기회로 만들자
 

▲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서울시의 조례안을 보면 노동이사로 응모하기 위해선 노조에서 탈퇴해야 하는데 다소 논란이 있는 상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상 기관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자는 사용자로 간주된다. 이사이면서 근로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하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노조의 대표와 근로자의 대표는 의미상 차이가 있다.

노조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고 노동이사가 되는 것은 법리상 충돌 가능성이 생긴다. 조합원 자격 유지를 위해선 관계법 개정을 해야 한다.

당장의 과제라기보다는 제도가 현실적으로 안착되면 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보인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는 감독이사회와 경영이사회 이원으로 운영된다. 서울시 노동이사가 비상임 2명으로 운영되더라도 감독이사회가 갖는 권한보다는 클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도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서울시의 조례안은 현실적으로 속도가 빠른 편이다. 그동안 근로자들도 알게 모르게 경영에 참여해 왔다. 특히 공공무문의 경우 비공식적이고 음성적으로 근로자 경염참여가 이뤄져 왔다.

서울시가 도입 예정인 노동이사제는 이를 처음으로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경영참여에는 책임이 따른다. 경영상 중대한 의사결정을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로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과 함께 책임도 지도록 하면 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진정한 노사 상생과 협력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노사 협력의 좋은 기회다. 서울시 노동이사제가 그렇게 활용되길 기대한다.



노조 이익에 편중, 경영효율성 저해 우려
 

▲ 김영완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서울시가 모델로 내세운 독일의 근로자이사제는 주식회사가 중심인 우리나라의 경제체제와 맞지 않는 제도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대립적 노사관계에서 근로자이사제는 근로자나 노조의 이익 대변에 그 역할이 편중돼 경영 효율성을 저해할 것이다. 독일에서도 의사결정 지체나 외국기업 투자기피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자본시장의 발전을 막고 기업의 구조개혁을 저지하는 한물 간 제도라는 것이다.

이사회 구성, 이사의 지위는 기업지배구조의 핵심으로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단순히 서울시 조례로 규정한다는 것도 문제다. 서울시가 모델로 한 유럽의 제도들 또한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다. 또한 매년 적자를 거듭하고 있는 공기업에 도입할 경우 공공기관 개혁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의 부채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4조3천억원에 이르는데도 자구노력 보다는 근로자이사의 권한 확대를 요구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최근 서울메트로 정비협력업체 근로자가 안전사고를 당했다. 서울메트로의 민간위탁은 노사협의를 통해 추진됐다. 논란이 된 ‘메피아’ 문제의 원인이 정규직 조합원들의 막강한 권한과 이익 추구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근로자이사제를 통해 노조에게 경영까지 맡기려 하는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효율성 강화, 근로자의 권익 보호는 그야말로 명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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