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대표

정부는 지난 14일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을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확정하고 대통령이 주재한 공공기관장 워크숍을 통해 국민에게 선보였다. 에너지 공기업 증시 상장과 전력판매 및 가스도입 시장 민간개방, 해외자원개발 공공기관 인력·조직 축소를 담은 기능조정 방안이다. 기획재정부는 "정부가 다수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력 소매시장 개방과 가스 도입·도매시장 개방 등은 ‘단계적·우회적 민영화 정책’이다. 에너지산업 구조개편은 20여년 동안 민영화 추진 여부에 대해 논란을 벌여 온 문제인데, 민영화 정책을 발표하며 민영화가 아니라고 강변하니 당혹스럽고 한편으로 어이가 없다.

20여년 전 한국 사회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기를 혹독하게 겪으며 민영화 망령이 떠돌던 시절이 있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먼저 잡으려 국내외 대자본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시절이었다. 결국 기간산업 민영화 중단이라는 세계적 추세와 노동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의 저항, 국민적 반대여론으로 인해 어렵게 국민적 합의를 도출한 바 있다. 바로 민영화 추진 중단이었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아이들 돌반지까지 내놓던 시절에 기간산업을 민영화해서라도 국가적 난관을 돌파하자던 여론이 일시적으로 비등했지만 결국 비판적 결론을 한국 사회가 도출한 것이었다.

민영화 추진이라는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 2002년 발전파업과 2003년 남동발전 경영권 매각 중단을 거치며 네트워크산업 민영화는 안 된다는 국민적 총의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포기를 모르는 민영화 추진론자들과 해외자본, 재벌들의 민영화 먹잇감 찾기는 물밑에서 끝없이 지속됐다. 경영권 매각방식의 전면적·일시적 민영화가 어렵자 우회적·단계적 민영화인 IPO(initial public offering, 기업공개)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조차도 여의치 않자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서 아침이슬을 부른 후 "물·전기·가스·건강보험은 민영화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입장을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발표했다. 비즈니스 프렌드리 전도사가 경전의 최고조항의 주석을 엄숙하게 발표하듯이 던진 메시지였다. 민영화는 중단됐다.

정권을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는 이번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을 발표하며 공공부문 각 영역의 민간이양에 대해 ‘혼합소유제’운운하며 민영화가 아님을 극구 부인하는 설명을 덧붙였다.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했던 같은 당 직전 대통령의 대국민 선언을 정면으로 뒤집은 사건이다. 경전의 최고조항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며 이단적 해석을 덧붙인 것이다. 분명히 민영화(사유화)다. 심지어 IPO 방식은 전력과 가스 등의 본격적인 산업구조개편 추진기인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검토하던 전통적인 민영화 추진방식 중 하나다. 한데 박근혜 정부에서는 민영화가 아니라고 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

에너지 공기업의 민영화는 민간 에너지기업들에게 독과점적 초과이윤을 선사할 것이다. 전력 판매시장 개방으로 요금인상은 필연적이며, 가스 도입을 민간에 추가로 허용한다면 가스 수급 불안정과 비효율이 증대될 것이다. 설계·유지보수·안전업무를 약육강식 경쟁체제로 내몰면 어떻게 될지 그 후과를 상상이나 해 봤는가. 에너지산업의 공익적 기능보다는 수익성과 효율성이 강조되면서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은 기대난망이 될 것이 불을 보듯 확연하다. 지난해 한전은 본사 부지매각 등으로 높은 수익을 실현했지만 30%의 외국인 주주에게 고배당 수익을 헌납했다. 자본의 세계화 시대라고 하지만 비상식적인 국부유출의 대표적 사례가 아니고 무엇인가.

박근혜 정부는 에너지 공기업 민영화 망령을 속히 걷어 내기 바란다. 에너지산업의 세계적 추세와 미래지향적 과제는 에너지 수급의 안정성과 지속가능한 에너지체제 전환이다. 아울러 에너지 공기업 본연의 공공성 확보 책무를 방기하지 말고 선도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1차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국가 기간산업인 에너지산업은 민영화가 아니라 공적 소유와 운영이 유일무이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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