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관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정부가 지난 2012년 3월 발표한 ‘용역노동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은 공공기관이 청소·경비·시설물관리 등 노무용역계약을 체결할 때 입찰공고 단계부터 근무인원을 명시해 고용규모가 감소되지 않도록 하고, 계약서에 고용승계 사항을 명시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보호지침은 원청인 공공기관이 용역계약 내용을 통해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고용유지 및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서 미흡하나마 공공기관의 공익적 지위에 부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북대병원은 700대가 넘는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관리를 용역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국립대병원인 경북대병원도 공공기관으로서 보호지침 적용대상에 해당한다. 당연히 주차관리 용역계약을 체결할 때 고용승계에 관한 사항을 명시하고 고용규모가 줄어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경북대병원은 지난해 9월 새로운 주차관리 용역계약을 위한 입찰공고를 하면서 기존 근무인원보다 4명을 축소한 상태로 공고를 냈다. 보호지침을 정면으로 위반하면서 입찰공고 단계부터 인원을 축소한 것이다. 당시 경북대병원이 제시한 인력축소 이유 중 하나가 ‘최저임금’ 대신 ‘시중 노임단가’를 적용하는 바람에 인건비가 과다 지출돼 주차시설 운영의 수익성이 악화됐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북대병원의 주차관리 현장 노동자들에게 시중 노임단가를 적용해 임금이 지급된 것도 정부가 마련한 위 보호지침에 따른 것이었다. 그리고 우연이었을까. 경북대병원이 인원을 축소한 보직 담당자는 노조 총무부장과 사무장이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대구지부는 경북대병원과 새로운 용역업체에 보호지침 준수와 기존 근무자 전원 고용승계를 요구했다. 하지만 새로운 용역업체는 기존 근무자들을 대상으로 선별적인 채용절차를 시작했다. 이력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고용하지 않겠다는 안내문만 게시한 뒤 이력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6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집단해고로부터 어느새 열 달. 해고자들을 복직시키라는 외침에 경북대병원은 각종 가처분과 소송으로 응답하고 있다. “병원 울타리 안에서는 침묵시위도 해서는 안 된다. 대구시내에 병원장에게 집단해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어서도 안 된다. 집회 참가자들이 경북대병원의 울타리에 부착한 스티커를 제거하는 데 들어간 청소비를 노조가 부담하라.” 경북대병원의 요구다.

경북대병원은 올해 초 해고노동자를 비롯한 노조원들이 병원장 출근길에 마스크를 착용한 채 침묵시위 방식으로 피케팅을 했다는 이유로 노조 조합비와 조합원들의 실업급여가 입금돼 있는 계좌에서 이행강제금을 압류·추심했다. 급기야 이달 중순 또다시 노조를 상대로 1억원이 넘는 액수를, 조합원들을 상대로 수천만원의 이행강제금을 강제로 집행하겠다며 법원에 집행문을 신청했다. 경북대병원의 안중에는 더 이상 헌법상 보장된 노동조합 활동의 권리와 집회의 자유 등 표현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경북대병원은 법원에 노조 집회 등을 금지하는 내용의 가처분을 신청하면서 종합병원으로서 응급환자와 중증환자를 집중적으로 치료하는 의료기관에서 노조 활동 때문에 환자들의 안정과 평온이 저해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종플루에 걸린 간호사의 병가 신청을 간호사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반려한 병원의 부조리에 맞서 국립대병원의 지위에 걸맞은 공공성 회복을 요구한 당사자는 바로 노조였다. 과연 누가 환자를 더 위하고 있는 것일까.

사법부의 상징으로 알려진 ‘디케(Dike)'는 양쪽 눈을 가린 채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든 모습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가리지 않고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다. 노조와 조합원들은 한 달이 멀다하고 경북대병원의 각종 소장과 신청서를 송달받고 있다. 정의의 여신상이 소장 너머 진실을 직시하기를, 법전 속에 뚜렷하게 새겨진 노동 3권을 외면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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