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자은 기자

“성과연봉제 저지투쟁을 일부 산별연맹에서는 공공부문과 금융부문만의 싸움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양대 노총이 전면적으로 나서 전체 노동자의 싸움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천막농성장에서 만난 이인상(56·사진) 공공연맹 위원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는 "해고연봉제·강제퇴출제 폐지"를 요구하며 지난달 11일부터 한뎃잠을 자고 있다. 27일로 48일째를 맞았다.

거의 매일 천막농성장으로 출근하고 있다는 이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는 타임오프로 노조 힘 빼기를 시작했고 박근혜 정부는 2대 지침(공정인사 지침·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으로 노조 무력화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강행하는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은 2대 지침을 공공부문에 고착화하고 민간부문까지 확대하는 신호탄"이라며 “이번에도 진다면 노동계는 무참히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4일 오후 이 위원장을 만났다.

“져서도 안 되고 질 수도 없는 싸움”

금융·공공부문 5개 노조·연맹은 지난달 3일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대위를 복원했다. 지난해 9월 해산된 뒤 8개월 만이다. 정부가 성과연봉제 도입 드라이브를 걸자 활동을 재개하기로 한 것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공공부문 5개 노조·연맹이 강도 높게 투쟁하기 위해 공대위를 공투본으로 전환했지만 9·15 노사정 합의 이후 해산되는 아픔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올해는 1군 공기업정책연대가 먼저 나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앞 노숙농성에 들어갔고 투쟁 전선을 넓히기 위해 공대위도 국회 앞 천막투쟁을 결의했다”고 설명했다.

공대위는 천막농성을 하면서 지난 18일 공공·금융노동자 결의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조합원 10만여명이 참석했다. 공대위는 다음달 1일 천막농성을 마무리하고 9월 총파업을 준비한다. 이 위원장은 “천막농성은 중단하지만 순회집회와 7월 파업조직 연대투쟁 등 공대위 공동사업은 계속할 것”이라며 “9월 총파업 조직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성과연봉제, 일부만의 문제 아니다”

노동자들은 왜 성과연봉제를 반대하는 걸까. 이 위원장의 설명은 이렇다.

“성과연봉제는 독립 영업직이나 일부 생산직 중에는 적합한 직종이 있겠지만 공공서비스 영역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공공서비스 영역에서는 협력이 중요한데 모든 관계가 다 깨지거든요. 외국에서도 공공기관 성과연봉제가 성공한 사례는 없습니다. 정부가 노리는 건 결국 노조를 무력화하겠다는 거예요. 돈으로 노동자를 일렬로 줄 세우는데 노조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한국경총이 청와대에 요구하고, 청와대가 수용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지금은 공공부문과 금융부문에 먼저 불이 붙었는데, 이 불을 끄지 못하면 다른 곳에 옮겨붙는 것은 시간문제예요.”

실제 정부는 성과연봉제를 민간에 확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최근 금융공공기관장을 만난 자리에서 “금융공공기관들이 진통 끝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만큼 이를 모델로 전체 성과중심 문화를 민간 금융권으로 확산하겠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번 투쟁은 공공·금융만 해서는 안 된다”며 “금융부문과 공공부문이 무너지면 제조와 서비스, 그리고 전체 노동자에게 칼끝이 겨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매일 천막농성장에서 버티며 '공공기관 철밥통'이라는 정부 프레임을 다른 산별 대표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만큼 외로웠다”며 “연대가 생각만큼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고 토로했다.

이 위원장은 특히 “정부의 2대 지침 관련 싸움으로 우리가 1차 전선을 구축했는데 우리가 깨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만 나서서 싸우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한국노총 단위노조 대표자와 상근간부 결의대회가 30일 천막농성장에서 열리는데 이때 내셔널센터가 의지를 좀 더 표명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정부가 멀쩡한 노사관계 파탄 내서야”

여의도 국회 앞에는 공대위 천막에 이어 천막 세 동이 잇따라 들어섰다.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들과 조선업종노조연대, 그리고 보육교사들의 천막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분열과 갈등만 늘고 있다"며 "권력과 힘으로 굴복시키려고만 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또 "갈등을 조율해야 할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예스맨으로 전락해 성과연봉제 도입에만 함몰돼 있다"며 "자리보전을 위해 코드 맞추기에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이기권 장관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비판이 이어졌다. 그는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노동부가 노사관계에 불법으로 개입하는 것”이라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노사관계 파탄의 배후에 노동부가 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장애인고용공단 노사는 성과연봉제 도입 문제를 두고 갈등을 겪고 있다. 공단은 단체협약 기간 만료를 앞두고 "성과연봉제를 넣지 않으면 단협을 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협상은 결렬됐다. 이달 22일 중앙노동위원회 쟁의조정까지 결렬되면서 노사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노조는 27~28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한다. 그는 “정부 한마디에 노조 동의 없이 이사회에서 성과연봉제가 일방적으로 의결됐다”며 “노사관계가 좋았던 공공기관까지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데, 멀쩡한 노사관계를 파탄 내는 원흉은 노동부”라고 비난했다.

“이기권 장관, 당장 해임해야”

이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단협 체결을 빌미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압박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최근 연맹이 산하 8개 조직의 교섭권을 위임받았는데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교섭을 해태하고 있고 단협 만료를 앞둔 조직들은 긴장하고 있다"며 "성과연봉제 도입 협박으로 여러 조직에서 무단협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는 "교섭을 해태하는 조직은 고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성과연봉제 관련 진상조사 결과와 관련해 이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 감사 청구와 이기권 장관 해임안을 내겠다고 약속했는데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라며 “이벤트성으로 한 것은 아닌지 약속이행 여부를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대 노총 차원의 '성과연봉제 저지투쟁'을 요구했다.

“양대 노총이 전면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금융·공공부문이 먼저 죽고,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전체 노동자가 다 죽을 겁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96년 양대 노총 총파업 수준으로 노동자의 명운을 걸고 투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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