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벌써 2주가 지났다. 2주 전에 성과연봉제 도입을 완료했다고 정부는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0일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이사회 의결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함으로써 도입 대상 전 공공기관이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마감했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가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에 배포한 것이고 그대로 받아 쓴 기사인 것이 틀림이 없다. 하라는 대로 하고 쓰라는 대로 쓰는 것이 성과연봉제였다. 상반기에 도입하기로 정한 120개 공공기관 모두에서 도입을 완료했다는 성과연봉제는 정부가 지난 1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발표해서, 현재 1·2급 간부직에 적용하고 있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4급 비간부직으로 확대하기로 하면서 공공기관별로 추진돼 왔다. 정부는 ‘권고안’이라며 발표했지만, 공공기관은 100% 달성으로 답했다. 권고를 단순히 권고로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반드시 따라야 할 권력의 지시라고 이 나라 공공기관은 성과연봉제 도입 완료로 대답했다.

2. 성과연봉제는 노동자의 임금제도다. 성과연봉제 도입은 연공급제 등 노동자의 종전 임금제도를 변경하는 것이다. 임금·근로조건의 주요한 내용이다. 근로계약은,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계약이다. 임금 없이 노동 없다. 노동자를 사용자에 복종해서 일하는, ‘근로’를 제공하기로 하는 계약은 임금에 관한 합의 없이는 성립할 수가 없다. 근로계약의 체결도, 근로계약의 변경도 노사합의 없이 할 수가 없다. 계약의 자유는 계약을 체결하는 당사자의 합의 없이 존재할 수가 없다. 계약을 변경하는 당사자의 합의 없이 변경된 계약은 유효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 나라 공공기관에서 도입 완료했다는 성과연봉제는 노동자(대표)와의 합의도 없이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제도를 변경해서 도입해 버린 것이 대부분이었다. 지난해 몰아쳤던 임금피크제와는 달랐다. 합의를 위해서 노조에 대한 사용자의 압박도 거의 없었다. 몇몇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노조위원장이 합의했다고 시끄럽지도 않았다. 노조와의 합의가 아니라 공공기관 내부 절차가 문제됐다. 이사회 의결 등 사규 변경을 위한 사용자 내부 절차문제가 주된 관심사였다. 일부 사업장에서 근로자들을 상대로 서명받았던 동의서도 그건 이사회 논의를 위한 참고자료에 지나지 않았다. 이사회 의결 등 사용자 내부절차만으로 도입 선언을 하고 기재부 등 주무부처에 보고해 버렸으니 노조에 동의를 사정하고, 노동자들에게 서명을 종용하는 등으로 노동을 압박한 사업장은 얼마 되지 않았다. 노사합의 없이 변경할 수 없는 근로계약인데, 이번에 성과연봉제 도입을 두고서는 아니었다.

3. 성과연봉제 도입은 불이익변경이 아니라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라도 노동자측이 동의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노동자측 동의 없이도 성과연봉제 도입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된다고 단정하고서 공공기관의 사용자는 일방적으로 해 버렸다. 고용노동부·기재부 등이 매뉴얼과 지침을 통해 그렇게 안내해 놓았으니 공공기관의 사용자들은 그것을 믿고 그렇게 해 버렸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해 버렸다. 사실 믿고 말고도 없었다. 정부의 관리·감독을 따라야 하는 공공기관 사용자로서 하라는 대로 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라는 대로 해야 그로 인해 기관장 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할 일은 없다고 하라는 대로 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성과연봉제 도입과 관련해 추후 법적 책임을 지더라도 기관이 질 일이지 기관의 장이자 자연인인 자신이 질 일은 아닐 테니 말이다. 이런 사용자측 상황과 판단 속에서 성과연봉제는 이사회 의결, 사규 변경으로 도입됐다고 보고했던 것이고, 정부는 그걸 집계해서 완료했다고 밝혔던 것이다. 그러니 노조의 반대도 싱겁게 돼 버렸다.

4. 노조는 투쟁을 외쳤지만 투쟁 없이 끝나 버렸다. 정부의 도입 완료 발표는 투쟁의 종결 선언처럼 들렸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들이 ‘공동투쟁’을 외쳤지만 투쟁할 대상은 일방적으로 승리 선언을 하고서 경기장을 떠나 버렸다. 동의 없이 한 것이니 효력 없다는 법적 주장만 남았다. 효력정지 가처분이니 무효확인 소송이니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것으로 노조는 공동대응을 하겠다고 조합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뿐인가. 노조의 대응이 정작 그것만 남은 것인가. 법적 대응을 고민한다면, 이번에 도입한 성과연봉제는 취업규칙의 불이익한 변경이라고,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려면 근로기준법상 과반수노조나 근로자과반수라는 노동자측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이렇게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사용자의 일방적인 도입에 반대 항의했던 것이니 동의권을 남용한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위법하게 취업규칙 변경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정부의 권고안을 이행해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도입했던 이번 성과연봉제는 도무지 사회통념상으로 보더라도 합리성이 인정될 수 없다고 법과 판례를 살펴보고 고소·고발로 형사적으로, 가처분과 본안소송 등으로 민사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법률사무소에 자문을 구하거나 의뢰하는 게 할 일이다. 좀 더 한다면 노조 편을 들어줄 법률가가 발표·토론하는 토론회를 여는 것이다. 사실 사업장에서 사용자가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하던 때 많은 노조가 했던 일이다. 고소·고발과 가처분 소송으로 사용자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는 걸 막을 법적 방법을 찾았다. 상급단체에 문의하고 법률사무소에 의견을 구했었다. 그래서 법적 대응은 이제 어떤 방법이 있다는 걸 노조들은 잘 알고 있다. 이미 법적 대응은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시기를 찾는 문제로 됐다. 법적 대응 방법을 찾겠다고 노조가 고민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노조의 대응이 소송 등 법적 대응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작 노조가 해야 할 일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 성과연봉제에 관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노조가 말하고 있는 것은 변호사를 선임해야 할 일을 노조가 할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무슨 공동으로 변호사집단을 구성해서 한다는 것이 노조가 본래 할 일도 아니다. 노동사건에 경험 있고 능력 있는 변호사를 알아보고 선임하면 될 일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그리고 대한민국헌법이 규정한 노동조합을 읽어 보자. 조합원의 임금 등 근로조건에 관해서 개별 노동자가 할 수 없는 수준의 요구를 해서 사용자와 교섭과 투쟁으로 협약으로 관철하기 위한 노동자단체라고 노조법은 정의하고 있다. 성과연봉제 도입에 맞선 노조의 할 일은 바로 노조법이 정의한 노조의 일을 하는 것이다. 성과연봉제 자체를 무시해 버리는 요구를 해서 교섭과 투쟁할 일을 어떻게 조직해 낼 것인가. 바로 공공기관 120곳의 성과연봉제 도입이 완료됐다고 권력이 선전하는 바로 오늘, 이 나라 노조가 고민해서 대답할 일이다.

5. 노조운동이 시작되고 나서 수많은 일을 겪어 왔다. 노동조합은 설립되면 조합원의 노동자권리를 두고서 사용자와 대립하는 일, 교섭과 투쟁을 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이 자본의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드러낸다. 물론 노조라고 하지만 노사협의회와 다름없이 활동하는 수많은 노조가 있다. 우리의 경우 기업별노조나 산별노조 등 초기업별노조를 막론하고 실질적으로 사업장단위의 노조조직이 중심이고, 이들이 근로자위원을 차지해서 노사협의회를 진행하다 보니 사업장에서는 노조와 노사협의회가, 교섭 대상과 협의 사항이 뒤섞이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파업 등 쟁의로 하는 투쟁도 협의로 정리되기 일쑤다. 그러나 법이 노동조합을 노사협의회와 구분해서 정의한 것처럼 우리는 노동자권리를 위해서 노동조합을 교섭과 투쟁의 중심으로 바로 세워야 한다. 그것을 통해서 노동조합은 이 나라에서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자의 자주적인 단체로 자리 잡을 수가 있다. 이번 성과연봉제 도입에 맞선 노동조합의 대답은 바로 이런 일이 돼야 한다. 분명히 이번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에 있어서 이 나라 노조들은 반대를 분명히 하고서 투쟁을 말했다. 사용자의 일방적인 추진으로 사실상 투쟁은 없었지만 성과연봉제가 도입됐다는 지금, 노조는 자신의 일을 하는 것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한 권력과 자본에 대답해 줘야 한다. 그것은 대단히 거창한 일이 아니다. 법이 설립신고하면서 갖춰야 할 것으로 열거했던 바로 그, 노동조합으로서 사용자에 자주적으로 맞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서 교섭과 투쟁하는 일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