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

근로기준법 제9조 중간착취 금지 규정은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않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거리에서 ‘파견’ 혹은 ‘인부모집’ 같은 간판을 흔히 볼 수 있다.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를 다른 사업장에 보내 일하게 하고 그 노동자가 받는 임금에서 얼마간의 수수료를 떼서 이윤을 얻는 근로자 파견업체들이다. 중간착취에 해당한다. 이렇게 만연해도 괜찮은 것일까 싶은데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노동자 파견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합법이다. 합법이지만 괜찮지 않은 이유는 아래와 같다.

파견법은 1998년 외환위기 때 짧은 기간 동안 검토기간이 부족한 채로 정리해고법과 함께 입법됐다. 골자는 인력조정 유연화, 사용사업주를 노동관계법상 사용자책임 규제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노무관리 부담에서 벗어나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가 보자는 급진적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이었다. 파견법을 제정한 98년부터 3년간 파견업체는 59.3% 증가했다. 기업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입법이었다.

반면 노동자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됐다. 고용은 불안정해졌고 파견업체의 중간착취에 의해 임금이 하락했다. 책임을 지는 사용자가 모호해지고 현장에서 사용자의 보호나 배려 혜택은 증발했다. 실제로 일을 하는 파견 현장에서 사용사업주를 상대로 노동 3권을 행사하지 못해 실질적으로 기본권이 원천 박탈됐을 뿐만 아니라 감시·감독 장치 결여로 산업안전상 위험에 상시 노출됐다. 모두 노동자 생존과 직접 연결된 문제들이고 무엇 하나 사소한 것이 없다.

입법 당시 정부는 2년 이상 파견근로를 하게 되면 직접고용하게끔 장치를 해 놓았으니 파견노동자들이 보호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2년이 되기 전에 파견노동자들은 쫓겨났다. 그리고 입법 이후 불법파견 문제는 점점 확대·심화하고 있다. 파견이 가능한 업종이 아니거나 허가를 받지도 않고 노동자 직접고용 권리를 침해하면서 착취하는 불법이 확산하는 것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1천8개 파견사업장을 대상으로 파견법 위반 현황을 점검한 결과 53.8%인 538개 사업장이 법 위반으로 적발됐다. 노동부가 일일이 감시하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고 즉각 시정이 이뤄지는지도 회의적이며, 불법파견은 지금도 계속 새로이 발생한다. 그러니 불법파견을 유혹하는 원천인 파견법 자체를 폐기하지 않으면 근본적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태가 이러함에도 정부·여당이 올해 3월까지도 국회 입법을 강행하려 했던 파견법 개정안은 불법파견이 합법적인 도급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하고, 고령자에 대해 광범위하게 파견을 허용하며, 심지어 현행법에서 절대금지업종으로 돼 있는 직접생산·제조 공정에도 파견이 가능하도록 하는 안이었다. 파견법에 대한 고민과 활동이 시민사회에서 강도 있게 진행돼야 하는 이유다.

고용안정과 노동 3권 보장, 직접 사용자책임은 사용자가 부담이 크다거나 거부감·우려를 가진다고 무시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헌법 기본권인 제10조 행복추구권과 제32조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근로조건에서 일할 권리, 제33조 노동 3권, 제119조 개인과 기업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 규정에서 확인되는 진보된 인류역사의 천부적인 인권이다. 국민 절대 다수는 노동자다. 현재 국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대표적 민생사안은 간접고용 불안정노동 문제다. 국민을 쓰고 버리거나 교체하는 부품, 필요 없을 때 줄이거나 늘릴 수 있는 숫자로만 취급하는 우리 시장자본주의 철학을 확대·재생산하는 하부구조의 원천이 바로 비정규직·파견노동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사회 현안이 안갯속에 산적해 있지만 진실은 늘 구체적이고 해결은 국지적일 수밖에 없다. 각자 자리에서 실마리를 차분하고 치밀하게 풀어야 할 때다. 이번에 노동인권 신장에 천착하는 노동법률가와 인권단체들이 모여 '파견법 폐기, 간접고용 철폐 2016 파견노동포럼'이라는 기구를 출범해 법·제도적 연구와 실천을 집중화하고자 한다. 이 기구가 간접고용 불안정노동을 일소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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