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윤수 축구평론가

엄격한 학문적 구분은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축구장을 찾아가서 열렬히 응원하는 사람을 대체로 다음 네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먼저 축구팬. 대단히 넓은 범주이고 차차 언급할 사람들까지 다 포함되는 말이지만, 우선 이 축구팬들은 그야말로 축구가 좋아서, 텔레비전으로 시청하는 것은 성에 차지 않아서, 직접 경기장에 찾아가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가서, 자기 팀에게 성원을 보내고 상대 팀에게 어느 정도 야유도 하지만 웃고 즐기다가 돌아온다.

다음으로 서포터스. 말하자면 축구팬이 좀 더 진화하면 서포터스가 된다. 일단 조직화되는 것이다. 회비를 내거나 정기모임에 참여하고 실제 경기가 벌어지면 특정한 구역을 단체로 확보(대체로 경기장 북측 구역)해 집단적인 응원을 한다. 노래·구호·몸짓 등이 일정하게 조직화돼 있어 90분 동안 격렬하고도 확실하게 짜여진 서포팅에 몰두한다. 이겼을 때 열렬한 감정에 도취되고 졌을 때는 또 그만한 감정에 휩싸여 때로는 선수단에 항의를 하기도 하고 원정팀 서포터스와 괜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스포츠뉴스’에 나올 정도일 뿐이다. 양팀 서포터스들끼리 몸싸움을 벌였다가나 연전연패하는 감독에게 항의하기 위해 구단 버스를 가로막았다거나 하는 정도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사회뉴스’가 된다.

먼저 훌리건이 있다. 19세기 중엽 근대 축구에 대도시 문화가 자리 잡게 되던 시기부터 경기장 안팎에서 격렬하게 응원하고 종종 패싸움도 벌이는 일이 있었는데, 거리에서 싸움을 일삼는 불량배를 뜻하는 훌리건이라는 단어가 특히 축구장에서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을 가리키게 됐다. 1898년 영국의 한 신문이 이 단어를 처음 썼다고 한다.

훌리건이 왜 불량배를 뜻하느냐 하는 어원에 대해서는 훌리 갱(Hooley's gang) 와전설, 19세기 말 런던의 악명 높은 아일랜드 출신의 불량배 패트릭 훌리한의 이름 유래설, 슬라브어와 러시아어에서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 유입설 등이 있다.

서포터스, 훌리건, 울트라스

어쨌거나 이 훌리건이 ‘스포츠뉴스’가 아니라 ‘사회뉴스’가 된 것은 1960년대 초 영국 보수당 집권 당시 사회복지 축소와 빈부격차 심화, 노동자의 권리 박탈 등에 따른 하위 계층의 불만이 축구장에서 ‘거친 행동’을 하는 식으로 표출되면서부터다. 여기서 ‘거친 행동’이라고 한 것은, 고함을 치거나 축구장 시설물을 발로 차거나 거리를 떼로 몰려다니면서 노래를 부르는 정도다. 그리고 이 양상은 1980년대 악명 높은 마거릿 대처 정부의 노동자 탄압 때 좀 더 격렬하게 나타났는데, 그래도 당시 많은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인 하위 계층이 자신들의 불안과 불만을 거침없이 표출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유일한 장소가 축구장이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비록 그 행동에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 심리적 원인만큼은 대체로 동의했다.

이제 마지막 분류, 즉 울트라스를 보자. 축구계의 일반 표현으로 이 울트라스는 ‘좀 더 조직적으로, 좀 더 열렬하게, 좀 더 강력하게’ 홈팀을 응원하는 축구팬이나 서포터스를 가리킨다. 일단 좋은 말이다. 국내 프로리그에서 ‘울트라스’라는 이름을 단 서포터스들이 꽤 많이 있다. 이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유럽에서 ‘울트라스’ 하면, 가히 축구 응원을 핑계로 정교하게 조직화된 폭력단 정도로 생각해도 좋다.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 '유럽' '축구' '울트라스'라고 검색해 보면 당장 알 수 있다. 유럽 각국의 주요 방송들이 ‘울트라스’라는 이름으로 어떤 뉴스를 내보내는지, 아니 무엇보다 ‘울트라스’라는 이름을 쓰는 조직화된 과격 응원단 스스로 만든 영상이 어떤 것인지 금세 알 수 있다. 그들은 상대 팀 응원단은 물론 거리의 시민들이나 경찰들에 맞서 축구장 안팎에서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격렬한 패싸움을 벌인 것을 자랑스럽게 편집해 흡사 근사한 액션영화처럼 거창한 음향효과까지 덧붙여 널리 소개한다.

‘훌리건’만 해도 정부의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사지로 내몰린 노동자를 비롯한 하위 계층이 많은 사람들의 심정적 동의를 발판으로 그들의 불만을 축구장에서 표출하는 정도로 이해가 됐지만, 조직화된 울트라스는 거의 범죄조직처럼 움직인다.

이달 12일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가 열린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서 울트라스들이 맞싸워 44명 이상이 다치는 일이 터졌다. 잉글랜드와 러시아 울트라스들이 맞붙어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면, 크게 세 가지 차원의 조치가 진행돼야 한다. 우선 무관용 원칙에 따른 즉각적 제재다. 4년 전 폴란드와 우크라이나가 공동개최한 유로 2012 대회 때도 각국 울트라스들의 폭력사태가 벌어졌는데, 그때도 각국 협회와 개최국 치안당국이 즉각적 사법조치로 대응했다.

이번 사태에서도 프랑스 정부는 러시아 울트라스 20명을 추방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러시아 정부는 공식 항의했다. 추방된 자 중에는 극단적인 인종 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낸 극우 성향 전(全)러시아축구팬연합(VOB) 회장 알렉산드르 슈프리긴도 포함돼 있었는데, 이들은 마르세유 구치소에서 니스로 이동해 러시아행 비행기에 보내졌다고 한다. 히틀러의 악행을 단번에 떠올리게 하는 나치식 경례를 하는 등 이들이 현지에서 보여 준 행동은 그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것이었고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슬라브족 얼굴만 보고 싶다"고 말하는 슈프리긴 같은 인종차별주의자의 발언과 행동은 축구장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 영역에서도 추방당해야만 한다.

경계해야 할 극우 민족주의 경향

그러나 이들의 악행을 징계하고 본국으로 추방하는 것만으로는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 평소에, 그러니까 각국에서 1년 내내 벌어지는 자국 리그에서 언제나 울트라스들은 출몰하는데, 이번처럼 4년마다 열리는 유럽의 ‘국가대항전’이나 월드컵 진출을 위한 유럽 내 지역예선전이 벌어질 때, 그들은 극렬한 양태로 경기장을 접수하려고 한다.

잉글랜드나 러시아뿐만 아니라 헝가리·크로아티아·포르투갈·웨일스 등의 울트라스는 축구장 안팎에서 자신들의 일그러진 국가주의적 신념을 폭력으로 실천하고 있다. 특히 잉글랜드는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투표) 등의 상황에서, 즉 국내 경제 불안과 EU 책임론 및 비유럽계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이 비등해진 상황에서 유로 2016 대회를 격렬한 난동의 장소로 선택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추방당한 러시아 울트라스의 지도자 슈프리긴은 단지 열성적인 축구 광팬이라고 할 수 없는, 극우파 운동의 리더다. 그는 심지어 러시아 하원의원 이고리 레베데프의 보좌관이기도 하다. 프랑스 검찰은 “잘 훈련된 러시아 훌리건 150여명이 아주 빠르게 아주 폭력적으로 행동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울트라스가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 준다. 소치올림픽을 비롯해 월드컵이나 유로대회 같은 상징적 국가 전쟁에서 "반드시 러시아가 이겨야 한다"고 호전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 푸틴 체제의 결과물이다.

지금 유럽 축구장을 폭력으로 치닫게 하는 근원적 이유는 조직화된 훌리건의 악행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지금 유럽의 경제위기, 사회 불안, 유로화의 부실, 급증하는 난민 사태 등에 의한 인종 혐오와 국수적 경향, 즉 극우파가 활개칠 수 있는 유럽 전반의 사회적 위기 때문이다. 이를 직시하고, 이로부터 유럽 각국 정부와 축구협회는 축구장의 난동이 ‘축구팬의 악행’이 아니라 유럽 체제의 근원적 위기이며 자칫하면 20세기에 벌어졌던 끔찍했던 일들이 재연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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