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진미 영화평론가

<경계>는 지구촌 곳곳의 이주 문제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한국의 문정현 감독, 인도네시아의 다니엘 루디 하리얀토 감독, 세르비아의 블라디미르 토도로비치 감독이 참여한 삼국 합작영화다. 영화는 한국·일본·인도네시아·동티모르·남아프리카공화국·베트남·싱가포르·세르비아 등 8개국에 속한 이주민들의 삶을 보여 주며, 난민·분단·내전·노동 등 다양한 이슈를 제기한다.

1. 세 감독이 주고받는 동시대 난민 이야기

영화는 세 감독이 다른 감독에게 보내는 서신의 형식을 띤다. 영화는 세 감독의 이야기를 빠르게 교차시키면서, 다양한 이유로 이주를 겪은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의 얼굴을 겹쳐 보이게 한다.

루디 감독은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여성 누리의 일상을 보여준다. 누리는 일본 남성과 결혼해 거의 일본인이 됐지만, 인도네시아 전통음식 템페를 만들 줄 안다. 감독은 템페를 통해 기묘한 향수에 젖는다. 그리곤 인도네시아에 정착한 베트남 보트피플들이 어떻게 향수를 참을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루디 감독은 인도네시아 갈랑 섬의 폐허가 된 난민캠프를 찾는다. 1975년 베트남전이 종전된 후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그중 25만 명이 인도네시아의 협조로 갈랑 섬 난민캠프에 살게 됐다. 감독은 갈랑 섬 난민캠프에서 베트남인들과 함께 살았던 사람을 만나, 보트피플이 됐다가 갈랑 섬에 정착한 베트남 난민들의 사연을 전해 듣는다. 그들은 서너 달 동안 바다를 떠돌며 병들고 죽어 갔다. 당시 난민캠프에는 상점과 병원과 교회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떠나고 기념비와 공동묘지만 남아 있다. 루디 감독은 또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 국경에 놓인 모타 아인 다리를 찾아간다. 99년 동티모르에서 치러진 국민투표에 의해 독립이 결정됐다. 그러나 2002년 5월 동티모르가 독립을 선언할 때 수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난민들은 이 다리를 건너 인도네시아를 떠났다. 현재 다리를 사이에 두고 국경의 경계는 더욱 강화됐다.

세르비아 출신의 블라디미르 감독은 2005년 고향을 떠나 싱가포르에서 살고 있다. 그는 아시아 각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싱가포르에 온 120만 명의 노동자들의 일상을 기록하려다 중단한다. 과도한 노동시간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고 나니 더 이상 촬영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감독은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의 기념관에서 감독은 프랑스인들에 의해 감금되고 고문당했던 베트남 독립투사들의 사진과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다짐했던 호찌민의 친필 기록을 본다. 그리고 65년 미국의 참전에 반대하며 미 국방부 앞에서 31살의 나이로 분신한 노먼 모리슨의 사진을 인상적으로 담는다.

블라디미르 감독은 고향인 세르비아에 가서 고철로 배를 만드는 청년을 만난다.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유고슬라비아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마케도니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해체됐다. 유고슬라비아 시절 표지판은 고철이 돼 버렸고, 청년은 표지판을 수거해 배를 만든다.

2. 경계를 넘는 삶

문정현 감독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네자 아주머니 가족을 만난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살다가 아프리카로 끌려온 그들은 집단거주지인 디스트릭트6에 정착해 살았다. 그러나 인종차별정책으로 교외로 쫓겨났다. 디스트릭트6에 살았던 사람들은 아름다운 공동체를 잃었다고 한탄한다. 문 감독은 2002년 택시기사로 여섯 아이들을 부양하는 네자 아주머니를 만나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다. 2005년 완성된 다큐멘터리를 들고 다시 방문했을 때 네자 아주머니는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감독은 디스트릭트6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벌이는 새해축제를 카메라에 담는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용산참사를 목도한 감독은 디스트릭트6에서 철거당한 이들의 삶과 용산 철거민들의 삶이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용산 남일당 자리가 그러했듯이, 디스트릭트6가 있던 자리도 공터로 남은 채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8년 만에 다시 찾은 네자 아주머니는 중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며 남편과는 이혼한 상태다.

문 감독은 재일조선인 삼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감독의 외할아버지는 해방 후 좌우 이념 갈등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차별받는 재일조선인으로 살다가 이모는 북송선을 탔고, 삼촌은 일본에 남아 북한 이모를 뒷바라지했다. 삼촌은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데, 언젠가 북한의 여동생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모의 사망소식에 삼촌은 북한에 가서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한국국적을 취득해 65년 만에 아버지 고향인 한국에 온다. 감독은 가족 제사를 치르기 위해 북한·한국·일본을 오가는 삼촌을 통해 분단과 전쟁의 역사를 들려준다. 다른 감독들에게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 후 천만 명의 이산가족이 발생했고, 60여년 넘도록 서로 생사를 모른 채 가족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문 감독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우리가 겪어 온 역사임에도 낯선 것으로 느껴진다.

영화는 다양한 곳을 아우르며,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들은 정치·종교·인종·언어·빈부 차이로 불안한 환경에 놓여 있다. 영화는 이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으며, 굴곡진 세계사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국가 간 경계를 허물고 평화를 꿈꾸도록 한다.

블라디미르 감독은 노먼 모리슨의 사진을 비추며 미국인이라고 모두 전쟁에 찬성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는데, 문 감독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모든 미국인이 전쟁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장면과 정확히 일치한다. 영화는 국가 간 경계가 절대적이지 않으며, 인간은 경계를 오가며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경계에 놓여 있거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은 역사의 피해자인 동시에 역사의 생존자이며 한편으로는 역사의 승리자이기도 하다. 해체된 나라의 표지판으로 배를 만드는 사람은 경계를 허물어 자유롭고자 하는 의지의 상징처럼 읽힌다.

“국경이 없는 나라가 이 세상에 많이 있다면 세상은 훨씬 재미있는 곳이 될 거야”라는 대사는 세계에서 가장 강고한 경계인 휴전선을 지닌 우리들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휴전선의 철조망을 녹여 배를 만들 수 있다면, 세상은 진정으로 아름다워질 것이다.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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