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보건전문요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관이 허수경(가명)씨를 구출하기 위해 모여있다. 구태우 기자
▲ 김성우 정신보건전문요원은 조현병을 앓고 있는 허수경(가명)씨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구태우 기자
▲ 소방관의 도움으로 허수경(가명)씨의 자택에 들어온 정신보건전문요원이 허씨에게 병원에 가자고 설득하고 있다. 구태우 기자

20년째 조현병을 앓고 있는 허수경(가명·48)씨는 서울 은평구 불광동 반지하에 스스로를 가뒀다. 그는 지난해 12월 병원에서 퇴원한 뒤 약도 먹지 않았다. 피해망상증을 앓고 있다고 했다. 밖에 나가면 누군가 자신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각종 집기들을 집 밖에 쌓고,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광고지를 창문에 붙였다. 반지하 계단에 쌓인 수십개 쓰레기봉투에서 뿜어 나오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지난 22일 오후 김성우 은평구정신건강증진센터 팀장과 김지현 정신보건전문요원이 찾은 허씨의 집 풍경은 황량했다. 김성우 팀장은 보건의료노조 서울시정신보건지부장이기도 하다. <매일노동뉴스>도 이들과 함께 움직였다.

김지현 요원은 수차례 허씨의 집을 찾았지만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번번이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이날도 허씨는 묵묵부답이었다.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어느 순간 집에서 타는 냄새가 나더니, 연기가 새어 나왔다. 다급해진 김성우 팀장은 대문을 두드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김 요원은 대문과 부엌 창문에 대고 허씨를 불렀다. 결국 경찰과 소방차 2대가 출동했다. 소방관들이 창문을 뜯고 집 안으로 들어간 뒤에야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철컥 소리를 내며 열렸다. 매캐한 연기가 악취와 함께 문 밖으로 새어 나왔다.

이웃 외면한 조현병 환자 돌보는 정신보건전문요원

집안으로 들어갔던 경찰관들이 코를 막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방안에는 짜장면그릇 수십 개와 셀 수 없이 많은 도시락·피자·치킨 박스들이 쌓여 있었다. 그릇에는 부패해 검은색으로 딱딱하게 굳은 음식물이 묻어 있었다. 그릇 주변으로 날파리들이 요란하게 날아다녔다. 바닥에는 찢어진 종이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배달음식을 먹으며 근근이 생활했던 모양이다. 불은 허씨가 주전자 안에 찬밥을 넣고 끓이다가 났다고 했다. 빌라 입주자들이 “(허씨 때문에) 정말 못살겠다”고 격한 반응을 쏟아 냈다.

김 팀장과 김 전문요원이 집안으로 들어갔다. 허씨는 침대에 가지런히 누워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김 팀장은 “수경씨, 나 보건소 김성우예요. 기억하죠? 수경씨 여기 있으면 죽어요” 하며 병원에 가자고 설득했다. 허씨는 “저는 (당신) 몰라요”라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서현욱 전문요원까지 투입됐다. 경미하지만 화재가 발생한 만큼 허씨를 혼자 두고 올 수 없었다. 결국 전문요원들과 경찰이 허씨를 은평병원에 데려갔다. 허씨는 “(조현병이 아니라) 감기에 걸렸고 (은평병원에 있는) 입원자료는 모두 거짓”이라고 입원을 완강하게 거부했다. 의료진은 3일 동안 입원시키기로 결정했다. 오후 4시에 출동했는데 허씨를 입원시키고 나니 오후 7시가 지났다.

김지현 요원은 입원이 결정되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환자를 입원시키면 전문요원과 환자 사이에 쌓였던 신뢰가 깨진다"며 “환자들은 누가 입원시켰는지 알고 있고, 앞으로 또 입원시킬 거라는 불신 때문에 마음을 닫는다”고 설명했다.

전문요원 괴롭히는 열악한 근무조건

허씨는 아버지와 함께 살 때만 해도 조현병 치료를 꾸준하게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2년 전 아버지가 사망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허씨는 정신병원 몇 곳을 옮겨 다니다 지난해 12월 퇴원했다. 전문요원들이 한 달에 서너 번 허씨의 집에 찾아 약을 제때 먹으라고 권유했다. 같은 빌라에 사는 주민들이 허씨 집에서 악취가 난다며 민원을 넣거나 신고하면 전문요원들도 함께 방문한다. 이웃 얘기를 듣다 보면 환자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김 요원은 주민들의 설명으로 허씨가 이따금씩 늦은밤 500미터가량 떨어진 편의점에 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렇게 전문요원 업무는 녹록지 않다. 중증 정신질환자를 관리하는 만큼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 전문요원들이 응급출동을 하면서 정신건강증진센터 현황판에 출발시간과 출발장소를 적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복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거나 연락이 없을 경우 전문요원들이 위험에 빠진 것으로 간주해 대처한다고 한다.

올해 5월 현재 정신건강증진센터는 전국에 208개가 있다. 서울지역의 경우 25개 센터에서 303명의 전문요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전문요원은 중증 정신질환자들을 관리하는 만큼 사회복지사 또는 간호사 자격증을 딴 뒤 일정 기간 훈련을 거쳐야 한다.

전문요원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고 호소한다. 전문요원은 부족한데 관리해야 하는 환자는 포화상태다. 센터 전문요원 1명이 최대 100명의 중증 정신질환자를 돌본다. 일반상담·응급출동·정신보건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외에도 자살예방이나 사회복귀 훈련·재활지원 활동도 그들이 해야 할 업무다.

고용불안은 심각한 상황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이 지난 3월부터 2주 동안 서울지역 정신보건전문요원 2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무려 82.2%가 고용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1년 내 이직 의향을 갖고 있는 전문요원이 31.3%나 됐다. 직장생활 만족도는 43.8점으로 지난해 서울시 공공부문 종사자 만족도 45.5점보다 낮게 나타났다.

돌봐야 할 환자는 많은데 예산은 그대로

전문요원은 간접고용 계약직이다. 서울시 25개 센터 중 노원·구로·관악센터를 제외한 22곳의 센터가 위탁운영되고 있다. 위탁 계약기간은 3년으로, 전문요원은 2년마다 재계약을 한다. 계약기간이 다가오면 전문요원들은 고용불안을 느낀다. 지자체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3개 센터는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한다. 서울시가 상담실적으로 센터 순위를 매기고 있어 평가 결과가 고용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김지현 요원은 “위탁업체 재계약 시기가 될 때마다 다른 센터에서 구조조정을 했다는 소문에 예민해진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센터 사업비를 현실에 맞지 않게 지원하는 것도 문제다. 서울시는 2013년 71억5천300만원(인건비 57억원)을 지원했다. 2014년에는 76억원(인건비 61억원), 지난해에는 75억9천만원(인건비 62억원)을 편성했다. 하는 일은 포화상태인 반면 예산이 늘지 않아 인력 확충은 꿈도 꾸기 어렵다. 서울시가 올해부터 정근수당을 인상하기로 했다가 3월에 이를 철회하는 바람에 1~2월에 받은 50만~70만원의 수당인상분을 지난 3월 다시 반납하기도 했다. 예산부족을 이유로 매월 연장근무 한도도 20시간에서 10시간 이내로 줄었다. 서현욱 요원은 "한 달 평균 20시간가량 연장근무를 하는데 10시간밖에 인정이 안 돼 수당을 못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성우 팀장은 “인건비를 올리면 사업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인데 그게 안 되니 1~2월 지급됐던 수당을 3월에 반납한 적도 있었다”며 “센터의 실적을 양적으로만 평가해 매년 실적압박을 하면서 예산은 늘리지 않아 정신보건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서울시정신보건지부는 올해 2월 설립돼 서울지역 센터장들과 임금 및 단체교섭을 벌이고 있다. 현재 3차례 교섭을 진행했지만 △임금인상 △근로시간 면제 △노조 활동 △정년 같은 쟁점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지부는 예산을 편성하는 서울시가 교섭에 나서야 문제가 풀릴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성우 팀장은 “전문요원들은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는데 인력도 늘지 않고, 시가 임금을 오히려 깎으려 하고 있어 근무욕구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예산을 편성하는 서울시에서 교섭에 배석해 전문요원들의 처우개선과 고용안정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전문요원들이 겪는 고용불안과 노동조건은 시민에게 정신건강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는 요인”이라며 “사용자 위치에 있는 서울시가 고용안정과 노동조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현 요원은 “정신질환자들이 꾸준하게 약을 먹고 증상이 완화되고 지역사회에 적응해 어울려 사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전문요원들이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서울시에서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