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기 전 발전노조 동서본부 사무차장

“노조원의 성향을 겉과 속이 모두 하얀 배, 겉은 빨갛고 속은 하얀 사과, 겉도 빨갛고 속도 빨간 토마토, 이런 식으로 분류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2011년 1월16일 한 방송사 9시 뉴스에서는 발전노조 파괴를 위한 동서발전 회사의 집요한 행태를 보도했다. 동서발전에서 노조파괴가 자행되고 5년6개월이 경과한 지난달 27일 대법원은 발전노조가 동서발전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동서발전 회사와 사장, 인사노무 담당자들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며 “회사와 당시 사장 및 인사노무 담당자들은 발전노조에 7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2010년 12월 회사의 집요한 개입에도 발전노조 동서본부 조합원들은 민주노총 탈퇴 총회에서 반대 57.6%를 던지며 탈퇴안을 부결시켰다. 그러나 이어진 회사측의 이른바 플랜 B(개별탈퇴를 통한 회사노조 설립)는 한 명의 노동자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노조탈퇴서에 서명하지 않는다고 업무결재나 휴가처리가 반려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노조탈퇴를 종용하기 위해 회사 관리자는 퇴근 후 밤마다 조합원 집 문 앞을 지켰고, 조합원은 자기집 주위를 서성여야 했다. 조합원 가족들에게 발전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원거리 사업소로 강제발령 난다는 협박이 자행됐고, 조합원은 가족의 노조탈퇴 종용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탄압에도 굴복하지 않은 조합원은 동해에서 여수로, 당진에서 울산으로 400킬로미터가 넘는 원거리 사업소로 강제발령을 당했다. 노모를 홀로 두고 떠난 아들, 암 투병 중인 아내를 남겨 두고 떠난 남편은 400킬로미터 떨어진 외지에서 가족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 과정에서 자행된 조합원에 대한 폭력은 단지 부당노동행위라는 법률적 용어만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처참한 인권유린 행위였다. 이런 인권유린 행위로 동서본부 조합원은 1천370명에서 246명으로 줄어들었다.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발전노조에 남아 있던 토마토 조합원, 협박에 어쩔 수 없이 신념을 강탈당한 사과 조합원 모두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진상조사 과정에서 발전노조 노조파괴 과정은 청와대·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경총·고용노동부·경찰청·한전에 이르기까지 정권 차원의 기획과 지원하에 이뤄졌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발전회사는 노조파괴 계획을 경찰청과 노동부에 실시간 보고하고, 회사노조의 노조설립증을 받기 위해 청와대 비서관이 나서 노동부를 압박하는 계획까지 세워졌다. 부당노동행위 조사를 위한 국회 활동에 대해 경총은 이례적으로 “동서발전에 대한 정치권의 부당한 노사개입”이라는 보고서까지 제출하며 은폐하려 했다. 산하 공기업을 관리·감독해야 할 지경부는 동서발전으로부터 '노조 관련 선진화 추진실적 보고'라는 보고서를 실시간으로 받으며 발전노조 파괴 과정을 점검했다. 지난달 27일 대법원 판결은 이명박 정권의 ‘노사관계 선진화’가 불법행위를 사주하는 것이었다는 판결과 다를 바 없다. 발전노조 파괴 과정에서 조합원이 감당해야 했던 탄압은 정권의 모든 힘이 동원돼 한 노동자의 삶을 짓밟는 처참한 폭력행위였다.

7천만원 손해배상 판결로 그동안 조합원이 흘린 피눈물을 닦아 줄 수 있을까. 그동안 조합원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한 것은 명백하다. 그리고 동서발전의 불법행위가 곧바로 단죄되지 못하고 5년6개월이 지나는 동안 동서발전은 회사노조를 통해 복지축소, 임금피크제와 성과연봉제 도입으로 조합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켰다.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 대법원 판결로 회사에서 자의적으로 분류한 사과 조합원들이 불법행위로 만들어진 회사노조에서 다시 발전노조로 돌아와 당당한 토마토 조합원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이번 판결로 사과 조합원들이 회사의 불법행위로 강탈당한 신념을 다시 찾길 바란다. 힘내라, 사과 조합원! 노동자가 믿을 건 민주노조로 단결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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