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금방이라도 익어 버릴 것 같은 뜨거운 한낮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오와 열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그렇게나 널게만 보이던 광장이 좁을 정도였다. 줄을 맞춰 정차한 관광버스 숫자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조합원들이 집회에 참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대부분 언론은 5만명 이상이 참여했다고 알렸다. 10만명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필자의 눈에는 이보다 많아 보였다. 끝까지 자리를 함께하지 못한 조합원도 많았다. 가족들의 참여도 많았다. 부모님을 응원하기 위해 기꺼이 따라나선 아이들까지 합한다면 여의도 문화마당을 다녀간 이들이 10만명뿐이겠는가. 아빠엄마 옆에서 머리띠를 질끈 맨 초등학생들도 여럿 보였다.

이날 집회는 공공·금융 조합원들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양대 노총과 제조연대를 비롯해 “성과연봉제와 저성과자 해고를 저지하겠다”는 국내외 노동자들이 집회에 참석하거나 연대의 뜻을 전해 왔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 정치인들도 참여했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싸움에 함께하겠다”며 지지발언을 이어 갔다.

이번 집회는 그동안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해 오던 대정부 투쟁의 정점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공공노동자들은 정부세종청사와 국회를 오가며 두 달 가까이 천막농성을 이어 가고 있다. 크고 작은 시위가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집회의 힘은 정말로 대단하다. 노동자들의 단결된 모습은 어려운 문제를 풀어 내는 출발이 되기도 한다. 누구도 막지 못할 것 같던 정부의 일방통행이 멈춰 서기도 한다. 인상 깊게 기억되는 대표적인 예가 있다.

2014년에는 12만명을 훌쩍 넘긴 공무원노동자들의 연금개악 반대 집회를 했고, 앞서 2008년에는 우정공무원노동자들 전체가 참여한 우정공사화 추진 반대 집회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여의도 문화마당이 집회장소였다. 우리는 집회 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 우정사무를 공사화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알려지는 계기가 됐고 연금‘개혁’이 ‘개악’이 될 수 있다는 공무원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다수의 지지를 얻었다. 그리고 일방적인 정부정책을 폐기시키거나 정치적인 중재가 이뤄지는 성과가 있었다.

지난주 말 10만 공공노동자들의 집회 또한 머지않은 훗날 집회의 힘을 보여 준 또 다른 훌륭한 예가 될 것이다. 집회와 동시에 법률적인 투쟁도 계속되고 있다. 마침 금융노조 한국감정원지부 사건으로 관할 지방노동청을 다녀왔다. 고소인의 대리인으로서 참여하면서 사건 내용을 꼼꼼히 되짚어 봤다. 보면 볼수록 위법성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커지고 있다.

임금과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이 단체협약 대상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금융노조는 단체협약으로 이를 재확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감정원 사용자는 노조를 무시하고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행했다. 무시한 것을 넘어 사용자가 조합원총회를 소집해 노조 대표자를 선출하고 그 대표자와 합의하는 웃지 못할 만행을 저질렀다.

감정원 사건은 성과연봉제 불법 도입의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이 헌법소원 준비를 위해 취합한 성과연봉제 불법 도입 사례를 보면 상식을 가진 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한다. 개명된 세상에, 상대적으로 노동기본권을 충실히 보장받고 있다고 생각해 온 공공기관 사업장에서 벌어진 사건들이라서 더욱 놀랍다. 공개적으로 조합원들의 동의를 강요한 예는 아마도 가장 낮은 불법 수준일 게다. 노조대표자를 감금하거나 회유하고 동의하지 않을 경우 임금과 인사에서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식적으로 협박하는 예가 다반사다.

지금까지 위법한 성과연봉제 도입과정에서 확인된 사용자의 불법행위 유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시 과반수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지 않은 것을 시작으로(근기법 제94조1항 단서), 단체교섭 거부 및 지배개입에 의한 부당노동행위(노조법 제81조3호 및 4호), 임금에 관한 단체협약 위반(노조법 제92조2호 가목)에 해당한다.

집회는 그 자체가 가장 강렬한 자기표현이다. 10만명. 이보다 더 강렬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저항이 어디에 있겠나. 노동기본권을 지키겠다는 노동자들의 의지가 분명하게 표현됐다. 그리고 불법의 구체적 내용은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공공노동자들의 싸움은 불법에 맞선 저항이다. 그래서 정의롭다. 이제는 정부 차례다. 위법한 성과연봉제와 저성과자 해고에 관한 모든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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