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에 경제력이 집중되면서 기업집단이 정치적·사회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불법·편법적 승계가 용인되도록 만들고, 이런 세습을 통해 다시 경제력이 집중되게 만드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박상인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은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재벌개혁 산별연맹·노조 연석회의가 22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주최한 '재벌 탈법·편법 경영세습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세습 과정에서 기술혁신 둔화하고 양극화 심화"

박 위원장은 재벌세습 폐해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그는 "재벌의 과도한 계열화와 내부거래가 혁신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고 경쟁을 제한해 기술혁신과 시장 활력을 떨어뜨린다"며 "수직계열화와 무관하게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하면서 골목상권 침해와 양극화 심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에 따르면 재벌의 계열화와 내부거래는 세습문제와 직결돼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그룹이다. 이건희 회장은 1995년 아들 이재용에게 60억8천만원을 증여했다. 이재용은 이를 가지고 삼성그룹 비상장 계열사인 에스원·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매입했다. 이후 두 회사를 상장시켜 주식을 매각해 시세 차익 563억원을 남겼다. 이재용은 이 자금으로 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저가로 구입한 뒤 주식으로 전환해 최대 주주로 등극했다. 2년 뒤 에버랜드는 삼성 계열사 지배권을 가지고 있는 비상장사 삼성생명의 주식을 대거 사들여 지주회사격이 됐다.

최태원 SK 회장은 94년 SKC&C 지분 70%를 매입한 후 SK텔레콤 등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로 회사를 키웠다. 2001년 SKC&C는 SK의 최대주주가 됐고, 최 회장 지배구조는 공고해졌다. 최 회장이 SKC&C 지분을 매입하면서 들인 비용은 2억8천만원에 불과했다.

종잣돈으로 작은 기업을 지배한 뒤 해당 기업을 내부거래 등으로 키워 다른 기업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세습이 이뤄진 셈이다.

"재벌개혁은 대·중소기업 관계와 노동시장 정상화 밑거름"

박 위원장은 재벌개혁으로 얻게 되는 사회적·경제적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해소는 대기업-중소기업 관계 정상화의 전제조건이자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밑거름"이라며 "시장경제체제의 근간을 바로잡는 재벌개혁을 하지 않으면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대자동차가 높은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 하청업체 쥐어짜기가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송덕용 공인회계사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서 정의선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세습 과정에서 부품회사인 현대모비스가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대모비스는 비슷한 부품업체인 보쉬·덴소가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각각 42.5%와 56.6%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할 때 82.0%라는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송 회계사는 "모비스가 세계적인 부품업체들에 비해 두 배 가량 초과수익을 내고 있다는 의미는 다른 국내 하청업체들의 이익이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며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와 경영권 승계 과정이 부품업체에 대한 불공정 거래를 심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유기 노조 현대차지부장은 토론에서 "부품업체에 대한 현대차그룹의 막강한 지배력은 납품단가 문제는 물론 부품사 노사관계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연석회의는 다음달 22일 시민들과 함께하는 대규모 재벌개혁 행사를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노조는 같은날 총파업을 한 뒤 행사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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