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 그의 아침은 자명종보다 먼저 울리는 “카톡” 소리로 시작된다. 주섬주섬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메신저 프로그램에 접속하거나 밤새 들어온 이메일을 확인한다. 직장이나 거래처에서 보내온 업무 관련 메시지가 한가득이다. 침대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업무 모드다. 퇴근한 이후나 주말에도 쉴 새 없이 울려 대는 메신저 알림음은 그의 일상에서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정보통신기술과 스마트기기의 발달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유연한 근로형태로의 전환을 재촉한다. 이는 동시에 노동과 여가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성과주의 확산 풍조도 여가시간 중 노동을 감내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사무·관리직종의 경우 프로젝트성 업무가 증가함에 따라 노동에 투여하는 시간보다 업무 결과가 더 중요해졌다. 정해진 기간에 성과를 내려면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자기 위해 누웠을 때조차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은 고사하고, 로그아웃 없는 노동시간이 일상을 잠식한다.

◇'스마트 초과근무' 일주일 11시간=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구소 회의실에서 ‘카카오톡이 무서운 노동자들-노동자의 경계 없는 노동시간’을 주제로 노동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발제에 나선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해 노동연구원이 제조업·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남녀 임금노동자 2천4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스마트기기 업무활용 현황 실태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응답자 10명 중 7명꼴로 “업무시간 이외 또는 휴일에 스마트기기를 이용해 업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업무시간 외 업무를 위해 일주일 평균 11시간 이상(677분)을 투여했다. 평일은 평균 1.44시간(86.24분), 휴일은 약 1.6시간(95.96분)을 썼다.

주요 처리업무(복수응답)는 △직장 메일 연동을 통한 메일 수·발신(63.2%) △업무 관련 파일 작성과 편집(57.6%) △메신저·SNS를 통한 업무처리와 지시(47.9%) △사내 시스템 접근을 통한 업무처리와 지시(31.3%) △인터넷 원격 접근을 통한 업무처리(24.5%) △스마트기기를 통한 현장 모니터링(18.7%) 순으로 조사됐다.

스마트기기 사용 증가는 노동자들의 생활패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마트기기 사용으로 참여시간이 감소한 활동 1위는 수면(44%), 참여시간이 증가한 활동 1위는 업무 관련 활동(48.7%)으로 나타났다. 스마트기기는 노동자들의 심리상태에도 영향을 줬다. 43%의 응답자가 “스마트기기 사용으로 업무 관련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고, 응답자 51.2%는 “스마트기기 사용불가 지역에 있으면 불안하다”고 밝혔다.

◇노동시간·업무량 증가, 보호방안은 '전무'=스마트기기 사용을 통한 업무수행이 노동시간과 업무량를 늘리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이를 제어할 법·제도 방안은 없다. 스마트기기를 활용해 업무시간 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노동시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법적 판단은 모호하다. 설령 노동시간에 해당하더라도 보상을 받기가 쉽지 않다. 자구책을 마련하려는 노사 차원의 접근도 찾아보기 힘들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1주의 근로시간은 40시간,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해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있는 대기시간은 근로시간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핵심은 ‘사용자의 지휘·감독’이다. 스마트기기를 이용해 업무시간 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사용자 지시에 의한 것인지, 노동자의 임의적 판단에 따른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독일이나 프랑스의 경우에는 ‘호출대기시간’이라는 개념을 통해 노동자를 보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업무와 관련해 스마트기기를 꺼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를 호출대기시간으로 보고, 이때 실제 노동이 이뤄지면 그에 상응하는 임금을 지급한다. 그 반대면 휴식시간으로 다루는 식이다. 구체적 기준은 단체협약 등에 따른다.

스마트기기를 매개로 한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독일 폭스바겐은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을 통해 근무시간 종료 30분 이후 회사 이메일 기능을 차단한다. 주말에도 노동자들은 업무상 이메일을 받지 않아도 된다. 김기선 부연구위원은 “독일은 정신적 부담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안티스트레스법안’을 추진 중인데,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충분한 휴게시간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이 같은 입법적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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