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지연 청년유니온 조합원

내년 최저임금액을 둘러싼 노동계와 경영계의 힘겨루기가 본격 시작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달 28일까지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올해 6천30원인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임금상승 속도를 늦추려 한다.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최저임금연대가 최저임금의 사회적 의미와 인상 필요성을 주제로 기고를 보내왔다. <매일노동뉴스>가 다섯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법정시한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토대로 자신의 삶의 조건이 결정되는 사람들이 최저임금위원회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는 어렵다.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은 지난달 18일부터 한 달 동안 300여곳의 일터를 방문하고,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알리면서 함께해 줄 것을 청년들에게 제안했다. 나도 이 활동에 함께했다.

현장방문을 다닌 조합원들은 결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였다면 우리도 비슷한 노동을 하고 있었을 평범한 노동자들이다. 연신내역·왕십리역·흑석역 등 각지에 모인 조합원들은 저마다 자신의 노동을 마치고 퇴근길에 만나거나, 듣고 있던 대학교 수업을 잠시 중단하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우리가 매일같이 다니던 편의점과 커피숍을 최저임금 캠페인 어깨띠를 메고 방문하려니 너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서로가 다르지 않은 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바쁜 시간 속에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우리는 열 마디 말보다 따뜻한 눈인사를 나눴다.

“식당 가서 밥 먹을 때 요리하는 사람, 서빙하는 사람의 손을 본 적이 없던 것 같아요. 현장방문을 다니다 보니 일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우연히 만난 조리사님이 붕대를 감고 계시기에 어떻게 다치셨냐고 물었더니 비일비재하다면서 이건 별일 아니라고 얘기했던 게 마음이 쓰이더라고요.”(현장방문 조합원 후기 중)

현장방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최저임금위원회’에 보내는 엽서를 받았다. 긴 시간 동안 대화를 할 수는 없었지만, 사람들이 남긴 짧은 문장에는 소박한 절실함이 담겨 있었다. 창문 없는 고시원을 벗어나고 싶다는 이야기, 매점에서 파는 빵 말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 사람 구실은 하면서 살고 싶다던 이야기, 가끔은 영화도 보면서 살고 싶다던 이야기…. 글 하나하나가 마음을 울렸다. 어떤 이는 “최저임금 결정하는 사람들이 그 돈 받고 살아 봐야 한다”거나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은 왜 오르지 않는 거냐” 같은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듣자 하니 최저임금위에서 경영계는 업종별·나이대별로 최저임금을 차등해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의 노동은 생계가 아니라 용돈벌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현장에서 만난 일터의 모습은 달랐다. 용돈벌이로 폄하되는 일터가 사실은 얼마나 치열한지, 밥 먹을 시간이 없어 컵라면 하나로 저녁을 때우고 퇴근 후에는 다시 취업준비로 내몰려야 하는 청년들의 현실이 얼마나 각박한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다.

한 빵집에서 일하던 청년노동자와의 만남이 기억난다. 우리가 방문 취지를 설명하면서 최저임금위에 보내는 이야기를 엽서에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우리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청년의 희망이 아니라 희망고문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동안 최저임금과 사회 문제를 두고 여러 차례 서명을 해 봤지만 아무것도 바뀌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가 많이 공감되면서도 안타까웠다. 지금 대다수 청년노동자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와 쉽사리 바꿀 수 없는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은 변화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 우리 사회 현실을 보고 깊은 고민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 더 나은 미래를 상의하는 활동이 더 넓게 펼쳐져야 한다는 고민과 다짐이 생겼다. 이런 마음을 촘촘하게 엮어 낼 수 있을 때 모든 노동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우리의 생각이 최저임금위의 높다란 벽을 넘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 현실을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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