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영하 공인노무사(한국외대 노동법 박사과정)

‘이번 노동개혁 법률안도’ 입법 가능성은 낮다. 당론 법안으로 제출하든, 또 대통령이 국회 개원연설에서 무슨 소리를 하든, 그에 화답함과 동시에 강력한 야권 후보에 대한 흠집 내기 수단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들먹이든 간에 역시나 이번에도 정부·여당발 노동개혁 법률안은 처리되기 어렵다. 그렇게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정부에서 내놓은 2대 지침(공정인사,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의 악의성이겠지만, 그 외에 현재의 정치권 상황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야당에서 국회의장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까지 맡고 원내 의석수의 절대 다수를 차지했음에도 해당 법률안을 처리하게 내버려 둔다면 그것은 그들의 무능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야당은 절대 틈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둘째, 20대 총선이 가져다준 정치 지형 변화가 대선을 준비하는 각 당(특히 새누리당)의 발걸음을 재촉했고 현재는 사실상 대선체제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과거(혹은 현재) 정권에 대한 충성심은 낮아질 수밖에 없으니 입법 추진 동력도 낮아질 것이다. 얼마 전 여당의 한 의원이 파견법이 통과되면 스크린도어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당치도 않은 말을 했다가 조롱을 당했다. 슬픈 현실이지만 딱 이 정도가 노동에 무관심한 대다수 국회 구성원들의 노동개혁에 대한 인식 수준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선체제다. 조악한 노동개혁 프레임으로는 힘겨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이번 20대 총선이 확인해 주지 않았는가. 표에 민감한 그들은 달라질 것이다. 이번 노동개혁의 무엇이 잘못됐는지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지금의 프레임으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 것이고 섣불리 찬성표를 던지지 못할 것이다. 이들을 다시 거수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는 노동계가 수년간 요구한 사회안전망 확충과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에 대해 콧방귀만 뀌다가 왜 이제 와서야 구조조정이라는 불안감을 잔뜩 머금은 단어들과 조합해 억지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인지, 또 파견을 늘리면 왜 일자리 충격이 완화되는 것인지 제대로 설명하고 설득해 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정부가 제시하는 프레임으로 가능할까.

"구조조정 해법이 노동개혁입법"이고 "하청업체 사고예방 해법이 파견법 개정"이라니, 이런 가당치도 않은 얘기로 과연 가능한가 말이다.

그렇다면 대선을 준비하는 20대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앞서 얘기했지만 노동개혁의 신뢰성을 한꺼번에 무너뜨린 결정적인 실마리가 됐던 것은 2대 지침이다. 국회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2대 지침을 하루라도 빨리 무력화하는 것이다. 지금 이 일을 해내지 못한다면 2대 지침은 당초 정부가 원했던 바와 같이 사업장에서 ‘시그널’로 작용할 것이고 2년쯤 지나면 ‘사업장 관행’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래서 분쟁이 일어나 사법부의 판단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이런 위헌·위법적 지침은 사측의 신의칙 항변의 근거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헌법에서 국회에 부여한 입법권이 무너진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그들이 가지는 권한 중 하나인 행정입법검토제도(국회법 제98조의2)를 활용하거나 관련 노동관계법 개정을 통해 2대 지침을 폐기해야 한다. 그렇게 해 굳이 골치 아픈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손쉬운 행정입법을 통해 자기네들이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는 정부의 오만한 태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 뒤에야 국회가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침을 무력화하는 가장 적극적인 수단은 법률 개정이다. 노사정 합의에는 관련 법률안을 패키지로 묶어야 한다는 내용이 없다. 게다가 정부가 먼저 약속을 어기고 지침을 발표했으니 패키지 방식이 지향하는 교환관계도 더 이상 성립하기 어렵게 됐다. 일단 해고요건을 강화하고, 성과평가에 대한 규제를 노동관계법에 녹여내는 것, 국민의 생명·안전에 관한 업무에 대한 비정규직 고용금지를 위한 법률 개정과 같이 정말 필요하고 시급한 것부터 하나씩 입법해 나가야 한다.

노동개혁.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현재와 같은 노동 위기상황하의 대선 국면에서는 여야 모두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양극화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필자는 여당 입법안의 모든 내용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야당에서는 여당안 중에서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수용해 길어진 논쟁 덕에 갈팡질팡하는 사업장 질서를 하루빨리 안정시켜 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생존권 문제에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오히려 화를 키우고 문제를 만들어 냈다면 이번 참에 그 얼개를 새롭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야당에서 제기하는 ‘중앙노사관계’라는 개념도 충분히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으므로 여당에서도 이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일하는 혹은 일하고자 하는 모든 국민은 노동자다. 노동자의 밥그릇 문제가 정쟁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협치. 노동 분야에서 먼저 시작해 보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