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한 청년이 방학을 맞아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특급호텔 연회장에서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시급은 최저임금을 가까스로 넘겼지만, 주휴수당이 지급되지 않았다. 차액을 계산해 보니 18만원 정도가 체불됐다. 그는 자신이 속한 노동조합의 도움을 받아 진정서를 작성해 노동청에 제출했다. 며칠 뒤 담당 근로감독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랜 기간 상당한 금액의 임금체불 사건을 다루며 산전수전 겪었을 근로감독관이 노회하게 물었다. “서류 보니까 금액이 크지 않던데, 번거롭게 굳이 진정 사건으로 진행해야겠어요?” 청년이 답했다. “저에게는 큰 돈이에요.”

최근 몇 년 사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언론과 정치권에서 유력하게 다루기 때문만은 아니다. 조합원들과 캠페인을 하다 보면 거리에서 마주하는 시민들의 표정이 한결 따뜻하다. 중·고령층에 해당하는 시민들이 캠페인 부스를 찾는 빈도도 높아졌다. 10대 청소년과 20대를 중심으로 서명판이 북적이던 예년과는 다른 모습이다. 최저임금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노동운동을 가꿔 가는 입장으로 보면, 마냥 반가워할 수 없는 현실이다. 단결과 협약이라는 울타리 바깥에 놓인 채 오늘의 곤란함과 내일의 불안함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많아지고 있다. 빈곤의 위협에서 서로를 지켜 줄 안전망이 없으니 의지할 구석은 최저임금으로 상징되는 국가제도 변화뿐이다.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전향적인 요구는 더 나은 삶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기대를 자양분 삼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최저임금 1만원은 아직 떨떠름하다. 특급호텔에서 주휴수당을 받지 못한 청년처럼, 현존하는 법·제도가 자신의 현실로 보장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의 법정임금 미달 혹은 체불 사례는 유사한 경제규모를 가진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월등히 많다. 법을 지켜야 한다는 상식적인 목소리는 때때로 "우리가 남이가" 앞에서 야박한 요구로 읽힌다. 임금체불 문제를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의 갈등으로 조명하는 일각의 시선은 바람직하지 않다. 있는 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실태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행정의 무능력과 무책임에 있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관 한 사람이 1년에 300~400건의 사건을 처리한다며 예산과 인력의 부족을 호소한다. 그러나 미달된 근로감독관 정원을 확충하고, 명예근로감독관이나 특별사법경찰 등 부족한 인력문제를 미력하게나마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도입하는 데에는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 노동계는 근로감독관을 확충하라고 읍소하고, 당국은 좋은 의견이고 검토하겠다는 답변으로 마무리 짓는 이상한 공회전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어디 이뿐이랴. 소명의식을 갖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대다수 근로감독관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부끄러운 사례들도 많다. 바쁘다는 핑계로 25일의 처리기한을 갖는 임금체불 사건을 6개월이 넘도록 질질 끌거나, 법정 임금보다 낮은 수준으로 사업주와의 합의를 종용하는 등 근로감독관 관련 상담·제보가 청년유니온 사무실로 끊이질 않는다. 사업주를 찾을 수 없다는 빌미로 진정인과 협의도 없이 임의로 사건을 종결시키거나 "세상 그렇게 빡빡하게 살면 안 된다"는 말로 진정인을 나무라며 모멸감을 안기는 사례도 있다.

일터에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해 근로감독관을 찾았다가 더 큰 상처를 입는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 국가가 자기 역할을 방기하니 당사자들이 자구책을 찾는다. 청년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근로감독관 대면 준비사항이다.

"옷차림은 최대한 수수하게 입고 가라. 요구사항은 문서로 정리해 분명하게 전달하되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라. 혹여 근로감독관의 태도에서 불성실함이나 무례함이 감지되면 휴대전화 등으로 녹음하라."

청년유니온 위원장 (cartney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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