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정말 해도 너무한다.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은 강원도 삼척 공장에서 석회석을 채굴해 시멘트를 만드는 일을 했다. 4조3교대로 일을 하는데 24시간 쉬지 않고 시멘트가 생산된다고 한다. 중장비를 이용해 작업을 하는 이들도 있는데 하루 16시간 근무한 날이 부지기수였고, 심지어 24시간 일한 날도 있었다 한다. 인원이 워낙 부족하니 노동자들을 계속 쥐어짰는데, 노동자들도 임금이 너무 적으니 생계를 위해 긴 노동시간을 감내해 왔다. 그러나 불빛 하나 없는 밤에 중장비 조명에 의지해 위험한 산비탈 작업을 하다 보면 언제 다칠 지 모른 채 졸음과 싸워 가며 아슬아슬한 노동을 지속했다.

노동조건이 이토록 나쁜 것은 이들이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이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빽'이 있지 않은 이상 평생을 일해도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없고, 전체 노동자의 60%가 최저임금을 받으며, 회사에 인격적으로 무시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결국 2014년 5월 노동조합을 만든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된다. 대한민국 헌법에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가 분명히 보장돼 있지만, 노동조합을 만든 이후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이 당해 왔던 고통은 이 나라 비정규직의 노동권이 얼마나 바닥인가를 가슴 아프게 보여준다.

지난해 2월 말 노동자들은 모두 해고됐다. 동양시멘트가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한 것이다. 노동조합을 만든 것에 대한 보복해고였다. 노동자들은 동양시멘트가 자신들을 고용해 일을 시켜 왔기 때문에 동양시멘트가 진짜 사장이며 자신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법파견 진정을 냈다. 고용노동부 태백지청,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불법파견과 부당해고를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행정관청의 인정은 원청의 횡포를 뛰어넘지 못했다. 동양시멘트는 약간의 이행강제금만 물었을 뿐이다. 하청노동자들의 정규직화에 침묵으로 일관했으며, 지난해 9월 동양시멘트를 인수한 삼표는 교섭에 나오지 않은 채 노동자들을 회유해 노조를 탈퇴시키려고만 했다.

경찰과 검찰, 법원도 노동자를 괴롭히는 데 동참했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낸 각종 고소·고발에 시달리고, 16억원의 손해배상 가압류 때문에 힘겹다. 해고자들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인정해 주는 법원은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폭력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동양시멘트를 삼표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실사를 나온 삼표에 노동자의 요구를 전달하려 했다는 이유로 경찰은 노동자들을 연행했다. 관리자들과의 몸싸움 과정에서도 노동자들만 연행됐다. 무려 7명의 노동자들이 옥살이를 해야 했다. 노조를 탈퇴한 이들은 구속을 면했다. 편파적이고 폭력적인 경찰과 검찰, 법원의 태도를 보며 노동자들은 '무전유죄'를 절감했다고 한다.

요즘 언론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도 나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천명한다. 그런데 도대체 이 현실은 어떻게 바뀌는가. 파견을 확대한다고 해서 비정규직에게 권리가 생기지 않으며, 스크린도어 수리 과정에서 2인1조 작업을 강조한다고 해서 비정규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현실을 집단적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조합을 만들어 싸울 수 있어야 한다. 문제 해결은 언제나 고통을 당하는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 개선을 위해 싸울 때 이뤄지는 법이다.

견딜 수 없는 노동환경을 개선해 보고자 노동조합을 만든 것이 그토록 큰 죄가 돼 해고되고, 구속되고 엄청난 손배에 시달리고 있다.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의 고통의 날들이 7월 초면 500일이 된다. 노동자들의 단결을 가로막는 원청의 책임 부재, 검찰·경찰·법원의 편파적인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의 권리찾기는 끝없는 고통이 될 것이다. 그런데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제도 변화도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낼 때 가능하며, 설령 제도가 개선됐다 하더라도 노동자가 힘이 있어야 지켜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제도개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비정규 노동자들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는 것은 더 중요하다. 무수히 많은 비정규직 대책에 힘을 쏟는 만큼 이 정당한 싸움이 승리하도록 연대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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