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희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근로기준법은 제60조1항에서 사용자는 1년간 80퍼센트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연차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연차휴가 사용과 관련해 동조 제5항은 연차휴가를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주어야 하고, 다만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1년간 80퍼센트 이상 출근한 근로자는 15일의 범위 내에서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만큼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 근기법상 연차휴가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어 사용자가 지정한 시기에만 연차휴가를 써야 하거나, 본인의 당연한 법상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고 눈치를 보며 자기의 권리를 행사해야 하는 사업장이 적지 않은 듯하다.

한 대학의 청소를 담당하는 용역업체에서 일하는 고령의 노동자들이 있었다. 어느 날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근기법 교육을 듣다가 자신들이 지금까지 매우 부당한 일을 겪어 왔음을 깨닫게 됐다.

자신들은 휴가가 없었다는 것이다.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 쉬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분들은 통상의 날보다 근무시간이 짧은 토요일과 여름방학, 겨울방학에 사용자가 쉬라는 때에 쉬었다. 판례는 연차휴가 사용에 있어 근로자의 시기지정권이 박탈된 경우 이를 위법한 연차휴가의 부여로 보고 있다. “토요일이나 방학 때가 아닌 다른 시기에 연차휴가를 신청했는데 반려된 경우가 있으셨냐”고 물어보니 이분들은 한결같이 “연차휴가가 뭔지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는데 신청을 어떻게 하냐”고 하소연했다.

이분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때가 아닌 사용자가 주는 대로 휴가를 쓴 것은 법상 연차휴가가 아니니 그동안 미사용한 연차휴가에 대해 수당을 지급해 달라는 소를 제기했다.

사용자의 논리는 간단했다. 자신들은 토요일과 여름방학·겨울방학에 각 5일씩 충분한 휴가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쉬지 않았냐는 얘기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연차유급휴가 사용시기에 관해 일정 수준의 권고를 했을 뿐 휴가 사용권을 박탈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근로자들은 "원칙과 예외가 뒤바뀐 답변"이라고 맞받아쳤다. 사용자는 노동자가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의 휴가를 줄 의무가 있다. 이것이 사업장 운영에 지장을, 그것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에 한해 사용자는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연차휴가 시기지정권 제한과 관련해 근기법은 제62조에 '유급휴가의 대체'라고 하여 사용자와 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가 있는 경우에만 연차 유급휴가일에 갈음하여 특정한 근로일에 근로자를 휴무시킬 수 있게 돼 있다. 그런데 청소노동자와 사용자들은 이런 합의를 한 적이 없다.

법원은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연차휴가를 언제 사용할지에 대한 시기지정권은 근로자에게 있으며, 이에 대한 제한은 근기법 제62조에 따라 노사 간 서면 합의가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나 이러한 합의가 없었으므로 사용자가 맘대로 준 휴가는 연차휴가의 부여로서 효력이 없고 사용자는 그동안 미지급 연차휴가수당을 지급하라고 한 판결한 것이다. 당연한 결론이지만 근기법에 나와 있는 문구 그대로의 권리를 보장받는 길은 험난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