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서울경기강원지역버스지부가 14일 오전 고용노동부 서울관악지청 앞에서 마을버스 기사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마을버스 운전한 지 올해로 7년째인데요. 배고픈 게 제일 힘듭니다. 배차시간이 간격이 너무 빡빡해서 사발면 하나 먹을 여유가 없어요.”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일대 노선에서 마을버스를 운행하는 정윤호(65)씨 얘기다. 정씨는 40년 넘게 운수업에 종사한 도로 위의 베테랑이다. 예순 언저리에 접어들 즈음 ‘운짱’들의 마지막 일자리인 마을버스업계에 입문했다. 도로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 본 그에게도 마을버스 일은 버겁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배고픔을 참아 가며 일해야 하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

◇빵 하나 먹고 9시간 이상 근무=다른 마을버스 회사와 마찬가지로 정씨가 속한 A상운 역시 오전근무조와 오후근무조로 나뉘어 운영된다. 오전조는 새벽 5시에 출근해 낮 2시까지 차를 몬다. 오후조는 낮 2시부터 밤 12시까지 운전대를 잡는다.

“회사가 기사들에게 매일 20분씩 일찍 출근하라고 지시했어요. 차량을 점검하거나 교대를 준비하라는 거죠. 오전조는 새벽 4시40분까지 회사에 나와야 하는데 그 시간에 아침밥을 챙겨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없잖아요. 회사에서 1천500원어치 빵과 우유를 나눠 주는데요. 퇴근할 때까지 그거 하나 먹고 버티는 거예요.”

차량 배차간격이 5분밖에 되지 않아 벌어지는 일이다. 기사들은 정해진 노선을 한 바퀴 돈 뒤 차고지에 들어와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담배 한 대를 피우고는 곧장 운전석에 앉아야 한다. 회사는 별도 점심시간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후조도 비슷하다. 회사는 오후조에 한해 18분가량 휴게시간을 부여하는데, 식당에 가서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기사들은 편의점 김밥 한 줄로 저녁식사를 대신한다.

정씨는 “기사들이 끼니를 거르면서 일해야 하는 그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고 말했다. 바로 승객 안전 문제다. 그는 “배차간격이 워낙 촘촘해 기사들은 운행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다”며 “운전 중 용변을 해결하려면 불법임을 알고도 도로로 뛰어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승객들의 안전을 고려할 여유가 없다”고 토로했다. 승객들이 자리에 착석한 것을 확인한 뒤 버스를 출발시켜야 하는데 실제로는 출입문이 닫히는 동시에 차를 몰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근기법 어기고, 사고 피해 전가=정씨를 비롯한 A상운 소속 기사 10명이 14일 오전 고용노동부 서울관악지청을 찾았다. 회사의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을 진정하기 위해서다.

진정서에 따르면 A상운은 기사들에게 매일 20분씩 조기 출근을 지시하면서 정작 그에 해당하는 임금은 지급하지 않았다. 휴게시간을 근기법 기준에 맞게 부여하지도 않았다. 버스를 운행하는 과정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기사의 임금에서 손해액을 공제했다. 회사의 귀책사유로 휴업이 발생했는데도 휴업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노선변경을 이유로 기사들에게 ‘견습기간’을 명령하고는 견습시간에 해당하는 임금을 주지 않았다. 주휴수당을 회사 마음대로 축소해 지급하고,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 역시 임의적으로 책정해 지급했다.

진정서에 열거된 법 위반 사항은 A상운에서만 벌어지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마을버스업계에 만연한 행태다. 사용자들은 고령의 기사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점을 악용해 버젓이 노동관계법을 위반하고 있다. 연령대가 낮은 기사들에 대해서는 1년 이상의 마을버스 운전경력이 있어야 시내버스 운전기사로 옮겨 갈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불이익을 강요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무상 사고가 명백한 교통사고가 났을 때조차 그 피해액을 기사들에게 전가시키는 관행이 대표적이다.

사회공공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기준 마을버스업체는 전국 356곳, 종사자는 8천941명이다. 그해 734건의 마을버스 교통사고가 발생해 13명이 숨지고 1천20명이 다쳤다. 마을버스 교통사고 건수는 2009년 484건, 2011년 621건, 2013년 734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황재인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지금과 같은 배차 시스템이 유지되면 사고가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며 “노동환경 개선과 시민안전 차원에서 적정한 배차간격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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