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준상 전 KBS 이사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파격적인 재택근무 제도가 화제다. 일주일에 하루 두 시간만 출근하고 나머지는 집에서 일하는 시스템을 올해 8월부터 전체 직원의 3분의 1인 2만5천여명을 대상으로 도입한다고 해서다. 배경을 놓고, 일본 사회의 심각한 고령화와 저출산 때문이라는 분석에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어쨌든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 대해 의무화해 있는 직장보육시설 설치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우리에게 ‘선진적인 파격’으로 다가온다. 여기서 그치지 말고 정년연장 등 일본의 제도를 베껴 오는 데 익숙한 우리로서는 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인구수가 1억3천만명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줄어들고 있는 저출산과 고령화의 심각성이다. 1억명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별부 부서까지 정부 안에 만들 정도다. 일본의 인구수는 2010년 1억2천800만명을 넘어선 뒤 줄곧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1억2천711만명으로 5년 전보다 94만명 줄었다. 그만큼 일본의 잠재적인 성장 가능성이 위축되고 있다는 얘기다.

인구수 감소에 따라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릴 당시 나타났던 청년실업 문제도 그 정도가 덜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의 긴밀한 엔-달러 환율정책 공조 등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이른바 ‘아베노믹스’로 인해 청년실업의 강도가 누그러진 측면도 있으나, 청년실업 완화는 인구 감소의 동전의 앞뒷면을 이룬다. 도요타를 비롯해 일본 기업들이 채택하는 정년연장은 일본 정부의 법·제도 개선만이 아니라 새롭게 일손을 구하기 어려운 노동시장 상황에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까지 맞닥뜨리고 있다는 사정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일본은 ‘사회’가 일본 ‘기업’을 압도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적당해 보인다. "사회가 유지돼야 기업이 있다"는 의미라고 해도 좋다. 물론 여기에 일본 정부의 역할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상황은 어떤가. 흔히들 ‘10년 후 우리의 모습이 일본’이라고 하는 식으로 넘어가기보다는 역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저출산과 고령화의 속도가 급속하게 빠르지만, 기업들은 노동시장에서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뽑는 숫자는 적은데 뽑아 달라고 하는 사람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가 노동시장에 반영되기까지는 적어도 기업에게는 시간이 무척 많이 남아 있다. 일부 중소기업을 빼곤 정년연장은 기업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게 정확하다. 정부가 도입한 정년연장의 혜택은 사무직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40대 후반이면 이미 명예퇴직 대상이다. 오롯이 적용되는 건 공무원과 생산직 일부에 그친다. 특히 공무원이 최대 수혜자다. 정년연장으로 인해 공무원이 되려는 공시생(공무원 시험준비생)의 규모는 훨씬 더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년연장은 신규채용 축소와 함께 청년실업 문제와는 상충관계에 있을 수 있다. 올해 4월 정년연장 적용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해 임금피크제 도입이 지지부진해서 인건비가 증가하고 신규채용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는 대한상공회의소의 볼멘소리는 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경우는 "사회가 유지돼야 기업이 있다"는 인식이 여전히 매우 떨어져 있다고 해야 적당할 듯하다.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지만, 방향 감각을 잃은 지 오래다.

일본처럼 ‘사회’가 ‘기업’을 압도하기까지 기다려야 할까. 시간이 약이라는 해법을 따르면 그렇게 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게 개인적인 판단이다. 아니 수출주도형 ‘사회’가 ‘기업’을 압도하는 그런 시간은 오지 않는다는 게 내 판단이다.

국내총생산에서 수출입이 차지하는 대외의존도가 100%를 웃도는 나라와 30%를 밑도는 나라라는 차이는, 지금처럼 대외의존도와 관련 있는 기업들의 경우 노동시장에서 사회를 체감하지 못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단순한 일본 베끼기는 성공을 거두지 못할 듯하다. 무조건 정년연장은 좋은 것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청년실업 문제와 연관해 달리 생각해 보는 것도 해법이 될지 모른다. 예를 들어 정년과 연금 지급시기를 앞당기되, 일손을 구하기 어려운 업종이나 기업들에겐 정년을 선택적으로 연장하는 식으로 말이다. 정부가 지금 하는 방향과는 반대로 말이다.

전 KBS 이사 (cjsang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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