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나? 안 까였나? 종종 듣는 질문이다. 매일노동뉴스에 글을 쓰면서부터다. "대통령 퇴진 그만 외치자"고 하질 않나 "노동자끼리 나누고 양보하자"는 주장을 서슴지 않아서다. 기존 운동 풍토에선 경을 칠 주장이다. 그것도 모자라 날 선 비난과 욕설이 난무하는 페이스북에도 올리기 시작했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에게 “아빠 페이스북 댓글에 욕설이 달리더라도 놀라지 마라. 세상엔 다양한 의견이 있고, 욕도 때론 훌륭한 표현방식의 하나니까” 하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시켜야 했다.

반응은 다양했다. 시원하다, 아니다, 고민스럽다처럼. 당연했다. 한데 놀라운 반응이 있었다. 그간의 입장과 행동을 봐선 동의하지 않을 듯했던 한 노동운동가가 조심스레 말했다. “많은 운동가가 욕먹을 것 같아 드러내진 못하지만, 마음속으로 고민을 한다.”

구의역 사망사고로 추모와 성찰 흐름이 한동안 사회를 덮었다. 김군은 비정규직이고 민주노총 조합원이었다. 1인 시위에도 열심이었다. 세상과 자신의 처지를 바꾸고픈 청년노동자였다. 그러나 그렇게 죽었고, 머잖아 세상에서 지워질 것이다.

김군, 1997년생 소띠였다. 태어난 그해, 국가부도 사태로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09년, 신종플루가 창궐해 생애 첫 수학여행이 취소됐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4년, 앞서 수학여행을 떠난 250명의 동갑들이 세월호 참사로 살해당했고, 전국의 동갑들은 생의 마지막 수학여행을 취소당했다. 그것도 부족했던 대한민국은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2016년, 컵라면도 못 먹게 하고 살해했다.

대한민국이 살해했다. 대한민국? 이렇게 서술하면, 묵묵히 살아가는 민초들이 억울하다. 대한민국이란 표현엔 국민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책임은 이윤과 권력에 혈안이 돼 비정규직 세상을 만들고 참사 세상을 만든 재벌과 역대 정부에 있다. 국가에 있다. 그래서 운동은 풍찬노숙하고 감옥에 가고 죽어 가면서도 줄기차게 투쟁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노동자에 농민·상인·빈민들까지 경쟁과 배제의 시스템, 오로지 나뿐인 나쁜 삶에 철저히 물들어 버렸다. 민주노조 조합원들도 다를 바 없다.

<상황 1> 민주노조가 있는 어느 공장이다. 사내하청 비정규직들이 우리도 정규직이 되게 해 달라고 싸우며 처참하게 얻어맞는데, 정규직 노동자들은 기계를 멈추지 않는다. 옆 사업장 비정규직도 뛰어오지 않는다. 내 처지가 우선이다.

<상황 2> 참교육을 외치는 교사들의 영향력이 큰 어느 학교다. 학교비정규직들이 노조를 만들고 고군분투하는데, 교사들은 방관한다. 그들은 기간제교사 처우에도 별 관심 없다. 대부분의 정규교사는 기간제교사와 학교비정규직이 자신과 다른 급의 인간이란 생각을 내면화하고 있다.

<상황 3> 학교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들어 무기계약직이 된 어느 학교다. 노조간부가 기간계약을 하고 들어온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자, 기존 무기계약직이 반발한다. 기간제는 조합원도 아닌데 왜 노조가 신경 쓰냐고, 한정된 비용에서 기간계약직 처우가 좋아지면 그만큼 무기계약직 손해 아니냐고 한다. 배제 논리가 밑바닥까지 잠식했다.

다시 강조하는데, 이 모든 것은 재벌과 정부가 만든 결과다. 그들은 상황을 바꿀 뜻이 없다. 분할통치가 기본전략인데, 뭐 하러 피지배계급의 연대기반을 만들겠나. 그래서 운동은 판을 뒤집으려 부단히 투쟁했고, 투쟁하고, 투쟁할 것이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역부족이고, 역부족일 것이다.

그러면서 운동 토대인 노동계급이 조각조각 해체되고, 농민과 상인과 노점상도 조각조각 갈라졌다. 혁명이 일어나거나, 운동이 그에 버금가는 신선한 충격을 사회에 던지지 않고선, 변화는커녕 물꼬조차 틀 수 없는 상황이다. 나는 그것을 우선, 노동자끼리 나누고 양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중심부 정규직 노동자는 특권이 됐다. 아니 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이고 일자리가 특권인 세상이 시작되고 있다.

<상황 4> 유엔 미래보고서에 따르면 14년 뒤면 현재의 인간 일자리 80%가 사라지고 변형된다. 아시아에서 100만명을 고용하는 아디다스가 독일에서 로봇공장을 가동하고 아시아 공장들을 폐쇄한다. 로봇공장 직원은 160명이면 된다고 한다. 폭스콘은 11만 제조노동자 중 6만명을 로봇으로 대체한다. 가와사키중공업은 파견노동자 대신 파견로봇을 투입하기로 했다. 병원·은행·유통매장에 로봇이 등장하고 있다. 15년쯤 뒤 숱한 인간은 잉여가 된다. 김군과 동갑들이 30대일 때다.

끔찍한 상상이 머릿속을 맴돈다. 특권계급이 된 인간노동자는 지금처럼 자신의 몫을 꾹 움켜쥔 채 재벌과 정권과 로봇을 탓하며, 잉여에게 투쟁으로 쟁취하라고 훈수한다.

화가 난 잉여는 지배계급을 향해 투쟁하면서도, 연대의식은커녕 나눔도 없는 인간노동자를 규탄하고 투쟁한다. 공부하고 싶으니 학원 보내 달라고 눈물로 호소한 딸을 냉정하게 외면하면서 노동운동에 안달복달했던 까닭은 그 딸이 노동자로 인간답게 사는 세상인데, 그랬던 내 딸이 내 평생의 노동운동과 노동계급을 향해 투쟁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악몽이다. 내 딸은 세월호 참사로 살해된 단원고 아이들, 또 구의역에서 살해된 김군과 동갑내기다. 운동은 이 상황을 도대체 어찌해야 하나.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