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는 인간들끼리의 관계다. 노사관계에서 노동자는 회사(社)와 관계를 맺는 게 아니라 회사라는 틀에서 사용자(使)와 관계를 맺는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노동자의 상대(counterpart)로 규율하는 대상은 회사라는 조직체가 아니라 인간인 사용자다. 노조법 제2조2항은 사용자를 “사업주, 사업의 경영 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로 규정한다. 노조법이 사용자라 규정한 이들의 상당수는 사실상 노동자다. 노조법 제2조1항이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노동자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노조법 제2조의 1항과 2항은 현실과 동떨어져 법리에서 서로 충돌하면서 대한민국 노동법의 어줍음을 드러낸 지 오래다.

사용자는 회사가 아니고, 회사도 사용자가 아니다. 회사라는 단체의 법인격과 사용자라는 회사 구성원의 법인격은 구별된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선 회사 조직 자체에 독립된 법인격이 부여됨으로써 회사에 속한 재산과 구성원 개인에 속한 재산은 분리된다. 현대자동차의 재산은 이 회사의 형식적 소유주인 정몽구 회장의 재산과 분리된다. 한국의 노동법이 ‘사용자’로 규정한 사업주, 사업의 경영 담당자, 노사관계에서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의 재산은 회사의 재산과 구별된다.

노조법 제2조4항은 “경비의 주된 부분을 사용자로부터 원조받는 경우” 노동조합이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사용자, 즉 자본가의 원조는 회사의 원조와 같은 말일까. 물론 다르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해 현대차로부터 56억원, 현대모비스로부터 42억원 등 모두 98억원을 보수로 챙겼다. 정 회장이 회사로부터 받은 돈에서 노동조합으로 원조한 돈은 단 한 푼도 없었다.

회사라는 조직은 그 구성원으로부터 독립된 법인격을 갖고 있다. 현대차의 법인격은 정몽구 회장의 법인격과 구별되고 분리돼 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쓰는 공장 안 노조사무실은 정몽구 회장의 개인 소유물에서 원조받은 게 아니라 그로부터 법인격에서 독립된 회사로부터 원조받은 것이다. 회사 조직에는 정씨뿐만 아니라 4만명이 넘는 금속노조 조합원도 일하고 있다. 사용자가 회삿돈으로 타는 자동차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회사로부터 지원받는 노조사무실의 지위는 본질적으로 같다.

주식회사라는 법인격을 부여받은 현대차 조직 안에서 정몽구 회장은 노동자들처럼 하나의 기관(organ)에 불과하다. 회사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라는 말이다. 회삿돈은 그의 개인 돈이 아니며, 명확히 분리된다. 노조법 제24조2항은 노조전임자가 “사용자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지급받아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했다. ‘회사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지급받아서는 아니 된다가 아니다.

집단적(organizational) 노사관계에서 노동조합은 노동자를 대변한다. 그럼 사용자가 대변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독립된 법인격체로서의 회사가 아니라 개별 인간으로서 권리와 이익, 그리고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사용자(자본가) 자신이다. 노사관계에서 회사는 인간의 상대가 아니라 생산이 이뤄지고 이윤이 창출되는 조직, 즉 노동자와 자본가가 노는 마당일 뿐이다. 노사관계에서 선수(players)는 무생물인 회사가 아니라 생물인 인간 대 인간, 즉 노동자와 자본가다. 제대로 된 법치주의라면 ‘단체의 자유(freedom of association)’라는 규칙하에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회사에서 창출된 이윤을 두고 각자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자주적으로 게임을 해 나간다.

노사관계의 본질이 대립적이고 투쟁적이라 할 때, 그것은 노동자와 회사, 혹은 노동조합과 회사의 관계가 대립적이고 투쟁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노동자와 사용자, 그리고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의 관계가 그렇다는 말이다. 대립과 투쟁이 노사관계의 본질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권리와 이익을 둘러싼 노사 간의 힘겨루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기업하기 좋은 것’과 ‘사용자(자본가)하기 좋은 것’은 다르다. 투쟁적인 노동조합과 대립적인 노사관계가 회사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반대로 노사가 하나라고 주장하는 어용스러운 노동조합과 협력적인 노사관계가 회사를 망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조합이 조직된 대부분의 기업은 주식회사라는 법적 형태를 띠고 있다. 주식회사 제도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통해 다양한 규모의 자본을 취합해 거대한 사업을 추진할 자본을 뒷받침해 준다. 법률적인 관점에서 보면, 법인체인 회사와 그 구성원인 자본가(사용자)는 구분돼 각각 독자적인 권리 주체로 인정받는다. 또한 법인 명의의 재산과 자본가 소유의 재산은 엄격히 구분돼 각각의 재산 범위 안에서 각자의 책임을 부담한다. 이러한 법·제도가 파생시킨 회사라는 조직체의 특징을 고려할 때 ‘회사의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로 왜곡된 노조법 제24조2항은 거대한 사기극이자 희한한 코미디에 다름 아니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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