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잘살 수 없어도, 누구나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 준 그대가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구의역 청년’ 김아무개씨의 발인식이 9일 치러졌다. 사고가 발생한 지 12일 만이다. 김씨는 스크린도어와 관련된 사고로 숨진 세 번째 희생자다. 2013년 1월19일 성수역, 2015년 8월29일 강남역, 2016년 5월28일 구의역에서 청춘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서울시청역 시민게시판에 붙은 포스트잇 내용처럼 그들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일했다. 하지만 그들은 정작 자신은 지킬 수 없었다. 하청노동자를 위한 안전 보호막은 없었다. 작업수칙(매뉴얼)도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2인1조 작업수칙은 그야말로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청춘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매뉴얼이 아니었다. 사람보다 돈, 안전보다 효율이 먼저라는 시스템에 대한 맹신이었다. 서울메트로 구조조정은 사람 잡는 선택이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지난 2004년 시민 안전을 위한 지하철 스크린도어 사업을 추진한다면서 실제론 최저가 입찰과 부실시공으로 일관했다. 속도전으로 시공된 스크린도어는 잦은 고장을 일으켰다. 되레 시민안전을 위협하는 기계였다. 오세훈 전 시장은 ‘창의혁신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적자경영 상태였던 서울메트로를 창의적으로 개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경정비업무 외주화를 시작으로 스크린도어 유지 업무를 하청회사에 넘기는 것이 창의혁신이었다. 지하철 광고를 담당하는 회사가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를 겸하는 비상식적인 외주화도 창의혁신이었다. 감원과 외주화가 프로그램의 전부였다.

서울메트로는 경정비와 스크린도어 유지 업무를 외주화하는 과정에서 주로 장기근속자를 용역업체로 전적시켰다. 용역업체는 서울메트로 인력에겐 종전 임금을, 신규채용한 청년 인력에겐 저임금을 주면서 차별구조를 고착화했다. 안전을 담보로 서울메트로-용역업체-정규직 노동자의 담합은 이러한 사슬로부터 만들어졌다. 결국 서울시는 인력감축, 하청업체는 저가낙찰을 벌충하려는 악순환 구조가 탄생한 것이다. 박원순 시장 체제에서도 세명의 청년들이 희생됐음에도 악순환과 특권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서울시는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의 통합으로 원-하청 시스템을 뜯어 고치려 했지만 시간만 흘려보냈다. 구의역 사고는 결국 예정된 참사였던 셈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했다.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자주 거론하는 속담이다. 소를 잃었다면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쳐야 한다. 세월호 참사 후에도 여러 가지 대책이 제기됐다. 생명·안전업무의 외주화를 금지하거나 산재 사망사건을 일으킨 기업을 처벌하는 살인기업법 제정이 그 일환이다. 하지만 어느 하나 진전된 것이 없다. 그러는 사이, 산업현장에서 하청노동자 죽음의 행렬은 계속됐다.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 가운데 절반이 하청노동자였다.

이젠 실천을 해야 할 때다. 이제‘생명·안전업무 외주화 금지’라는 원칙은 일선 기업현장에 적용돼야 한다.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더 이상 차일피일 미루지 말아야 한다. 언제까지 사람잡는 외주화로 하청노동자들이 희생돼야 하는가.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7일“2인1조 근무 매뉴얼은 노동인력 부족이라는 현장의 문제를 도외시한 탁상공론”이라며 “스크린도어 업무를 비롯한 생명·안전업무를 직영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의 제안은 종전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당초 서울시는 스크린도어 업무를 서울메트로의 자회사 체제로 편입하겠다고 했다. 자회사 단계를 없애고 곧바로 직영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와 서울메트로가 직영체제를 추진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중앙정부가 지방공기업의 인력과 인건비를 통제하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서울메트로의 인력을 증원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지방공기업을 담당하고 있는 행정자치부의 입장은 명확하다. 서울메트로 증원은 서울시 소관이라는 것이다. 결국 행자부 얘기는 총액인건비 범위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증원에 따른 낮은 경영평가 등 불이익을 감수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행자부의 경직된 태도는 곤란하다. 구의역 청년의 죽음을 추모하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박 시장은 굽힘없는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구의역 청년 김아무개씨가 바라는 일이다. 그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응원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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