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우리 그렇게 죽었어. 그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안고 떨기 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바닥을 긁어 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정태춘 '우리들의 죽음' 중에서)

1990년 3월 서울 마포구 한 연립주택 지하에서 불이 났다. 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고 집 안에는 세 살, 다섯 살 아이들이 있었다. 가사도우미와 경비원 일을 하는 엄마와 아빠는 어린 아이들이 걱정돼 문을 잠그고 나갔고, 집 안에 있던 다섯 살 혜영이는 방바닥에 엎드린 채, 세 살 영철이는 옷더미 속에 코를 박은 채 숨졌다. 이 사건 이후 가수 정태춘씨는 '우리들의 죽음'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노래에 나오는 아이들의 내레이션을 들을 때마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아야 했다.

26년이 지난 오늘,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작업을 하다 목숨을 잃은 김군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무뚝뚝하지만 속 깊고 착한 아이'면서 '엄마에게 뽀뽀하며 힘내라고 말하는 곰살맞은 아이'였던 김군은 장남의 책임감으로 진학보다는 취업의 길을 택했다. 김군의 엄마는 "길을 가다가 뒤통수만 봐도 알아볼 수 있는 아이인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 수가 없다"며 "머리카락이 피로 떡이 져 있고 뒷머리가 날아간 저 처참한 모습은 우리 아들이 아니다"고 오열했다. 유품이 된 그의 가방 안에는 여러 가지 공구와 함께 사발면과 숟가락이 들어 있었다.

스무 해를 살기에 하루가 모자랐던 김군과 다섯 살 혜영이, 세 살 영철이의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프고 힘든 일이다. 죽음을 말하기엔 너무나 어리고 젊은 아이들이다. 희망·꿈·삶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아이들에게 세상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배고플 때 먹으려 했던 사발면과 숨을 쉬고자 머리를 묻었던 옷더미는 이 아이들이 살기 위해 부여잡은 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만든 세상은 성과와 이윤을 향한 무한질주 속에 경쟁을 강요하고 가난과 차별은 일상화돼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고, 누구의 잘못인가. 지하방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니다"고 이야기하듯이 김군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은 구의역 9-4 승강장에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적어 놓았다.

이곳저곳에서 반성과 책임을 말한다. 그렇지만 폭주하는 천민자본주의 기차가 멈출 것이라고, 혹은 방향선회를 할 것이라는 기대는 크지 않다. 이 두 사건이 아니더라도 90년과 2016년 사이에는 수많은 희생들이 점철돼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 '우리들의 죽음'에서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얘기한다.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뚱이, 몸뚱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린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

김군의 영면을 기원한다.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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