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노란 포스트잇에 적힌 메모들이 역사 한편을 가득 메우고 있다. 스크린도어 아래 수북이 쌓인 하얀 국화는 여기가 사고현장임을 보여 준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고인을 조문하고 있다.

서울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현장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10여년 가까이 애용한 역이기도 하거니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현장을 찾았다.

사고는 지난달 28일 새벽 5시55분에 발생했다. 차마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끔찍한 사고였다고 한다. 고인이 조합원으로 가입한 은성피에스디노조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여성연맹이 밝힌 사고 이유는 이렇다. “정비 인원 부족으로 2인1조가 운영되지 않은 것이 사고의 근본 원인이다. 최소한 2인1조로 편성할 수 있을 만큼의 인원을 충원하고 정비사업을 서울메트로가 직접 운영해야 한다.”

사실 이번 사고 이전에도 강남역과 성수역에서 동일한 종류의 사고가 있었다. 만약 서울메트로가 그때 약속한 대로 28명을 충원했더라면 김군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늘 그렇지만 후회 막급이다.

김군의 불행한 사고는 우리 사회, 특히 노동현장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안전에 대한 무관심, 도급을 통한 위험의 외주화, 흙수저로 불리는 청년노동자 일자리까지…. 어느 것 하나 심각하지 않은 주제가 없다.

안전과 생명을 보장받는 것은 시민의 제1 권리다. 국가의 제1 책무이기도 하다. 계몽시대 국가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시민 생명을 최우선에 두지 않는 국가는 그 자체로 의미가 없다. 헌법재판소도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보호의무를 국가 기본의무로 인정하고 있다.

사고 직후 정치권에서는 앞다퉈 “안전과 관련한 업무는 외주화를 전면 금지하겠다”는 내용의 법률을 만들겠다고 한다. 더 좋은 법률을 만들겠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 법이 노동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질지,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집행될지, 그동안의 경험으로 쉽게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오히려 현재 있는 법이라도 제대로 작동시켜야 한다.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며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존재하는 일반법이 산업안전보건법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지켜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제29조)은 도급사업시 안전보건조치에 관한 도급인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도급인으로 볼 수 있는 서울메트로는 당연히 1차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

19세 청년노동자가, 그것도 새벽에, 쉽지 않은 위험한 작업을 혼자서 했다. 그 대가는 최저임금 수준의 매우 적은 임금이었다. 우리 사회 청년들의 일자리와 노동환경 문제는 단연 최대 현안이다. 통계상으로는 10%라고 하지만 청년들의 실업률은 실상 25%를 넘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리고 이들이 택한 일자리는 매우 열악하다 못해 위험하다. 구의역 사건에서 보듯이 위험업무를 외주용역으로 받은 사업장이 청년노동자들의 주요 일터가 돼 가고 있다.

답을 찾아야 한다. 노동시장을 넘어선 우리 사회 구조적인 불평등 해소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지만, 지금으로서는 한시바삐 외주화를 막아야 한다. 사업운영비용을 줄이기 위해 외주화를 택한다고 변명하지만 직영하는 것과 비용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오로지 법률적 책임 회피를 위한 것일 뿐이다. 마침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정비 업무를 직영으로 변경하겠다고 한다. 시간 끌 이유가 없다.

언론은 서울시와 메트로, 용역회사에 대한 비난과 책임을 묻는 데 열중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이 빠져 있는 듯하다. 지하철 이용객으로서 안전에 소홀하더라도 적은 비용만을 고집한 것은 아닌지, 외주용역을 사실상 압박한 것은 아닌지, 안전요건을 갖추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정비임에도 지하철이 늦다고 "빨리빨리"만 외친 것은 아닌지.

만약 그랬다면 이제는 삶과 사고의 방향을 달리해야 한다. 안전에는 그만한 비용을 지불할 준비를 해야 하고, 안전을 위해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수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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