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과 통영 등의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8일 오전 국회 앞에서 고용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중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목포 대불국가산업단지에는 인근 현대삼호중공업과 거제·고성·통영지역에 위치한 성동조선·STX조선해양 등에서 하청을 받아 선박 블록을 만드는 조선소 사외하청업체가 밀집해 있다. 이곳 업체들은 직접고용 없이 기간제 혹은 물량팀으로 불리는 임시 계약직 노동자들을 사용한다.

금속노조 서남지역지회에 따르면 2012년 328개 사업장에 2만여명의 노동자가 대불산단에서 일했다. 그런데 조선업 불황과 중소조선소 폐업이 잇따르면서 최근 240여개 업체만 영업을 하고 있다. 노동자는 1만1천명으로 줄었다. 3~4년 새 9천여명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대불산단을 떠난 것이다.

"피땀 흘리며 일했는데 가장 먼저 희생당해"

1979년 울산에서 조선소 비정규직으로 일을 시작한 윤영생씨는 최근까지 대불산단에서 사외하청 물량팀으로 일했다. 민주노총·한국노총·조선업종노조연대가 8일 오후 국회에서 개최한 '위기의 조선산업, 벼랑 끝 조선노동자, 당사자가 말한다' 증언대회에 참여한 그는 "비정규 하청노동자들과 물량팀의 피와 땀으로 조선산업이 발전해 왔는데, 위기가 닥치니까 우리가 가장 먼저 구조조정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윤씨는 "조선소 사내·사외하청업체는 별도 기술력 없이 비정규직 고용·해고를 반복하면서 원청에 필요인력을 공급하는 사람장사를 하고 있다"며 "불안한 신분 탓에 해고되기를 반복해도, 임금을 체불당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더니 이제는 구조조정 논란 속에도 우리 처지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인력공급업체로 변질된 하청업체

고성·통영 인근 조선소 물량팀에서 용접공으로 8년째 일하고 있는 최광호씨는 원청에서 하청, 하청에서 물량팀, 물량팀에서 자신이 맡은 업무 중 일부를 다시 다른 물량팀에 맡기는 이른바 돌관팀("돌격해 관철시키자"는 의미로 사용되는 조선업 노동자들의 은어)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구조 개선을 조선업 구조조정의 핵심으로 지목했다.

최씨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각각의 조직들이 돈이 안 되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표준·절차·법을 무시하고 노동자에게 일을 강요하거나 수시로 채용·해고를 반복하고 있다"며 "조선소를 살리려면 어느 조선소는 죽이고 어느 조선소를 살리고, 혹은 누구를 자르는 등의 방식이 아니라 하도급 구조를 조정해 정상적인 산업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증언대회에서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물량팀 비정규직과 함께 중형 조선소의 목소리가 구조조정 과정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윤종우 금속노조 STX조선지회 조직부장은 "조선산업의 생존과 발전은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뿐만 아니라 중형 조선소와 조선 기자재 산업이 함께 어우러져야 가능하다"며 "지금 중형 조선소에 필요한 것은 사람을 자르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기업회생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선소 비정규직들 전국 단위 공동행동
대형조선소 노조들은 상경투쟁


한편 정부가 구조조정 추진을 본격화하면서 노동계와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노조 서남지역지회와 거제통영고성조선소하청노동자살리기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조조정 국면에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하청노동자 노조가입 운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소 하청노동자와 물량팀 노동자로 구성된 이들 단체가 전국 차원의 공동행동을 모색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불황과 구조조정을 빌미로 대대적인 임금삭감이 진행되고 있고,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눈앞에 벌어지는 대량해고 칼춤을 지켜만 보는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공세적인 노조가입 운동을 통해 비정규직을 죽이는 정부 구조조정에 맞서 생존권을 지키는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1박2일간 상경투쟁을 시작한 조선업종노조연대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정치권은 조선산업 발전 대책과 조선소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라"며 "노동계와 업종별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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