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달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안전문(스크린도어)을 수리하던 노동자의 죽음이 우리를 깨웠다. 외주업체 은성PSD 소속 노동자는 질주해 온 서울 지하철에 치여 숨지고 말았다. 그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일했지만 자신의 안전을 돌보며 일할 수는 없었다. 지하철 승객의 안전을 위해 그는 쉴 틈 없이 일했다. 하지만 자신의 안전은 돌볼 틈 없이 일해야만 했다.

"정비기사는 고장 접수 1시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서울 지하철의 원청 서울메트로와 외주업체 은성PSD의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 도급계약은 그를 죽음의 작업에 몰아넣었다. 그에게 서울 지하철은 너무도 무심했다. 스크린도어는 시민 안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었지 그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시민 안전을 위해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자신의 안전을 책임져 주지 않는 세상에서 그는 죽어야 했다. 그의 죽음에 세상은 사고 원인을 규명하겠다, 책임을 규명하겠다며 바빠졌다. 노동조합을 비롯한 노동단체들은 그를 추모하며 ‘안전의 외주화’를 추진해 온 권력과 자본을 비난하고 있다. 수리 노동자 김군(19세), 죽음으로 새삼스럽게 우리 앞에 외주화의 문제를 던지고 있다.

2. 5월28일 오후 5시57분께 사건이 발생하고 3시간 뒤 서울메트로측은 “작업자가 업무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요지의 긴급브리핑을 통해 김군의 책임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뒤에 드러난 김군의 작업실태를 보면 애당초 이 수리 노동자가 지킬 수 없는 규정이었고, 오히려 서울메트로의 외주 도급계약과 그에 따른 외주업체 노동자의 열악한 작업조건과 쉴 틈 없는 노동강도가 문제였다. 서울 지하철의 강북지역 49개 역사 스크린도어를 불과 4명의 외주업체 노동자가 관리하고, 하루 평균 스크린도어 장애신고는 30건이 넘으니, 희생당한 수리 노동자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면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김군의 작업실태에 서울메트로는 김군의 책임이 아니라며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자회사 설립을 통해 수리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서 스크린도어 수리작업을 하고, 시설개선을 통해 재발방지에 나서겠다고 서울메트로는 발표했다.

이날 서울메트로 기자회견에 함께한 최병윤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은 “노조가 사회적 역할을 못해 다시 사고가 일어났다는 점에서 사과드린다”며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노조 역할을 분명히 하겠다”고 밝힌 후 “안전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말했다고 보도됐다(매일노동뉴스 2016년 6월2일자). 서울메트로 노사는 인건비 절감 등을 내세운 외주화가 몰고온 사고라고 진단하고, 대책을 말하고 투쟁을 말하고 있다. 구체적인 대책에서는 노사가 다른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외주화를 중단하는 방안을 찾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2008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직원의 20%인 2천여명을 민간위탁·외주화 방식으로 감축하겠다며 서울메트로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공기업 구조조정의 대표 사례였다. 이후 수많은 공공기관이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인적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노동자들은 명예퇴직·희망퇴직 등으로 사업장에서 얼마의 퇴직위로금을 받고서 사실상 퇴출당했다. 이러한 구조조정 방식은 2008년 12월19일 공공기관 선진화추진 계획을 통해 공공기관 구조조정 방식으로 공식화됐다. “기능·조직·인력의 효율화를 통해 경쟁력 제고”를 목적으로 “기관의 고유·핵심기능에 적합한 조직·정원으로 개편”한다며 “민간과 경합하거나 민간이 효율적으로 수행가능한 기능은 폐지·축소 또는 민간위탁”하도록 했다. 대표적으로 도로공사의 경우 통행료 징수·단순 유지보수·안전순찰 업무를 민간위탁하고, 한국공항공사의 경우 소방기능·청원경찰·항공등화 업무를 민간에 위탁하도록 했다. 공공기관에서 현장 기능직 노동자는 핵심이 아닌 단순 기능업무로 분류돼 퇴출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9년 말 한국공항공사에서 실시된 구조조정이었다. 공공기관 선진화추진 계획을 앞장서 이행하겠다며 소방직 등 업무를 외주화하고, 그 기능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명예퇴직·희망퇴직 등을 실시했으며 끝내 퇴직 신청을 하지 않은 노동자들을 대거 정리해고해 퇴출시켰다. 외주화라고 말했지만 노동자들은 소속만 외주업체로 바뀐 채 그대로 일해야 했다. 하던 일은 그대로였고, 임금 등 조건만 종전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추락했을 뿐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서울메트로에서도 당시 구조조정된 노동자들은 외주업체 소속으로 바뀐 채 일해 왔다고 밝혀졌다. 당시 구조조정 대상자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퇴직자를 용역회사에 떠넘겼고, 숨진 김군이 일했던 은성PSD도 2011년 설립될 때 직원 125명 가운데 90명이 서울메트로 출신이었다. 전적자(서울메트로에서 퇴직하고 용역회사로 넘어간 직원)에게 기존 임금의 60~80%를 보전하도록 요구했고, 이에 따라 서울메트로 출신은 다른 직원에 견줘 임금 등에서 나은 대우를 받아 왔다고 언론은 ‘메피아’라며 선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를 노동자의 눈으로 다시 읽어 보면 공공기관 구조조정이라는 아픈 역사가 보인다.

3. "기능점검 결과에 따라 조직·인력을 조정하되, 비효율성 제거를 위해 10% 이상 감축 노력"을 하고 “상위직 축소, 대부서화 등을 통해 조직 효율화”를 하며 “인건비·경상경비 등 예산 절감”과 “연봉제·임금피크제 등 경쟁·성과 중심 운영시스템 도입 등”을 목표로 했던 당시 공공기관 선진화추진 계획은 모든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 이러한 계획을 추진하려면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을 변경하고 인력감축에 협의해야 한다. 노사 합의가 있어야 한다. 노동조합이 합의해 주지 않으면 선진화추진 계획의 인력감축은 사업장에서 적법하게 실시될 수가 없다. 그런데 당시 공공기관에서 선진화추진 계획은 거의 대부분 이행됐다. 그러니 노동조합들은 그것에 합의해 줬던 것이다. 오늘 문제가 되고 있는 외주화도 조합원 등의 인력감축에 있어 위로금과 함께 퇴직 후 외주업체로의 고용보장 등에 관해 공공기관의 사용자와 협의했다. 결과적으로 사용자의 외주화 추진에 노조가 합의해 준 것이 되고 말았다.

이명박 정권 초기에 권력이 무섭게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이에 맞서기 어려우니 불가피하게 협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나마 그 정도라도 보장받았다고 노동조합은 변명했다. 돌이켜 보면 구의역 김군 사고에서 노동조합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법적 책임은 아니겠지만 조합원의 고용을 지켜 내야 할 노동조합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해 안전의 외주화를 막아 내지 못했고, 심지어는 퇴직 조합원의 고용보장을 내세워 이를 묵인하거나 합의해 줬다.

사실 공공기관만이 아니다. 노동조합이 있는 수많은 사업장에서, 심지어 민주노조라며 사용자 자본에 맞서 자주적으로 활동한다고 언제나 투쟁을 외쳐 왔던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도 그래 왔다.

오늘 구조조정이 문제 되고 있는 조선사들에서 외주화의 문제를 지적한다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노동조합은 방치해 왔다. 아니 사용자가 사내하청 노동자로 사용하는 데 노조가 협의해 줬다고 말해야 할 지경이다. 원청 노동자인 조합원 고용안정을 위한 완충장치로 외주업체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를 활용해 왔다고 비난을 받을 지경이 됐을 정도로 문제는 심각하다. 조선업종만이겠는가. 자동차업종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업장에서 그래 왔다. 그러니 외주화를 문제 삼는 것이 이 나라에서는 이상할 정도다.

4. 오늘 구의역 김군 사고로 외주화가 심각한 문제라고 폭로되고 있다. 그러니 서울메트로 노사는 더 이상 외주화는 없다고 합의하고, 서울 지하철에서 스크린도어 수리업무 외주화를 중단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거기서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서울지하철이 아닌,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선진화추진 계획 등에 따라 외주화된 업무를 되돌리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전망은 지금 없다.

서울지하철노조가 외주화 철폐,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투쟁을 말하고 있다고 보도됐지만, 다른 공공기관 노조들도 이런 요구와 투쟁을 하고 있다고는 보도되지 않고 있다. 일부 노조들에서는 외주화 중단을 단협 요구안으로 포함하기도 했다. 그것뿐이다. 그걸 조합원의 임금인상 요구처럼 투쟁으로 관철하겠다는 의지와 실천은 없었다.

분명히 지금 이 나라에서 외주화가 문제다. 그것은 외주화를 방치한 노동조합도 활동에서 문제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 노동자 권리를 위해 노동조합이 외주화 중단을 자신의 요구로 말하고 투쟁하지 않는다면 내일도 노동조합은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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