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공 사망사고 현장에 시민들이 붙여 둔 메모지와 국화가 가득하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지난 2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 지하철 하청노동자 사망재해 해결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가칭) 구성원들이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19세, 컵라면, 두 단어에 울었다.”

한 60대 남성이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플랫폼에 써 붙인 포스트잇에 적힌 내용이다. 기성세대의 미안함과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분노가 짧은 문장에 담겨 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열아홉 살 어린 청년의 죽음에 온 사회가 슬픔에 빠졌다. 슬픔의 기저에는 "남 일 같지 않다"는 공감이 자리 잡고 있다.

용역업체 노동자가 피할 수 있었던 사고를 당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안타까움을 넘어 살아남은 자들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절망이 흘러넘친다. 여타 산재사망사고와 달리 ‘안전의 외주화’가 부른 참극이라는 명료한 진단을 내리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고인에 대한 추모물결은 이번 사고가 사회정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사라진 100만원은 어디로 갔을까

 

슬픔은 이내 분노로 바뀌고 있다. 국민의 화풀이 대상은 이미 정해졌다. 이른바 메피아(메트로+마피아)로 불리는 메트로 전적자들에게 화살이 집중되고 있다. 사망사고 발생 초기만 해도 안전업무 외주화에서 사고 원인을 찾던 언론들은 이제 메피아의 탐욕을 향해 포커스를 돌렸다. 그럴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메트로의 스크린도어 유지관리비용 산출내역을 보면 메트로가 설계한 메트로 전적자 1인당 월 평균 노무비는 434만2천159원이다. 전적자들은 노무비 외에 선택적복지비(복지포인트)와 복리후생비를 추가로 받았기 때문에 실수령액은 더욱 늘어난다.

숨진 김군처럼 용역업체가 자체 채용한 노동자의 1인당 월 평균 노무비는 244만8천778원이다. 그런데 김군은 생전 144만원가량의 월급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메트로가 설계한 자체 채용직 노무비보다 매달 100만원가량을 덜 받은 셈이다.

사라진 100만원은 어디로 갔을까. 사라진 돈을 추적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뒤지던 중 ‘용역업체 옵션’이라는 항목에 시선이 멈췄다. 스크린도어 유지업무와 고용관계가 거의 똑같은 전동차 경정비업무 관련 자료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하철비정규지부에 따르면 2008년 전동차 경정비업무에 대한 외주용역 입찰이 처음 진행될 당시 메트로는 최소 45명의 전적자를 고용할 것을 요구했다. 그 뒤 2011년 2차 용역입찰이 이뤄질 당시에는 77명의 전적자 고용을 요구했다. 이때 입찰을 희망하는 업체들은 전적자를 더 많이 모집하기 위해 경쟁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메트로가 부담하는 노무비용 외에 용역업체가 추가로 부담하는 임금옵션이 제기됐다.<표 참조>

용역업체가 메트로 전적자 월급의 15~35%를 얹어 줬다는 말이다. 일반상식에 견줘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얘기다. 김군의 월급봉투에서 사라진 100만원은 이런 경로를 거쳐 남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비용과 고용’ 덫에 빠진 메트로 노사

“과연 메트로와 노조는 그런 계약을 하면서 그 회사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 못했을까?”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 토론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일부다. 메트로 정규직노조에 대한 불신이 느껴진다. 용역업체 수익의 상당 부분이 메트로 전적자 임금보전에 할애되는 상황에서 용역업체 자체 채용직의 노동조건 개선이나 '2인1조' 같은 안전시스템 구축이 가능했겠냐는 지적이다.

노조로서는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는 지금의 상황이 곤혹스럽다. 노조가 원해서 전적을 추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메트로는 2008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추진한 ‘창의혁신 프로그램’에 따라 대대적인 인력감축에 돌입했다. 유사기능 통폐합과 차량·설비 점검주기 조정, 아웃소싱과 민간위탁이 진행됐다.

2008년 전동차 경정비업무와 모터카·철도장비·구내운전 업무가 외주화됐고, 2011년 스크린도어 유지업무까지 외주로 전환됐다. 비용절감을 위해 공공의 안전을 내팽개쳐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구조조정이 추진된 첫해인 2008년 메트로 정원은 1만284명에서 9천150명으로 줄어들었다.

“메피아로 불릴 만큼 편익을 취한 사람은 극히 일부인데, 그들에 대한 비난은 마땅하다. 하지만 전적자 모두를 메피아로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들 대부분은 서울시와 메트로가 강행한 구조조정의 피해자다. 반강제적으로 회사에서 쫓겨났다.”

최병윤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정년이 보장된 공기업 노동자들을 상대로 구조조정을 강행하려던 메트로측이 임금보전과 정년보장이라는 유인책을 내놓은 것이 이른바 메피아가 탄생하게 된 과정”이라며 “진짜 문제는 정책 결정자들이 단기 실적주의에 사로잡혀 앞뒤 재지 않고 무리하게 구조조정을 밀어붙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익성 중심 경영평가와 상시적 구조조정이 ‘위험의 돌려막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노사 담합하면 ‘안전’도 거래할 수 있다?

당시 상황을 요약하면 정규직 정원 감축이라는 실적이 필요했던 메트로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장기근속자들에게 ‘당근’을 제시했다. 이때 노조가 퇴직 조합원의 고용과 임금 보전을 수용하는 선에서 절충이 이뤄졌다.

여기서 짚어 볼 대목은 구조조정이라는 눈에 뻔히 보이는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들이 따로 있는데도 국민의 화살이 노조와 전적자들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유가 뭘까.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는 현대자동차 노사의 담합구조를 파헤친 저서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중산층화와 실리주의화·보수화가 진행되는 것과 병행해 파업이 갖는 성격은 이익집단의 정치로 퇴행하고 있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노사가 담합의 비용을 비정규직이나 협력업체, 소비자 등 외부에 떠넘기면서 사회적 비판은 더욱 거세진다.”

노조를 향한 곱지 않은 여론은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메트로 전적자들의 높은 임금에는 다른 노동자들의 희생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에 투입된 노동자라면 출신이 어디든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연대정신을 망각한 노조운동에 대한 실망이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용역업체 출자에 참여한 전적자들은 월급 이외에 배당금까지 받았다. 처음에 이들은 명예퇴직 압박을 받고 반강제로 회사에서 밀려난 처지였지만, 정작 회사를 옮긴 뒤의 사정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노동강도가 낮아진 것을 감안하면 남는 장사였던 셈이다.”

메트로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의 말이다. 웃지 못할 정황은 또 있다. 메트로에서 퇴사한 뒤 출자를 통해 용역업체를 차린 한 사장은 메트로의 정년을 적용받은 뒤 자신을 촉탁직으로 ‘셀프 채용’을 했다. 메트로와의 용역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한, 사장인 동시에 직원으로 남을 수 있다. 비용절감을 앞세운 구조조정으로 공공안전을 위한 필수인력을 외주화한 서울시와 메트로에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의 1차적 책임이 있다면, 기득권에 집착한 노조와 전적자들의 태도는 안전업무 외주화 이면의 치부를 드러냈다.

서울메트로-서울도시철도 통합 부결이 아쉬운 이유

메트로 안전업무를 담당하는 용역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메트로 정규직과 엇비슷한 수준으로 개선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안전과 시민서비스 강화, 지출 절감 등을 목표로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외주용역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논의가 심도 있게 진행됐다.

전동차 경정비 업무와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 등에 종사하면서 메트로 전적자와 차별을 겪었던 노동자들의 임금을 메트로 수준으로 인상하고, 용역업체 노동자를 자회사에서 직접채용한 뒤 일정 기간을 거쳐 메트로 직원으로 받아들이는 단계적 고용방안이 논의됐다.

그런데 올해 3월 두 공사 통합 논의가 노조 반대로 무산되면서 그간의 논의내용마저 무용지물이 됐다.

오선근 공공교통네트워크(준) 운영위원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중앙정부로부터 예산·인력을 통제받는 상황에서 일단 해당 노동자의 임금수준이라도 높여 놓으면, 추후 직접고용이 가능한 여건이 마련됐을 때 기존 정규직과 충돌 없이 정규직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며 “두 공사 통합투표 과정에서 노조가 자신의 이해관계에 골몰해 다시 없을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찼다”고 아쉬워했다.

두 공사 통합 논의 과정에서는 노사민정이 참여하는 ‘안전 거버넌스’ 구축방안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협치(協治)의 의미를 지닌 거버넌스(governance)는 정부가 스스로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시민사회의 도움을 받아 함께 다스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안전 거버넌스는 지하철 노사와 서울시·시민·외부전문가가 참여해 위험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원탁회의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공공안전 문제, 노사의 전유물 아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가 ‘안전을 대가로 한’ 노사 간 거래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은, 안전 문제를 노사 당사자에게만 맡겨 두는 것이 외려 공공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교훈을 던져 준다.

협업과 감시·견제가 동시에 이뤄지는 안전 거버넌스 도입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서울시의 안전 거버넌스 논의 역시 두 공사 통합 무산에 따라 중단된 상태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인적 요인에만 초점을 맞춰 책임자를 처벌하고, 정작 재난의 뿌리인 구조적 원인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며 “지하철 안전문제에 이해관계가 있는 지방정부, 실질적 운영자인 공기업 경영진, 현장 책임자인 노동자, 교통서비스 이용자인 시민이 함께 참여해 논의하고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형식보다 내실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두용 한성대 교수(기계시스템공학부)는 “기본적으로 거버넌스는 그 사회의 민주적 성숙도와 보조를 맞추기 마련”이라며 “각종 정부위원회처럼 형식적으로 거버넌스의 틀만 갖춰 놓은 채 내실을 다지지 못하면 정작 안전 문제 책임 당사자들에게 핑계거리나 면죄부를 주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