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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공기업정책연대 노숙 현장] "꼭 한 번은 이기고 싶다, 이번이 그때다""연봉제·퇴출제 저지" 끝장투쟁 각오한 공공기관노조 대표자들
▲ 공기업노조정책연대 소속 노조 대표자들이 지난 3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집회 무대에 올라 '바위처럼' 율동을 선보이고 있다. 정기훈 기자

물병을 비우기 무서울 정도였다. 이성준 한국지역난방공사노조 위원장은 농성장 바닥에 놓인 빈 물병을 순식간에 수거했다. 쓰레기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인 것처럼. 40세에서 57세까지 성인 남성 20여명이 한 달 하고도 열흘이 넘도록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농성장은 깨끗했다.

대신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후문 공기업정책연대 농성장에는 웃음이 넘쳐났다. 정부를 향한 질타와 "끝까지 간다"는 결의는 덤이었다. '노예연봉제 저지, 강제퇴출제 저지, 공기업정책연대 노숙투쟁'이 40일을 맞은 지난 3일 오전 <매일노동뉴스>가 농성장을 찾았다.

땡볕에 그을린 위원장들 "누구세요?"

이날 농성장에서 만난 대표자들의 겉모습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수염이 얼굴의 반을 뒤덮은 나종엽 한국공항공사노조 위원장은 "40일 동안 수염을 깎지 않았다"고 했다. 면도를 하려고 했더니 '농성 동기들'이 "농성자의 참된 모습"이라며 말렸단다.

농성단 단장인 박해철 공기업정책연대 의장은 나 위원장 옆에서 "노숙자 되기가 이렇게 쉽다"며 웃었다. 그을린 얼굴 탓인지 웃으면서 드러난 이가 유달리 하얗다.

이영우 한국수자원공사노조 위원장은 챙이 넓은 모자를 썼는데도 햇빛 알레르기 탓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공기업노조 대표자 중에서 '최강 동안'을 자랑했던 이택기(46) 도로공사노조 위원장의 얼굴도 제 나이로 보이게 할 만큼 땡볕 노숙농성은 대표자들의 심신을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낮에는 더위와 싸우고, 밤에는 레이싱하듯 과속하는 자동차 소리에 잠을 깨기 일쑤다.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심신이 힘들다고 자세가 흐트러진 건 아니다. 캠핑 분위기로 시작했던 농성은 시간이 갈수록 군대 같은 규율 아래 자로 잰 듯 질서 있게 진행됐다. 아침 6시 기상, 7시40분부터 8시50분까지 출근 선전전, 11시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점심 선전전, 저녁 점호까지 계획된 스케줄 외에도 수시로 열리는 대책회의와 손님 맞이로 24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박해철 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농성단에는 한국노총·민주노총·무상급노조를 대표하는 세 명의 간사가 있다. 이성준 지역난방공사노조 위원장(민주노총)이 돈 관리를 비롯한 사무를 담당한다. 여인철 한국남동발전노조 위원장(무상급)은 자타공인 군기반장이다. 이영우 수자원공사노조 위원장(한국노총)은 대외협력과 분위기 메이커, 자천타천 오락부장(?) 역할을 맡고 있다.

농성장 주변이 깨끗한 이유는 간사들이 "음식을 남기거나 농성장 바닥에 담뱃재를 떨어뜨려 구멍을 낼 경우 삭발한다"는 벌칙을 정하고 군기를 잡은 결과다.

박종선 한국관광공사노조 위원장은 이성준 위원장을 가리키며 "음식 남기면 삭발시킨다고 했다"며 "공기업정책연대 안 사용자인데 기재부보다 더 독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여인철 위원장은 "보이지 않는 감시의 눈이 얼마나 많겠냐"며 "적의 심장부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4일만 버티자"던 농성, 어느덧 40일차

올해 4월25일 시작된 농성에는 공기업 1·2군과 준정부기관·기타공공기관 등 25개 공공기관노조 대표자들이 함께하고 있다. 도로공사·수자원공사·LH·인천국제공항공사·지역난방공사·한국공항공사를 비롯한 공기업 1군 노조 대표자들은 농성을 시작할 때부터 자리를 지킨 이른바 ‘말뚝’이다. 다른 대표자들은 상황에 맞게 결합하고 있다.

애초 나흘만 버텨 보자며 시작한 농성이었다. 정부가 4월 이내에 성과연봉제 확대·도입을 완료한 공기업에 기본월급의 20~5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4월29일까지만 합의하지 않고 버티면 정부가 정해 놓은 1차 시한을 넘길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앞선 1차와 2차 공공기관 정상화 추진 당시 정부가 정한 1차 시한도 못 넘기고 줄줄이 무너졌던 과오를 범하지 말자는 의지이기도 했다.

한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정부가 4월29일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추진 점검회의에서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자 "5월2일까지 합의하면 4월 내 도입한 것으로 인정해 주겠다"고 꼼수를 부린 것이다.

공공기관마다 노사합의서에 노조위원장 도장을 찍기 위해 비상이 걸렸다. 4·13 총선 때 '진박' 예비후보들의 공천장에 도장 찍기를 거부하고 부산으로 내려간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옥새파동' 못지않은 위원장들의 '잠적투쟁'은 이날 시작됐다. 박해철 의장은 그날 저녁 긴급회의를 열고 "회사로부터 상상도 못할 압박에 시달릴 것"이라며 "차라리 잠적하자"고 제안했다. 대표자들은 곧바로 휴대전화를 끄고 짐을 싸서 모처로 이동했다.

이택기 도로공사노조 위원장이 세종시를 찾아온 회사 간부 10여명을 떼어 놓기 위해 한밤중에 카레이싱을 벌인 일화는 유명하다. 유복현 한전원자력연료노조 위원장은 "(이택기 위원장이) 세종시 전역을 세 바퀴나 돌고 나서야 (회사 간부들을) 겨우 따돌렸다"고 귀띔했다. 정작 '액션 영화'를 찍은 당사자인 이택기 위원장은 웃기만 했다.

어느 산자락 아래에 며칠간 잠적했던 대표자들은 5월2일을 넘긴 뒤 기재부 앞으로 보란 듯이 돌아왔다.

박해철 의장은 "몸은 힘들지만 절반은 성공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5월31일 기준으로 성과연봉제를 확대·도입한 114개 공공기관 중 51개 공공기관에서 노사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 입장에서는) 노조 동의를 받을 길이 없으니 답답했을 것"이라며 "오죽하면 정부가 나서 불법을 용인해 주겠다는 말까지 했겠냐"고 지적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12일 "성과연봉제 도입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조 동의가 없어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발언을 내놓았다. 심지어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사회 의결만으로 강행한 성과연봉제 도입과 관련해 "불법이 아닌 것으로 법률 자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박 의장은 이에 대해 "1·2차 정상화 추진 당시 정부가 단 한 번도 원칙이나 기준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었다"며 “대표자들의 농성투쟁이 위력적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 정기훈 기자


"조합원 얼굴 보기 쪽팔렸다"

노동계에서는 공기업정책연대의 기재부 앞 농성이 공공기관 노동계 투쟁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복리후생을 축소했던 2014년 1차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이나 임금피크제 도입을 밀어붙였던 2차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때와는 양상이 다르다.

1·2차 정상화에 반대해 투쟁할 당시에도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동계는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정부 정책에 대응했다. 정부는 시한을 정해 놓고 성과급과 경영평가 불이익, 임금동결 같은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내밀었다. 개별 노조들은 하나둘 도장을 찍었다. 공대위는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올해 투쟁도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겠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던 이유다.

박해철 의장은 "두 차례 정상화를 거치면서 기재부는 공공부문 노동계에 대해 '성과급 몇 푼 주면 영혼까지 팔아먹을 것'이라며 가소롭게 봤다"며 "인센티브 준다고 하면 4월까지 무리 없이 합의될 것으로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고와 맞바꿀 수 있는 실리는 없다는 게 위원장들의 공통된 인식이었고, 이번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막아 내자고 마음을 모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인철 위원장은 "꼭 한 번 이겨 보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여 위원장은 "조합원들 보기가 너무 미안하고 쪽팔리기도 해서 올해만큼은 진짜 사활을 걸고 막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장목 여수광양항만공사노조 위원장은 "지금까지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내놓고 밀어붙이면 공공기관은 따라야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앞으로는 정책을 만들 때 정부가 노조와 협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며 "이번 투쟁에서 승리해 꼭 그런 시스템을 후배들에게 물려 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조합원 빌려줘(?) 과반수노조 만들기도

"꼭 한 번 이겨 보고 싶다"는 바람은 사업장마다 독특한 사례를 만들었다. 일부는 '무용담'으로 회자됐다. 그중 하나는 LH노조가 복수노조인 한국토지주택공사노조에 '조합원 900명을 빌려준' 이야기다.

사연은 이렇다. 그동안 LH는 과반수노조가 없다는 이유로 복지를 축소하거나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때 직원 개별동의를 받았다. LH노조와 토지주택공사노조는 이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4월 초 과반수노조인 '토지주택공사 연합노조' 설립을 추진했다. 연합노조 설립을 눈치챈 회사측은 설명회를 열고 직원 개별동의 절차를 밀어붙였다. 그러자 LH노조는 곧바로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노조 중복가입 금지규정을 삭제했다. 조합원들이 토지주택공사노조에 중복가입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꾼 것이다.

이로 인해 토지주택공사노조 조합원은 3천여명에서 3천900여명으로 늘어났다. 과반수노조가 된 토지주택공사노조는 회사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면 과반수노조와 협의하라"고 통보했다. 복수노조 체제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LH노조 위원장인 박해철 의장은 "사측이 그런 시나리오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깜짝 놀라더라"고 전했다. 김진만 토지주택공사노조 위원장은 "두 노조가 함께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진리를 조합원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며 "박 위원장이 참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성준 위원장은 "개별동의로 LH가 무너졌다면 다른 노조들도 압박을 이겨 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두 노조 위원장이 결단을 내려 준 덕에 노숙투쟁도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정부 종착지는 쉬운 해고, 반드시 막겠다"

농성단 대표자들은 이날 오후 공공운수노조 주최로 기재부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다. 그동안 갈고닦은 문예 실력도 선보였다. 이날 무대에는 이택기 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아이큐 30'조가 올랐다. '아이큐 30'조는 매주 수요일 농성장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 때 문예공연팀을 섭외하기 어려워 농성단이 스스로 급조한 공연팀이다. 노래 '바위처럼' 율동을 얼추 따라하는 대표자들은 '아이큐 30'조에, 못 따라하는 대표자들은 '아이큐 20'조에 배치됐다. '아이큐 20'조는 '파업가'에 맞춰 양손바닥을 펼치고 앞으로만 내지르는 이른바 '지게춤' 전문이란다.

대표자들의 어설픈 춤사위에 조합원들은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집회가 끝난 뒤에는 김형동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로부터 성과연봉제 관련 법률교육과 상담을 받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빡빡한 일정이라는 대표자들의 말이 맞았다.

공기업정책연대는 이달 말까지 기재부 앞에서 농성을 계속한다. 성과연봉제 이사회 결의를 무효화하는 소송을 하는 한편 퇴출제가 쟁점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하반기에 정부와 맞붙을 동력을 만들어 내겠다는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에게서 하반기에는 퇴출제를 추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부가 노리는 종착지는 쉬운 해고다. 양질의 일자리를 축소하고 아웃소싱 비정규직 공화국을 만들려고 한다. 공공부문에서 쉬운 해고를 막지 못하면 대한민국에 무지막지한 해고 태풍이 몰아칠 수밖에 없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공기업정책연대 농성단 대표자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배혜정  bhj@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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