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지난 1일 십여 명의 조합원들과 함께 구의역에 다녀왔다. 불광역에서 출발해 18개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 참 많은 고민이 들었는데,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생각이 마비되고 말문이 막혔다. 구의역에는 많은 시민들이 다녀간 흔적이 느껴졌다. 2013년 1월 성수역, 지난해 8월 강남역에 이어 똑같은 패턴의 죽음.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되는 삶이었기 때문에 9-4 승강장 스크린도어를 가득 채운 글귀들에서 비통함이 읽혔다.

5월28일 오후 5시57분께 사건이 발생하고 3시간 뒤 서울메트로측은 “작업자가 업무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요지의 긴급브리핑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애당초 지킬 수 없는 규정이었다. 강북지역 49개 역사 스크린도어 전체를 불과 4명의 노동자가 관리한다. 하루 평균 스크린도어 장애신고는 30건이 넘는다. 희생당한 청년노동자가 컵라면으로도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던 비극은 이 부조리한 구조 위에서 발생한다.

사건 원인에 대한 설익은 진단과 대책이 남발되는 상황도 우려스럽다. 언론과 정치권은 ‘직접고용’만 이뤄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외주화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서울시의 대책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가장 직접적인 요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부족한 정비인력 확충에 대한 계획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일선 현장에서는 작업자와 지하철 관제센터 간 신호체계 일원화 등 실질적인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러한 목소리는 사회적으로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이번에도 근본적인 해법은 도출되지 않고, 빈 수레만 요란하다가 수박 겉 핥기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적당히 하자’는 안일함이 삶을 파괴하고 세상을 무너뜨린다. 지난 몇 년 동안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참사의 교훈을 벌써 잊었는가. 이제는 끝까지 가야 한다. 현장 목소리에 입각해 사건의 진상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어나서는 안 됐을 죽음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 아이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유족의 용감한 외침에 응답하는 길이기도 하다.

추모를 하는 잠깐의 시간 동안에도 구의역 9-4 승강장으로 수대의 전철이 소름 끼치게 지나갔다. 일상에서 무심코 바라보고 이용했던 전철이 이토록 두려운 속도로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생에 마지막으로 느꼈을 고통의 감각을 떠올려 본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외로웠을까, 억울했을까 생각해 본다. 이 생각이 그의 삶과 연결되기도 전에 고단한 퇴근길 시민들을 태운 지하철 문은 야속하게 닫히며 강변 방면으로 나아간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황망한 편지, 이런 세상을 물려 줘서 미안하다는 사죄의 편지, 외면의 시간들이 부끄럽다는 다짐의 편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글자 한 글자에 깊은 울음이 저며 있다. 눈물 섞인 다짐의 연결을 통해 우리 사회를 회복할 힘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정준영 국장에 이어 매일노동뉴스 <청년노동>의 네 번째 필진으로 인사드리게 됐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청년유니온 사무국장으로, 정책국장으로 활약했던 그가 곧 군대에 입대한다. 그는 직책이 부여하는 역할을 넘어서는 존재였다. 자신의 삶을 걸어 청년유니온 운동의 중요한 시간들을 만들어 왔다. 나는 그가 많이 그리울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그가 군대에서 건강히 돌아오기를 기원해 주셨으면 한다. 부족한 역량으로 그의 빈자리를 채우려니 걱정이 앞선다. 연재를 하는 동안 이번과 같은 슬픔을 얼마나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될지 알 수가 없다. 두렵고 괴롭지만, 이것이 청년노동의 오늘이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cartney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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