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참담하다. 생일을 하루 앞둔 청년이 사고로 숨졌다. 지하철 안전문을 고치려다 유명을 달리했다. 어처구니없다. 안전을 지키는 문을 정비하는 노동자가 수리작업을 하다 죽다니. 우리 사회의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할 당사자가 희생양이 된 셈이다. 그는 비정규직이었고 서울메트로가 정비업무를 외주화한 하청용역업체 직원이었다. 위험의 외주화가 창창한 한 청년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 갔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의 불안과 위험 수위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극명하게 방증하고 있다. 청년들이 부르짖는 '헬조선'의 실체가 수도 서울의 한낮 참극으로 다시 드러나고 말았다.

최근 서울시 지하철에서 일어난 세 번째 사건이다. 성수역·강남역·구의역으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 사고 양태는 판박이다. 정규직이 정비하는 지하철 4~8호선에선 이런 식의 사망사고는 없었다. 반복돼 온 지하철 안전문 정비 비정규 노동자 사망사고는 불안정한 고용형태가 낳은 명백한 구조적 인재다. 하지만 매번 사망한 비정규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한 채 원청인 서울메트로와 서울시는 용역업체 뒤로 숨어 버린다. 이번에도 서울메트로는 관리자를 통해 사망한 당사자의 과실을 먼저 언급하면서 중대 사건을 은폐하고 왜곡하려 했다. 피해자의 어머니가 나서지 않았던들 어찌 됐을지 아무도 모른다. 참으로 무책임하고 비겁한 작태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자는 매일 평균 5명이다. 3개월마다 세월호 참사를 겪는 꼴이다. 비정규직 양산으로 인한 잠복된 세월호 참사에 다름 아니다. 조선소에서, 건설현장에서, 위험·유해 화학물질을 다루는 제조업체에서, 석유화학단지에서, 지하철과 철도에서, 지역과 업종을 가리지 않고 매일 이윤에 눈먼 자본가들의 위험천만한 돈 놀음 속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이 산재의 말단 희생양이 되고 있다. 2016년 대한민국은 위험을 넘어 죽음을 외주화하는 비정한 사회가 됐다. 그뿐인가. 인재로 인한 죽음에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진짜 사장은 뒤로 숨고 가짜 사장이 사실을 호도하거나 은폐하는 기막힌 현실이 바뀌지 않고 있다.

국가의 최우선 존재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지키는 것이다. 이런 책무를 저버리고서야 어떤 사탕발림 식 정책이나 공약이 의미가 있으랴. 국민의 일상에, 특히 국민 중 최대 다수인 노동자들의 일터에 스며든 죽음을 나 몰라라 하는 정부는 자신의 존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공적 역할을 앞세워야 할 국가와 국회는 지금 한 청년의 비통한 죽음 앞에서 존재의 이유를 통렬하게 추궁받고 있다. 생명과 안전보다 돈과 이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 사회의 천박한 가치관이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누군가의 목숨값으로 제기된 이 물음에 제대로 된 답을 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공동체가 아닌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의 정글로 치닫게 만든 원인을 제거하고 인간다운 사회로 복원해야 한다. 그것만이 이번에 숨진 청년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숱하게 산업현장에서 억울하게 숨져 간 노동자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업무는 철저하게 직접고용하고 처우도 적정하게 보장해야 한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망라해 상시·지속업무는 정규직으로 채용하거나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법·제도로 정립해야 마땅하다. 좋은 일자리가 일터의 각종 위험을 예방하는 가장 빠르고 근본적인 방책이다.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 3권도 이런 조건에서라야 제대로 보장될 수 있다.

원청 사용자인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사과에만 그치지 말고, 책임 있는 후속대책을 단시일 내로 이행해야 한다. 이미 대책으로 표방한 자회사도 여러 모로 우려가 많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직접고용 정규직화 대책을 중심으로 제반 대안을 내야 한다. 외주 하청화한 지하철 정비 분야 전체를 직접고용으로 전환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힘쏟아야 한다. 안전 매뉴얼이나 CCTV, 원청과의 협업 중 단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했다면 비정규 노동자를 죽음에서 구할 수 있었다.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지만 또 다른 죽음을 막아야 한다. 죽음을 감내하는 일터는 더 이상 존재해선 안 된다.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피해자 어머니의 절절한 호소에 양식 있는 시민들이 가슴으로 응답하고 있다. 우리 모두 함께 힘 모아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삼가 깊이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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