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우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대상판결/ 서울고등법원 2016.4.1 선고 2013나2031913 판결

1. 사건의 개요


이 사건의 원고인 12명의 AS 수리기사들은 피고인 가전제품 수리서비스 회사와 서비스대행계약을 체결하고 피고의 각 지역서비스센터가 관할하는 지역에서 가전제품 수리업무 등을 담당했다. 이들은 개인사업자 등록하에 짧게는 2년여에서 길게는 12년이 넘게 일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근무기간 중 지급받지 못한 주휴수당과 연차휴가수당, 퇴직시 지급받지 못한 퇴직금을 청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했고 2심에서는 퇴직금만을 청구하는 것으로 청구취지를 감축했다.

근기법상 근로자 여부가 쟁점인 이 사건에서 1심인 수원지방법원(제9민사부)은, “원고들이 이 사건 서비스대행계약의 취지 및 범위를 벗어나 피고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음으로써 사용·종속 관계에서 피고에게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그러나 2심인 서울고등법원(제15민사부)은, “원고들이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피고에게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로서 1년 이상 계속 피고에게 근로를 제공하다가 퇴직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는 원고들에게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에 의한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2. 판단 기준

1) 판례의 입장

대법원은 “근기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하고, 여기에서 종속적인 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인사) 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노무제공자가 스스로 비품·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해 업무를 대행하게 하는 등 독립해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노무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졌는지 및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 여부 등 보수에 관한 사항, 근로제공 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의 유무와 그 정도,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에서 근로자로서 지위를 인정받는지 등의 경제적·사회적 여러 조건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다만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졌는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했는지, 사회보장제도에 관해 근로자로 인정받는지 등의 사정은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기 때문에, 그러한 점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06.12.7 선고 2004다29736 판결, 2010.4.15 선고 2009다99396 판결 등)고 하고 있다.

2) 이 사건 근로자성 인정에 근거가 된 사실관계들

서울고등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실관계들을 근거로 이 사건 원고들의 근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즉 ① 피고가 원고들에게 일괄적으로 업무를 배정했던 방식과 원고들의 명함에 피고의 콜센터 전화번호만 적혀 있는 점 등을 보면, 원고들이 독립된 가전수리업자로서 피고를 통하지 않고 소비자와 직접 수리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던 점 ② 원고들이 수행한 업무의 내용 등은 피고가 만든 기준에 따라 정해졌고, 원고들은 업무수행 과정에서 최종 결정은 소속 서비스센터 소장의 승인을 받고 처리했으며, 원고들이 수행한 업무의 내용과 결과는 피고의 통합 전산망에 모두 입력돼 관리된 점 ③ 피고는 원고들에 대해 수시로 업무교육을 실시하고 구체적인 업무목표도 부여했으며 업무실적 평가를 공개했고 실적이 부진할 경우 원고들은 담당구역 배정에 있어 불이익을 입은 점과 그로 인해 원고들이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피고의 업무지시 등을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④ 원고들은 업무보고 등을 위해 매일 일정시간까지 출근해야 했고 대체로 일정시간 이후에나 퇴근했으며, 피고의 각종 근태지침에 사실상 구속된 점에 비춰보면 원고들이 겸직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이며, 원고들은 피고의 서비스센터 소장 승인 하에 휴가를 사용했으며 아울러 원고들의 업무 시간, 장소, 업무수행 방식, 피고에 대한 업무수행결과 보고는 피고의 정규직 기사와 거의 동일했던 점 ⑤ 원고들의 업무 담당구역은 피고의 업무실적 평가에 따라 주기적으로 새로 배정됐고 원고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가 지정한 업무 담당구역을 임의로 변경할 수 없었던 점 ⑥ 실제로 원고들이 제3자를 고용해 자신의 업무를 대행하게 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점 ⑦ 원고들은 독자적으로 거래처나 고객을 개척할 수 없었고 원고들이 고객들로부터 받은 돈은 일단 피고에게 준 뒤 피고에 의해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매월 지급받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원고들의 업무수행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은 피고에게 귀속된다고 판단되는 점 ⑧ 원고들이 고정급 없이 실적에 따른 수수료만 지급받은 점, 개인사업자로 등록해 사업소득세 등을 납부한 점,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은 점,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지 않은 점, 개인 소유 차량과 PDA로 업무를 처리한 점 등은 사용자인 피고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임의로 정했을 가능성이 클 뿐만 아니라 원고들이 업무수행과정에서 피고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고 업무수행에 필수적인 공구와 장비 등은 피고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된 이상 이러한 사정만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인 점을 들었다.

3. 이 사건 판결의 의미

대상판결은 서비스대행계약(위탁계약)의 형식에도 불구하고 그 실질적인 내용과 이에 기초한 업무수행을 위한 노무제공의 사실관계를 객관적이면서 명확하게 인정하고 근기법상 근로자성에 대한 법리를 제대로 적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고용형태는 나날이 변화하며 다양해지고 있다. 이른바 특수고용노동자 유형의 증가는 무엇보다도 이윤극대화를 위한 비용절감과 노동법상의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사용자측의 목적에 있으며 그 과정에서 아무런 노동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입법을 통한 대안 마련이 가장 중요하겠으나 그 전이라도 법원은 더 이상 전통적인 ‘사용종속관계’에만 매몰돼 현실의 다양성과 그 실질에 눈감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용자의 지휘·감독은 이미 다양한 업종에서 과거의 직접적·구체적 방식으로부터 간접적·포괄적 방식으로 이미 변화했다. 근기법상의 근로자성 여부는 무엇보다도 ‘독립해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노무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돼야 한다.

이 사건 판결취지가 대법원에서도 유지되기를 바라며 나아가 보다 현실과 실질에 부합하는 대법원의 명확한 법해석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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