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정부가 지난달 21일 입법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개정안은 사업주의 산업재해 발생 신고대상을 "사망 또는 휴업 3일 이상"에서 "사망 또는 휴업 4일 이상"으로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기한도 "산재 발생 1개월 이내"에서 "고용노동부 시정지시 뒤 15일 이내"로 유예했다. 노동부는 산재 발생 보고제도의 조속한 정착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노동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매일노동뉴스>가 현장에서 나타나는 산재은폐 사례를 중심으로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릴레이기고를 게재한다.<편집자>


민주노총은 끊임없이 산업재해 은폐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 이유는 첫째 기업이 산재은폐를 하면서 산재노동자들에게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 산재의 원인과 내용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아 해당 사업장이나 정부 산재예방 대책이 허공에 떠돌기 때문이며, 셋째 산재보험으로 처리되지 않은 산재가 건강보험 재정을 축나게 하면서 결국 사업주가 부담해야 할 산재보험료를 온 국민 부담으로 전가시키기 때문이다. 기업은 정부 감독 면제를 위해, 산재보험료 증액을 피하기 위해, 기업 이미지를 위해 구조적이고 조직적인 산재은폐를 하고 있다. 산재은폐로 노동자와 국민이 피해를 떠안고 있는 것이다.

노동부는 산재은폐 사업장이 시정지시 뒤 보름 이내 산재 발생사실을 보고하면 면죄부를 주는 시정조치 부활이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산재발생 보고제도 운영지침’을 통해 안전관리자 선임 대상 사업장, 공상처리 등 산재은폐 사업장, 기존에 산재발생을 보고한 적이 있는 사업장은 시정조치에서 제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노동부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예컨대 현재 산재신청 과정에서 역학조사를 하면 산재신청 노동자와 법정대리인이 역학조사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근로복지공단 요양업무 처리 규정에 명시돼 있다. 이는 2012년 노사정이 논의해 합의한 제도개선 사항이다, 그러나 삼성은, 이것은 공단의 규정일 뿐 법령사항은 아니라며 산재신청 당사자인 노동자의 역학조사 참여조차 거부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와 공단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산재은폐와 같이 기업이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사안에 대해 노동부가 법령에 근거도 없는 운영지침으로 제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그야말로 희망사항일 뿐이다.

시정조치 대상에서 빼겠다는 대상도 문제다. 안전관리자는 업종이나 고용규모에 따라 제한적으로 선임된다. 노동부 2013년 통계에 의하면 전체 사업장은 175만2천503곳이다. 그중 안전관리자 선임 대상 사업장은 1만9천391곳으로 사업장의 1.1%에 불과하다. 99% 사업장은 적용대상이 아니다. 노동부가 산재은폐 감독을 10건도 안 하고 있는 상황에서 산재은폐 사업장을 시정지시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홍보하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하청 산재의 경우 고용규모가 작고, 건설업처럼 매년 신설공사 신규사업장이 되기 때문에 대부분 시정조치 대상에 포함되게 된다.

하청 산재은폐에 대한 면죄부는 곧 원청의 조직적인 산재은폐의 가림막이 된다. 산재가 다발하는 파견고용의 경우 산재보험 가입은 파견업체가, 산재보고는 사용업체가 하게 돼 있어 산재은폐의 온상지다. 시행규칙 개정안이 도입되면 법망을 피하기 위해 휴업과 폐업을 반복하는 파견고용 노동자 산재은폐도 확대되게 된다. 노동부는 현재 산재 미보고의 90%가 소규모 신설 사업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 사업장은 단지 소규모일 뿐만 아니라 하청·파견고용으로 산재보상을 회피하고 사용업체나 원청업체의 ‘공상처리 지침’에 따라 산재은폐가 조직적으로 강제되는 곳이다.

산재보고 기준을 요양 4일에서 휴업 3일로 완화할 당시 민주노총은 여러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요양 4일은 병원 기록이지만, 휴업일 기록은 사업주가 임의로 제출하는 것이므로 사업장에서 조작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부가 감독을 벌여 적발하는 게 불가능하며, 휴업치료를 해야 할 노동자에게 출근을 강요할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당시 지적했던 문제가 지금 고스란히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사업주의 임의적인 휴업일 기록은 노동부의 산재분석 기초부터 무너뜨리게 된다. 사업주들이 산재로 인한 휴업일을 축소 보고하기 때문이다.

산재은폐가 횡행하는 한국에서 산재발생 보고제도 정착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민주노총은 독일·미국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병원 신고제도 도입이 근본적인 해결방안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는 일각의 주장처럼 의사나 병원에 엄청난 의무를 부과하거나, 산재인지 아닌지 여부를 판단하게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병원에서는 사전·사후 조사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산재보험 처리 대상인지, 건강보험 처리 대상인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의사들은 문진 과정에서 사업장이 어디인지, 작업을 하다가 다친 것인지 여부를 묻고 노동부에 통보하면 된다. 직업병의 경우에는 현재도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인정을 받은 시점부터 산재보고 의무가 발생한다. 병원이나 의사 신고제도를 통해 이들에게 직업병에 대한 산재 여부를 판단하게 하는 것이라고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다. 현재 지정병원을 통한 산재은폐가 횡행하기 때문에 의료기관 평가나 인증제도 등을 통해 산재은폐가 적발되는 병원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 이는 산재은폐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의 손실을 감안했을 때 해당 부처에서 오히려 적극 나서야 할 일이다. 노동부는 산재은폐를 확대하는 시행규칙 개정안을 폐기하고, 근본적인 산재은폐 근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