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로 임금·단체협상을 진행하는 건설플랜트업계의 교섭관행을 무시한 채 건설현장별 교섭단위 분리결정을 내린 노동위원회의 판단이 무효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31일 노동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1부(재판장 김용철 판사)는 지난 27일 민주노총 소속 전국플랜트건설노조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교섭단위 분리결정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경기도 포천천연가스발전소 1호기 건설현장에 투입된 전문건설업체 금화피에스시와 정호이앤씨는 지난해 4월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포천 건설현장을 별도 교섭단위로 분리해 달라”고 신청했다. 건설플랜트업계는 그동안 플랜트현장이 밀집한 포항·전남동부·경남서부·서산·당진·울산·여수 등 지역단위로 교섭을 벌였는데, 사용자들은 건설현장 단위로 교섭단위를 쪼개 달라고 요구했다.

경기지노위는 사용자측 신청을 수용했다. 비슷한 시기 전국 플랜트현장에서 교섭단위 분리신청이 이어졌고, 같은 결정이 잇따랐다. 중앙노동위 판단도 같았다. 중앙노동위는 “건설현장별로 근로조건 차이가 인정되고, 지역별 교섭관행 외에 현장별 교섭관행이 존재한다”며 사용자측 신청을 받아들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건설현장별로 교섭단위가 쪼개진 뒤 각 현장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가 진행됐다. 이때 사용자들이 특정 노조에 금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부당노동행위에 나선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소송 당사자인 금화피에스시의 관리자는 당시 협력업체 사장들에게 “(노조는) 동일하게 한국노총으로 선정하고, 최초 노조비 1인 3만원을 회사가 부담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갖지 못하도록 사용자들이 미리 손을 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 교섭권을 박탈당한 플랜트건설노조는 중앙노동위 위원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에 나섰다. 노조는 “플랜트 현장별로 고용형태에 차이가 없고, 지역별로 교섭해 온 관행이 존재한다”며 “이 사건 재심결정은 위법하거나 월권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교섭단위는 원칙적으로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하되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고용형태·교섭관행 등을 고려해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노동위가 교섭단위 분리결정을 할 수 있다”며 “포천 건설현장은 별도의 교섭단위로 분리할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성도 인정되지 않으므로 이 사건 재심결정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